우런수 지음/ 김의정, 정민경, 정유선, 최수경 옮김/ 글항아리

 

자본주의가 삶의 근간이 된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가 소비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소비자이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이 소비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역사학자들은 그 근원을 20세기 말 자본주의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역사 발전의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서양뿐만 아니라 중국의 명청사 학계에서도 소비문화를 역사 연구의 주요한 영역으로 삼아 소비 연구에 한창 기치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소비사회가 형성되어 산업혁명이 촉발되었다고 하는 ‘소비혁명론’에 비해 명말의 소비사는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평가 절하되어왔다. 명말에 나타난 사치 현상은 사회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었다거나 통치자들의 부패만을 초래했으며, 소농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식으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사치의 역사적 작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명말에 형성된 소비사회를 자본주의의 맹아로 보려 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주의 맹아론은 당시 정치적 분위기와 민족적 정서의 영향 아래에서 자본주의가 중국의 역사에도 있어야만 한다는 당위에 매달린 결과라는 한계가 있다. '사치의 제국'에서는 이처럼 한편으론 평가 절하되고, 한편으론 오도되었던 명말의 소비사회 현상을 세계사적 맥락 속에 놓고 그 중요성과 의의를 재조명한다.

명말에 나타난 사치 풍조와 소비사회의 탄생은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19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기원이 되었다고 여겨지는 소비사회 현상은 중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는 소비사회의 탄생이 곧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해준다. 즉, 영국 사학계의 ‘소비혁명’에 대한 기존의 역사적 해석에 수정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사회의 탄생 이후 영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를 바로 사치관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 분석한다. 명청 시기 소비를 언급한 문헌에서 당시 소비 현상에 대한 논술과 평가는 사회질서와 재정 세수의 안정에 입각하고 있어 가치 판단적 경향을 띤다. 당시 지식인들은 사치 소비를 경제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방지의 작자들은 사치 풍조를 민간의 ‘경박함’이라 말하며 ‘검소함을 숭상하고 사치를 배척하도록’ 백성을 교화하고자 했다. 사치의 긍정적 측면을 논의하며 사치를 ‘탈도덕화’와 ‘탈정치화’의 방향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육집 같은 학자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학설은 대부분 비주류로 사상계와 지식계에 끼친 영향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에 반해 영국은 ‘상업’ 시대였기에 사치론의 변화가 요구되었고, 이는 무역, 상업, 정치·경제 등과 같은 영역에서 ‘새로운 지식’으로 포용될 수 있었다. 이처럼 ‘탈도덕화’와 ‘탈정치화’의 기준으로 명청 시기 사치론의 수용 양상을 살펴볼 때, 중국의 사치론은 사실상 서양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저자는 중국과 서양의 사치 관념을 수용하는 데서 생긴 차이는 현재까지 중국과 서양의 역사가 다르게 발전한 주요 원인이라고 추정한다. 당시 중국은 여전히 농본국가임을 강조했고, 영국은 이미 상업 시대에 진입해 있었다. 이처럼 당시 중국과 서양의 다른 사회적 배경은 마치 이미 양 갈림길로 나누어진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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