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지음/ 아트북스

 

이 책은 실로 40년여 만의 수확이다. 1970년대 하반기, 민화컬렉터이기도 한 작가 이우환(1936~)은 “민화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회화적 특성을 찾아내어, 그 속에서 뛰어난 예술성을 갖춘 것을 골라냄으로써 그 회화적 성격을 밝히는 일”(이우환, '이조의 민화', 1977)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 후 다수의 민화 관련서가 출간되었고, 논문들이 나왔지만 민화의 회화적 성격을 밝힌 단행본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80점의 작품으로 민화의 회화성을 밝힌 '민화의 맛'이 출간되었다. 이우환의 지적이 있은 지 40년여가 지난 시점의 의미 있는 첫 결실이 아닐 수 없다.

'민화의 맛'이 맛보는 민화는 화려한 궁중민화가 아니라 소박한 서민민화다. 민화를 구분하는 용어는 연구자마다 다르지만 흔히 궁중민화는 직업화가인 화원(畵員)이 그린 정형화되고 엄격하며 화려한 채색의 완성도가 높은 민화를 말하고, 서민민화는 무명의 화공(畵工)이 그린 지극히 자연스럽고 어눌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민화를 일컫는다. 궁중민화가 일류 셰프들이 만든 고급요리 같다면, 서민민화는 어머니가 정성껏 지은 소박한 ‘집밥’ 같다. 전자는 선묘와 구성이 탄탄하고, 채색이 시각적인 피로감을 줄만큼 강렬하다. 반면에 서민회화는 길들여지지 않은 솜씨가, 소박하고 천진하기 그지없다. 처음 보면 낙서 같아 슴슴하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그윽한 맛이 있다. 

한국 근대미술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는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을 대상으로 전시 기획과 비평을 해온 미술평론가다. 그런 저자가 현대미술작품을 분석하듯이 80점의 민화를 품어서 회화적인 매력을 다각도로 짚었다. 민화는 오랫동안 상징체계를 위주로 논의되어왔다. 순수하게 조형적인 차원에서, 민화를 보고 이해하려는 시각이 매우 드물었다. 이 같은 현실에서 민화를 회화작품으로 보면서, 그 위에 상징성을 고명처럼 뿌린 저자의 작업은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작품 읽기는 조형미 추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민화에 스민 옛사람들의 마음에 ‘사유의 찌’를 드리운다. 화공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품을 통해 그곳에 깃든 솜씨와 개성, 타고난 마음에 감응하는 것, 그것이 민화 감상의 참맛임을 곳곳에서 토로한다.

이 책은 서민민화의 회화적 특질과 조형적 특성에 집중하지만 건조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분석적이지만 서정적이다. 머리와 가슴이 함께한다. 서민민화처럼 이야기가 차지고 곰살궂다. 옛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저자의 따스한 시선이 동행하기 때문이다. 무명의 화공이 선묘와 색채로 표현한 마음을, 저자는 선묘와 색채의 화음에서 공 들여 읽어낸다. 저자의 맵싸한 감동은 독자의 감동을 자극한다. 작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마음과 마음의 공명이 몰입감을 높여주고, ‘민화의 맛’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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