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오가와 요코, 최승자, 김애란, 천명관, 박솔뫼…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다. 이들은 브라우티건에 대한 애정을 인터뷰와 소설, 에세이를 통해 드러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전세계 작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브라우티건의 말년의 삶이 드러난 작품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가 출간되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일본 도쿄와 미국 몬태나를 오가며 쓴 131편의 짧은 글들을 모은 소설로, 1980년 미국 현지에서 출간된 작품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131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를 관통하는 정서는 쓸쓸함이다. 브라우티건은 일본 도쿄와 미국 몬태나를 끊임없이 오가며 자유주의 정신을 잃은 미국과 그 대안인 일본 간에 존재하는 문화적 차이를 통찰하다가 공허한 인간관계와 나이 들어감의 슬픔 그리고 죽음을 의식한다.

1960년대의 자유주의 정신을 대표했던 브라우티건에게 이를 상징하던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큰 충격이었다. <390장의 크리스마스트리 사진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에서 그는 케네디가 암살된 해인 1963년에 대해 “12월은 미국의 모든 국기가 조기(弔旗)로 내걸렸고, 슬픔의 터널 같았다”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1976년의 일본행은 자유주의 정신을 잃은 미국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는 동서양의 차이를 통찰하고 그 면면을 특유의 위트로 유쾌하게 풀어냈다. <일본의 눈(眼)>에서는 자기가 집안의 사자(Lion)라고 거들먹거리는 일본인 남자를 보고 아내가 미국 여자였다면 저 남자의 고환을 찼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새로운 세계이자 일종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일본행은, 그러나 낯선 외국 생활에 따른 공허한 인간관계로 이어졌다. <미지의 친구의 무덤>에서 화자는 낯선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만 말없이 스쳐지나가 버린다. <내 마음속에서 끓고 있는 어떤 것>에서는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재회를 약속하지만 다음 날 장소가 기억나지 않아 인연을 놓친다. 이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간관계는 삶의 덧없음으로 확장된다. <마이 페어 도쿄 레이디>에서 순식간에 변하는 연극 무대와 노인으로 분장한 배우의 얼굴에서 작가는 삶의 허망함과 노년의 쓸쓸함을 상기한다. <루디 게른라이히에게 바치는 헌사 / 1965년>에서는 병사들이 죽은 애완동물을 묻는 가상의 공동묘지가 등장하는데, 한 묘비에 쓰인 “다 끝났다”라는 글귀가 삶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을 짐작케 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시종일관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는다.

결국 브라우티건이 도쿄와 몬태나를 오가는 특급열차를 타고 가고자 했던 곳은 상실과 갈망 사이의 중간지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급열차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삶은 깊은 허망함 또한 남겼다. 그래서 그의 위트는 풍자하고 냉소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런 허망한 삶을 ‘견디는’ 행위였다. 131편의 글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문득 그 기저에 짙게 깔려 있는 죽음의 정서가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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