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지음/ 문학동네

 

삶을 직시하고 온몸으로 경험하는 작가 임솔아의 첫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이 출간되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첫 장편소설 '최선의 삶'으로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증명하고, 첫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로 2017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와 소설 모두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보여주고 있는 젊은 작가다. 시적인 문장 안에 진중한 사유를 함축하여 한국문학의 깊이를 더하는 임솔아의 작품세계를 단편집으로는 처음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다. 임솔아가 고르고 골라 배치해둔 단어들은 시어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말해지지 않은 의미로 고요히 채워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울림을 발산한다.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작품은 인물의 나이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다음 작품으로 이행할수록 나이를 먹어가는 임솔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변화는 인상 깊다.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여기게 만드는 세상에 반발하며 서걱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존재들이 소설집의 끝에서는 물기를 품은 눈송이로 변해 서로 뭉친다. 임솔아가 ‘작가의 말’에서 “이 인물들은 여태 내가 겪어온 것들을 함께 겪은 동지들”이라고 밝힌바,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삶을 지속하며 이뤄내는 변화는 작가 임솔아가 겪은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첫 작품 「줄 게 있어」의 주인공 ‘영후’는 친구의 죽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강요되는 애도와 물밀듯이 쏟아지는 주변의 부담스러운 배려와 온기를 참지 못한다. 영후는 자신과 다른 세상에 편입되지 못하고, 세상은 그런 영후를 ‘병들었다’고 판정한다. 영후처럼 비정상이라고 판단된 이들은 생존을 위해 정상임을 공인받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회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의 주인공 ‘유림’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나 결국 거액의 병원비까지 떠안게 된다. 건강보험 혜택이 절실해진 유림은 정신병력 진단서를 받기 위해 정신과 의사와 급박하고도 끈질긴 사투를 벌인다. 「다시 하자고」에서 비좁은 원룸에서 동거하는 ‘수희’와 ‘지은’은 세상이 그들을 신용하기 위해 요구하는 신분을 마련할 수 없다. 그들이 일자리를 얻으려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소속과 자격과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 두 사람은 오직 함께 살기 위해 그 불안정한 삶을 감내한다.

이처럼 아주 가까이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임솔아는 자신의 몸을 한껏 밀착한다. 그리하여 작가 스스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써낼 수 없는 약자와 소수자로서의 삶의 세부를 소설 속에 배치해놓는다. 이렇게 쓰였기 때문에, 임솔아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일상에서 한 번씩은 마주했을 어떤 무례함과 부당함을 생생히 기억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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