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숫자 지극히 적어, 문제는 종미(從美)”
“종북 숫자 지극히 적어, 문제는 종미(從美)”
  • 최규재 기자
  • 승인 2019.08.28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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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강정구 교수-1회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우리사회에서 평화와 통일, 민족 문제 등을 논하면 ‘친북’ 내지 ‘종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 자체가 공고해지고 당연시되는 상황에서 이런 논의들은 흔히 ‘분단을 부정하고 북한을 긍정한다’ 식의 논법 안에 가두어진다. 여기에서 특히 ‘북한 긍정’ 논법은 분단이 긍정될수록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당수 권력층들의 레퍼토리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평화와 통일은 향후 우리 민족 나아가 세계사적 과제라고들 하지만 접근법에 있어 ‘능동태’로 여겨지면 곧바로 친북과 종북이라는 그물에 낚이기 마련이다. 국가보안법과 ‘레드 컴플렉스’가 존재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그래서 통일 문제를 논하는 학계나 시민사회에서는 ‘적극적 수동태’를 취하는 게 관습화 되었다. 동시에 능동보다는 수동이, 긍정보다는 부정이 세련미로 여겨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 논의에서는 수동과 부정이라는 용어가 기조음처럼 울리고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서는 구소련 붕괴와 북한의 몰락, 북핵 실험 등이 우리 지식사회와 대중들에게 타격을 주면서 현재의 주류로 부상했다. 반면 북한과 민족 문제에 ‘등떠밀리듯’ ‘능동’의 길을 걷고 있는 학계와 시민사회는 비주류로서 대중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럼에도 괄목할만한 성과라면 이들 주류와 비주류가 거친 세월을 거치면서도 분모에 있어 통일한국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낙관이다.

<위클리서울>은 한때 주류 이론을 주도했던 강정구 교수(전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와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알다시피 그의 이론은 극단적이거나 과격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며 이제는 비주류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주류든 비주류든 그렇다면 ‘선입견을 접어두고’ 그가 말하는 통일한국의 이론적 여정을 따라가보고자 했다.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2010년 본지 위클리서울과 인터뷰 당시)

강 교수는 국내에서 NL계열(민족해방)의 학자로 규정되었고, 북한에서도 매우 거북하게 생각하고 있는 인물로 분류되었다.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돼 학원생활이 망가지다시피 했다. 강 교수는 “강정구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특히 비판적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저에게 어느 누구나 어느 집단이라도 성역은 허용되지 않는다”라고 변호한다. 나아가 그는 이렇게 소명한다.

“마르크스주의를 비판적 학문의 진수라고 하는 데 그것은 바로 ‘Marxism against Marx’라는 데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스 본인에게 조차 들여대어 성역을 허물고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냉전성역허물기라는 차원에서 NL계열이 좋아할 연구를 많이 해 오고 또 연구를 넘어 알리고 실천에 반영하려고 애써 왔다. 누구도 감히 건드리기 힘든 주제를 연구대상으로 삼았고 파헤쳤다.”

NL 계열의 학문적 소신은 때론 파시즘이나 극우 민족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기우인 것은 강 교수가 단 한번도 ‘히틀러 독일이나 북한을 옹호한 적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대한민국 법과 일반시민의 해석 내지 결과로 도출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남북문제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그의 학문적 토양도 국가보안법을 ‘상당 부분’ 극복한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방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마련. “남북문제를 논할 때 극단적이지 않으면 문제의 본질이 쉽게 드러나기 어렵다.” 그의 얘기가 극단적이거나 과격한지에 대한 판단은 해석 의지를 발휘하려는 독자들의 몫이다. 조금은 여유롭고 부드러워진, 그럼에도 날을 세운, 강정구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언론, 시민사회 등에서 많은 시간 소식이 뜸했다. 근황이 어떤가.

▲ 건강이 좋지 않아 현장실천운동은 촛불집회의 연장의 의미에서의 집회를 제외하곤 삼가고 있다. 한편으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중국 인민일보나 환구시보의 사설을 한 꼭지씩 번역해 한반도 관련이나 세계질서 관련 사설을 중심으로 ‘통일뉴스’에 게재하고 있다. 진보진영조차 중국을 제대로 알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통일에 미국과 함께 가장 영향력이 큰 이웃이고, 중미 세력교체기를 지나 머지않아 세계질서를 이끌어 나갈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우리 수출의 1/3을 차지해 미국과 일본 합쳐도 중국에 못 미칠 정도로 경제대국이다. 이런데도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전혀 모르고 있고, 오히려 폄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화통일시대에 걸맞은 인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 번역에 애쓰고 있다.

 

- 필화사건 등으로 국가보안법에 저촉돼 10년 가까이 재판을 받아왔고 2010년 대법판결이 났다. 교수직 박탈 등 여러모로 고초를 겪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에 와서는 어떤 심정인지.

▲ 분단으로 인한 질곡을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 왔고 희생되었다. 그에 비하면 저의 조그만 희생은 별 것 아닌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반민족, 반평화, 반인권, 반통일, 반민주 악법이 잔존하고 있는 현주소가 바로 한국이다. 한반도 평화시대를 맞아 탈냉전을 빨리 이뤄 이런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이 원천적으로 자리 잡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저의 학문적 소명이 이 땅의 냉전성역을 허물고 평화통일 이루기이므로, 그 일환으로 방명록이나 ‘6.25 통일내전 필화사건’이 발생한 것 같다. 이 분야를 비록 개인적 희생과 고통을 겪더라도 먼저 앞장서 허물기의 물꼬를 틀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 국가보안법의 폐해는 늘 지적돼 왔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국가보안법 폐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 남북관계 특성상 보안법이 필요한 게 아니다. 냉전의 산물이기에 4.27판문점회담, 9.19평양공동선언, 6.12싱가포르선언 등을 통해 탈냉전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다. 폐기는 시간문제다. 단지 지금 시점에서 국보법철폐에 운동진영이 역량을 결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비핵화 탈냉전에 박차를 가하고, 이게 진전되면 자연스럽게 국보법은 해체되게 된다. 역사의 무대에서 핵심 고리를 중심으로 운동역량이 결집될 필요가 있다.

 

- 이 법의 순기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지.

▲ (웃음)순기능이라는 말이 걸맞지 않다.

 

- “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강 교수의 표현은 숱한 오해를 낳았다. 표현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맥락상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만경대 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무엇 때문에 논란이었나.

▲ 맥락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당연한 언명이고 분석이다. 단지 우리 사회가 아직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되지 못한 미성숙의 사회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미성숙의 요인은 분단냉전체제이다. 이 분단냉전체제를 강제한 주범이 미국이다. 원초적 미성숙의 결정적인 구조적 조건을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종미주의자들이 우리사회 기성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화와 통일 지향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면 저의 발언이나 맥아더 관련 글이 문제가 될 게 없고 오히려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회가 냉전적대에 미쳐있다 보니 미치지 않고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이 오히려 미친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이 점을 저는 법정에서 준엄하게 설파했고 지금도 여전히 같은 심정이다. “만경대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 이 방명록이 말하는 만경대는 1946년 주로 항일무장투쟁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를 위해 특별히 세운 만경대혁명열사유자녀학원을 의미한다. 남한은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했지만, 북은 특별학교까지 세워 엘리트 양성소로 육성했고 지금 북의 엘리트들은 이곳 출신이 엄청 많다. 북은 독립운동을 하면 당대 뿐 아니라 후손에게도 명예와 혜택을 누리도록 배려해 왔다. 그래서 북이 고난의 행군 등 어려운 시기에도 이들 간부가 이탈하지 않고 북이 붕괴되지 않았다. 이 역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방명록에다 이렇게 후손까지 기리는 정신이 보편화하면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위해 헌신할 것이기에 통일 위업은 당겨질 수 있다는 생각이 즉흥적으로 들어 쓰게 된 것이다. 통일운동가로서 너무나 당연한 결론 아닌가. 이렇게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 상식이 될 수 없는 게 우리 사회이고 국가보안법은 사회 그 상위에 있다.

 

- 그동안 강 교수의 일부 발언들은 이론적 논쟁을 떠나 민족화해 지향이라는 명분에선 수긍할 수 있었다. 한편에서는 북한은 주적이기에 강 교수의 발언이 ‘친북 발언’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선 현재 어떤 입장인가.

▲ 주적이란 개념이 무엇인가.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키려는 주된 집단이나 국가를 말한다. 그렇다면 한반도 전쟁위기가 한국전쟁 이후 10회 정도 있었는데 한 번을 빼고는 모두 미국이 조성한 전쟁위기였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의 주적은 북이 아니고 미국이다. 저는 친북도 친남도 아니고 친민족-친한반도주의자이다. 그리고 분단시대를 넘어 평화통일시대로 가는 상황이니 이제 남한은 친북하고 북한은 친남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사실 북에선 저에 대해서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 남쪽에 온 북쪽 대표 한분으로부터 직접 듣기도 했다. 문제가 된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 라는 글에서 저는 6.25를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다”라고 서술한 바 있다. 흔히들 얘기하는 남침을 전제로 한 분석이었기 때문에 북측이 부담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짐작한다. 이는 ‘친북’이 아니고 ‘친남적’ 서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과거에 서술한 저의 입장을 문제 삼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단연코 다시 논쟁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간략하게 다시 언급하자면 이렇다.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내전이었다(외세가 기원한 내전). 당시 외국군이 한반도에 없었기에 집안싸움이었다. 후삼국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이 모두 삼한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을 했듯이 북한의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다. 우리 역사 책 어느 곳에서도 왕건이나 견훤을 침략자로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왕건을 통일대업을 이룬 위대한 왕으로 추앙한다. 그런데 이 같은 성격의 집안싸움인 통일내전에 외세인 미국이 사흘 만에 개입해 전쟁주체가 된 셈이다. 만약 집안싸움인 이 통일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 끝났을 테고, 물론 우리가 실제 겪었던 그런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다. 과거나 지금이나 이 입장에 변함이 없다. 이와 관련 대화와 토론에 있어서는 언제나 열려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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