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 지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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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자꾸만 먼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있다. 모든 게 안락한 자신의 집에서도, 화려한 도시의 근사한 카페에서도 어떤 이의 마음은 그렇게 낯선 곳을 향한다. 먼 곳에의 그리움. 하루키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길을 나섰듯, 신경아도 그 시작은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된 어떤 음악에서부터였다. 프랑스인 회사 동료의 차를 타고 가며 듣게 된 아프리카 말리의 음악. 대개 아프리카라고 하면 개발되지 않은 천연의 밀림이나 아무것도 없는 사막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지만, 그의 귓속에 들려온 음악은 그런 편견을 단번에 깨버릴 정도로 멋진 음악이었다. 이후 신경아의 삶은 줄곧 그 음악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다. 한국의 민속음악을 찾아다니던 PD인 남편이 은퇴하자 그 역시 조기은퇴를 감행하고, 마침내 그토록 꿈꾸던 말리행 비행기에 함께 탑승했다. 그리고 리듬 따라 선율 따라 흘러 세네갈과 모로코, 그리고 모리타니까지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며 시나브로 그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여정은 발칸반도까지 이어져 그리스와 알바니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까지 다다랐고, 내친김에 터키와 쿠르디스탄 지역까지 돌아보았다. 그들이 직접 들려준 음악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낯설고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신경아가 찾아간 곳은 누구나 찾아가는 익숙한 장소가 아니다. 말리는 북동부 사막지역을 점령한 분리주의자 반군들 때문에 꽤 위험한 지역이 되어, 론니플래닛이 수년째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었다. 타르티트 그룹과 같은 유명한 음악가들도 전란을 피해 부르키나파소로, 모리타니 난민촌으로 피해 있곤 했다. 낙타에 금과 소금을 싣고 하늘의 별을 나침반 삼아 오가던 사하라가 어느 사이 노예와 상아를 내다파는 길이 되더니 21세기에는 마약과 무기를 싣고 누비는 길이 되었다. 한편 최근에는 미국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하며 터키가 쿠르드족의 지역을 침공했다. 음악은 국경 없이 흐르는데, 세계정세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곳도 어떤 사람들에겐 고향이고, 삶을 일구는 터전이다. 다정한 현지 사람들의 조언과 도움에 힘입어, 그들은 조심스레 여정을 이어나갔다. 불확실하고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이 계속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가는 곳마다 음악이 흘러 넘쳤기 때문이다. 전쟁중이어도, 밥을 넉넉히 먹지 못해도 그들은 삶을 즐겼다. 덕택에 가는 곳마다 잔치에 초대되었고, 그들의 살아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전통음악은 그것이 태어난 땅에서 들을 때 그 감동이 배가된다. 제아무리 대단한 음악이라도 TV나 라디오, 음반을 통해서 듣는다면 그 현장감이 떨어져 흘려듣기 쉽다. 그래서 신경아의 여행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들이 사는 모습이 좋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일부러 스타 음악가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다니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찾아가 노래와 연주를 청하면, 그들은 놀랍게도 프로 못지않게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었다. 춤을 추기 위한 음악도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하면서도 절대 경박하지 않았고, 단순한 신세타령이나 사랑노래 같은 것들에도 나름의 깊이가 있었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낯선 이를 편안하게 맞이했고, 때때로 맛있는 음식까지 후하게 대접했다.

한편 어떤 곳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통음악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다니는 거리와 카페에서는 하나같이 힙합과 팝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들이 어렵게 찾아낸 귀한 현지의 민속음악은 일부 케이블 채널에서만 겨우 버티고 있기도 하다. 가는 곳마다 음악이 흘러넘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몇 날 며칠을 살피고 다녀도 아무런 음악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노래를 즐기지 않는 곳도 있었고,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노래하는 풍습을 잃어버린 곳도 있었다. 저자는 “문명이 문화를 파괴하지 않는지, 기술이 인간을 파괴하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은 오늘날 인류의 의무다”라는 빌헬름 몸젠의 말을 인용한다. 인터넷망이 거미줄처럼 깔리며 온 세상의 음악이 점점 하나의 문화권으로 통일되어가고 있는 이때, 잊혀가는 전통음악을 찾아 나선 신경아의 여정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끝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일을 하고, 끼니때마다 밥을 먹고, 노래하고 또 춤을 춘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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