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소유 따른 신분 사회 고착화 ‘지주체제’ 회귀
부동산 소유 따른 신분 사회 고착화 ‘지주체제’ 회귀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20.02.18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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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부동산 계급 사회가 갈수록 공고화되고 있다. 부동산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으로 부를 축적한 소수 세력이 땅과 집 절반을 점유한 시대다. 토지개혁을 단행해 지주체제를 없앤 초대 이승만 정부 이후 70여 년이 흘렀지만, 역대 정권들은 부동산투기를 잡지 못했다. 오히려 고용과 경제성장을 손쉽게 끌어 올리려 투기를 조장했다. 자본주의는 건강한 근로소득을 통해 성장하고, 불로소득은 자본주의 정신과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 당시의 세계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변하던 시기다. 일본도 산업화가 진행되었고 토지를 가진 지주세력이 약해졌다. 남한도 농지개혁법이 단행되면서 '지주(농경지 주인)'들이 몰락했다.

지주사회에서 농민사회로 바뀐 것이다. 농민들은 땅이 생기면서 희망이 생겼고, 내 나라 내 땅을 수호해야 한다는 애국심이 생겼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집권하면서 산업화정책에 따라 토건 산업을 통한 부동산 투기가 극심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은 부동산투기에 기반한 지대추구경제다. 즉, 토건산업에 뿌리를 둔 경제체제다. 대표적인 게 강남개발이다. 당시 강남지역은 대부분 논밭이나 과수원이 많았다. 잠실, 압구정이 그랬다. 이후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강남은 대규모 계획도시로 급변했다. 그랬던 강남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황금도시’가 됐고, 조선시대 ‘지주체제’와 같은 시대가 됐다.”고 지적한다.

1989년 노태우 정부가 ‘토지공개념 3법’을 제정해 투기를 막으려 했지만, 불발로 그쳤다. 노무현 정권도 투기세력을 막기 위한 정책을 고수했다.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양도세 등 규제를 풀었다. 부동산투기의 역사는 길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투기로 나라가 망한다는 의식이 생기면서 주춤했다가, 2002년에 다시 투기가 절정을 이뤘다. 현 정부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불을 붙인 부동산투기 시장을 승계했지만, 소방수로서 솜씨 있게 불을 제대로 끄지 못했다. 불이 온 산으로 옮겨붙었는데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부동산 철학도 없다.”고 토로하는 이태경 부소장을 만났다. 60년간 이어진 부동산투기 역사와 부동산 계급 사회, 역대 정권의 부동산정책, 양극화 문제 등을 들어 보았다.

 

ⓒ위클리서울/ 한성욱 선임기자

- 우리나라 상위 1%가 전체부동산의 50%를 차지하고 ‘부동산’이 신이 된 사회다. 계급 사회가 견고해지고 양극화도 심화 된 상태다. ‘부동산투기’ 그 뿌리가 언제부터 시작됐나.

▲ 사실 오늘날까지 투기가 이어진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조선이 있었고, 1919년 이후 일제 식민지 기간은 대지주 밑에서 농사를 짓던 소작제 사회였다. 그러다가 1950년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최초로 농지개혁이 단행됐다.

북한은 그에 앞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먼저 단행했다. 미 군정 체제에 있던 남한은 미국의 ‘체제안정 정책’에 따라 토지개혁 압력을 가했다. 농지개혁은 초대 조봉암 농림부 장관이 토지개혁을 완성했다. 당시는 세계 2차대전이 끝난 직후여서 각국의 식민지체제가 해체되고 독립을 하던 때다.

그중에서 대한민국은 손에 꼽힐 정도로 농지개혁을 아주 모범적으로 잘했다. 물론 ‘유상몰수 유상분배’였지만. 농민들은 내 땅이 생긴 자영 농업인이 됐다. 예전의 농민들은 소작농 신분이었고,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지주에게 모두 수탈당했다. 땅이 생긴 농민들은 한국전쟁 중에도 대한민국은 내가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나라가 된 것이다.

 

- 토지분배로 국가체제가 탄탄해졌다는 말인데.

▲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남한에 내려왔을 때, 농민들은 북한군의 강압에 의한 것은 몰라도 자발적으로 북한군에 부역하지 않았다. 대규모 민중봉기나 민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농지개혁 때문이다. 농지개혁으로 나라가 상당히 평등하게 된 거다.

지주계급이 소멸하고 평등사회가 됐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빠르게 산업화로 가는데 큰 발판이 됐다. 그런데 1961년 박정희 정권이 집권한 다음부터 이 체제가 빠르게 무너졌다. 부동산투기에 기반한 지대추구경제 즉, 토건산업의 비대화에 뿌리를 둔 경제체제로 변모했다.

대표적인 게 강남개발이다. 당시 강남지역은 대부분 논밭이나 과수원이 많았다. 잠실, 압구정이 그랬다. 이후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강남은 급속하게 대규모 계획도시로 탈바꿈했다. 강남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황금도시’가 됐다.

 

- ‘강남 불패’가 여전한 시대다.

▲ 강남이라는 거대 도시는 생성과 성장의 역사를 보면, 한마디로 박정희식 경제개발의 표본이다. 경제개발의 모델도 땅값을 엄청나게 올려놓은 ‘토건경제’와 ‘지대추구’, ‘부동산 불로소득 사유화’라는 3대 축을 들 수 있다. 이게 그때 만들어졌다.

1961년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황금 레일’이 깔렸고, 그 체제가 그대로 유지된 채 달려왔다. 이것을 문재인 정부가 방향을 완전히 틀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가 그런 시도를 한번 해보려 했다가, 중도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부동산 소유 여부와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신분이 완전히 갈라지는 현대판 신분 사회가 됐다. 건국 이후, 이승만 정권 때 처음으로 농지개혁을 했지만, 그게 다시 조선 시대의 ‘지주체제’로 회귀해 버렸다.

 

- ‘불평등·불공정’이 더 심화 된 원인을 든다면.

▲ 2000년 이후, 세계자본경제의 급속한 변화를 들여다 봐야 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속성은 혁신과 생산성의 끊임없는 제고다. 그게 지금 세계적인 주류가 됐고 만성화됐다. 세계 각국이 재분배 정책을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과는 돈을 엄청나게 풀어 버리는 정책을 썼다. 이자율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제로’에 근접했다. 이자율이 낮은 것은 돈값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한국도 기준금리가 최저다. 세계적으로 이자율이 이 정도로 낮은 적은 없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있기 전에 중앙은행들이 이자율을 떨어뜨리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시중에 풀린 국채까지 매입해 시중에 돈을 무한대로 풀었다. 통화량이 상상할 못할 만큼 늘었다. 그러나 임시변통에 불과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유동성 팽창과 돈값이 싸지면서 자산 ‘버블’이 커졌고, 부동산이나 주식이 가만있어도 자산가격이 올라갔다.

 

- 자본주의가 왜곡되고 거대한 투기판이 됐다.

▲ 그런 상황에서 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 자체가 유동성 과잉과 자산 버블로 초토화됐다. 자산 버블은 투기를 말한다. 대한민국도 당연히 글로벌 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된 나라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문 대통령도 유동성의 과잉을 말한 적도 있다. 한국의 서울 아파트 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른 때가 2014년 가을, 박근혜 정부 때다. 거의 4년 동안 올랐다. 엄청난 투기 붐이 일었고 불이 붙었다.

탄핵 이후 2017년 5월에 출범한 촛불 정부가 강력한 부동산정책을 추진할 것을 기대했지만, 시민들은 실망하고 있다. 부동산에 관한 철학도 빈곤했다. 이 대목이 노무현 정부와 비교된다. 노무현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집값을 잡으려 노력했다. 부동산을 공공재로 보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려는 의지와 철학이 강했다.

 

-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어떤가.

▲ 현 정부는 확고한 부동산 철학이 별로 없었고, 적정한 수준에서 가격상승만 관리한 것 같다. 철학도 부재했지만, 정책목표도 보수적이고 시장을 잘못 읽고 오판해 버렸다. 투기가 계속해서 거세게 불붙은 상황에서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한 ‘소방수’로서 불을 빠르게 진화했어야 했지만, 시장의 핵심요인을 잘못 판단했다. 그런 정책들이 착시현상을 일으키면서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다.

 

- 1989년 12월, 노태우 정부가 ‘토지공개념 3법’으로 불리는 택지소유상한법, 토지초과이득세법, 개발이익환수법을 제정했지만, 불발로 그쳤다.

▲ 당시 부동산 가격상승을 보면, 지금의 가격상승은 애교 수준이다. 노태우 정부가 했던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주택 200만 호 건설이고, 다음이 1기 신도시로 대표되는 공급확대다. 여기에 토지공개념 3법으로 대표되는 투기수요 억제정책이다.

이게 주효하면서 1991년부터 시장이 꺾이기 시작했다. 부동산이 잡히는가 싶더니 헌법재판소가 택지소유상한제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개발부담금제는 합헌으로 결론을 냈고, 토지초과이득세는 한정 합헌으로 평결했다.

노태우 정권이 만든 3법이 많은 상처를 받았다. 결국은 개발부담제 하나만 남았다. 노태우 정부가 했던 공급확대와 투기수요억제 정책은 김영삼 문민정부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갔고,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려 하지 않았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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