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선택된 자연, 생물학이 사랑한 모델생물 이야기
[신간] 선택된 자연, 생물학이 사랑한 모델생물 이야기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02.20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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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지음/ 김영사
ⓒ위클리서울/김영사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플라이룸'의 저자인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가 이번엔 26종의 모델생물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모델생물이란 초파리, 예쁜꼬마선충, 애기장대, 효모, 쥐, 제브라피시처럼 생물학의 현상을 연구하고 이해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되는 생물이다. 과학자들에게 모델생물은 단순한 소도구가 아니다. 우리가 작고 사소하게 여겼던 이 생물들이 사실은 자연에 숨겨진 작은 비밀들을 보여주며, 때론 과학사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꿔놓기도 한다. 생물학이 면역학, 유전학, 생물정보학 등으로 나누어진 것처럼 보여도, 현장의 생물학은 모델생물들을 축으로 분화되어 있다.

여전히 생물학의 현장에서 모델생물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26종의 모델생물에 얽힌 이야기를 그의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시선으로 조화롭게 엮어 풀어낸다. 모델생물의 독특한 특징부터 놀라운 과학적 발견과 생물학의 흐름, 선택의 주체인 과학자의 삶을 서술하면서 내일의 생물학과 사회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고찰까지 담았다. 장마다 등장하는 26종의 모델생물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다보면, 독자는 풍부한 생물학적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는 순간을 만나고, 생물학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생물학의 최전선에 있는 생물학자들에게 “저는 유전학을 연구합니다” 로는 충분한 자기소개가 되지 않는다. “저는 ‘초파리로’ 유전학을 연구합니다”와 같이 ‘초파리’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모델생물은 생물학자들이 복잡하게 뒤엉킨 생물학적 지식의 그물망 속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도록 돕는 고마운 존재이자, 자연을 탐구하는 플랫폼이다.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 이론에 가장 결정적인 확신을 얻게 된 것도 모델생물 덕분이었다. 그는 선택된 자연으로부터 ‘자연선택’이라는 위대한 생물학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모델생물을 선택하는 것부터 연구의 진행 과정, 연구 결과를 취합하여 인류에게 적용하는 데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은 예측 불가능하다. 각 모델생물의 특징이나 해당 사회의 분위기, 혹은 선택한 과학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그래서 모델생물은 더 생동감 있고 다채로운 생물학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모델생물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과학자와 현장의 이야기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는 모델생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과학적 사유를 통해 사회에 첨예한 제언을 던진다.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큰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과학자의 눈으로 사회에 드리운 그늘을 비춘다. 영장류 연구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배아의 유전자편집에 얽혀 있는 과학계 내부의 문제점을 다루고,(14장 영장류) 여러 모델생물 중에서도 생쥐가 대부분의 과학 연구비를 독식하며 모델생물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음을 지적한다.(18, 19장 생쥐) 또한 포유류의 유전체 동등성을 증명한 복제양 돌리를 통해 황우석 사태를 돌아보고,(23장 양) 돼지 뒤에 역설적으로 공존하는 숭배와 혐오의 이미지를 토대로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정치적 이념 대립을 꼬집으며 비판한다.(24장 돼지) 또 박정희 정권 시절의 통일벼, 희농 1호 등 유신의 잔재를 다루며 과학의 전면에 등장했던 정치적 수사와 과대 포장, 그에 따른 치열한 암투를 논한다.(25장 벼) 책의 말미에는 인간과 과학자를 새로운 모델생물이자 곧 사라질 모델생물로 넣어 과학자와 생물학, 과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29장 인간과 과학자) 생물학이 의학에 종속된 의생명과학의 시대를 지나 미래의 다윈들이 다양한 모델생물을 찾아 모험을 떠날 때까지, 그 중심엔 여전히 선택된 자연, 즉 모델생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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