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지음/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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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이 책은 등단 이후 40여 년간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살아온 장석주의 담백한 사물 예찬 에세이다. 문필가라는 직업은 어떤 사소한 사물이라도 자주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문필가는 사물 애호가이자 탐색자가 될 수밖에 없다. 비단 문필가만 그럴까. 문필가를 포함한 모든 예술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섬세한 감각과 시선으로 사물을 대하고 우정을 나눌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저마다 어떤 사물을 각별히 아끼고 탐닉했을까. 이 책은 장석주 시인이 꼽은 예술가들과 사물의 우정에 관한 짧은 이야기이다. 글마다 분량은 짧지만 예술가들의 사소한 일상에서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사물들과 어떻게 함께했는지, 때로는 매혹적이게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사물이란 “날마다 접하는 삶의 조력자인 것, 내면의 필요에 부응하며 말없이 굳건한 것, 절정의 순간에 지는 꽃처럼 덧없고 덧없어서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 화가, 가수, 배우 등 다양한 직군의 동서양 예술가들과 연필, 우산, LP판, 보청기, 담배, 자전거, 스카프 등 온갖 사물들이 등장한다. 나혜석과 이혼 고백장, 헤밍웨이와 몰스킨 수첩, 카프카와 타자기, 에드워드 호퍼와 발레리 평전에서 김향안과 수첩,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라이카 카메라, 케테 콜비츠와 자화상, 로자 룩셈부르크의 새와 꽃과 조약돌까지 잘 알려진 인물들이나 조금은 낯선 이들과 사물의 관계를 드러낸다. 모든 글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명호의 일러스트가 있어 보는 재미까지 더한다.

예술가들의 삶은 물음표로 가득차 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왜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사랑했을까? 천상병 시인이 죽은 줄 알고 그 지인들이 유고시집을 엮었는데, 이를 받아본 천상병 시인이 처음 내뱉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김수영 시인이 거리 한가운데서 자기 아내를 우산으로 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렇듯 호기심을 자아내는 예술가들의 내밀한 모습이 이 책에는 다양한 사연과 함께 담겨 있다. 에곤 실레가 “돈은 악마야!”라고 외친 이유, 그리고 프로이트가 “그토록 빨리, 그토록 훌륭하게, 그토록 완벽하게 나를 파악한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라고 언급한 여성이 누구였는지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예술가들의 삶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예술가들의 삶의 궤적을 훑다보면 책 말미의 비평 「사물의 시학」에 유달리 눈길이 간다. 사물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사물이란 침묵에 잠긴, 하찮고 부차적이면서 소모되는 물건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물을 조금 다르게 보는 부류도 있다. 바로 시인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시선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시인의 세계에서 사물은 무엇보다도 분주하며 인간에게 사유를 북돋아주는 생명체다. “시인이 사물에 어떻게 감응하고, 말을 건네는가를 살피”면서, 무뚝뚝하고 차가운 사물과 교감하는 법을 시인이 아닌 우리도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물의 집합 위에 삶을 세운 예술가들을 만나다보면 우리도 자신의 일상과 세계를 이루는 주위 사물에 따스한 눈길을 건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그들의 독특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한 예술가의 삶의 궤적을 찬찬히 따라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예술가들의 삶을 가뿐한 마음으로 따라가며 살피는데, 그렇다고 우리를 너무 깊숙이 데려가 길을 잃게 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예술가들의 압축된 생애와 그들의 “운명을 빚은 계기가 된 사물”을 이야기하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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