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민 지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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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2012년 창비 좋은어린이책 대상을 받은 이래 출간하는 동화마다 큰 사랑을 받아 온 작가 진형민이 청소년 독자를 위해 펴내는 첫 번째 책이다. 간혹 웹진이나 앤솔러지에서 그의 청소년소설을 만나 본 독자들이라면 손꼽아 기다려 왔을 소식이다. 총 일곱 편의 작품을 모은 이번 책은 독자들의 오랜 기대에 충실히 부응한다.

'곰의 부탁' 속 인물들은 모두 청소년이지만,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지칭되곤 하는 집단으로 획일화될 수 없다. 작가가 오랫동안 그 곁을 지키며 마음속에 층층이 축적해 온 한 명 한 명의 아이들 모습이 녹아 있기에, 이야기 속 아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고유하다.

경쾌한 템포로, 그렇지만 흩날리지는 않고 단정하게 흘러가는 문장들이 일곱 편의 소설을 이룬다. 소설 속 갑갑하고 무거운 상황을 가뿐하고도 무심하게 툭툭 풀어내는 능숙함, 그 사이사이에 위트와 유머를 쉼표처럼 박아 놓는 진형민 특유의 노련함이 응축되어 있다. 덕분에 이 책의 독자는 웃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가끔은 이야기 속 인물과 함께 세상을 향한 욕지거리를 내뱉고 말 것이며 끝내는 울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곰의 부탁』으로 만나게 될 아이들은 “경계 위의, 경계 밖의 청소년”(송현민)이자 “탁한 풍경 속에서 버티며 살고 있던 진짜 아이들”(송미경)이기 때문이다. 결국 '곰의 부탁'은 부조리와 그로 인한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느닷없는 폭력의 가능성마저 감내해야 하는 이 세계를 꿋꿋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웃기지만 하나도 웃기지 않은 이 이야기의 장르는, 말하자면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곰의 부탁」)인 것이다.

표제작 「곰의 부탁」의 ‘나’는 해를 그릴 때면 빨간색으로 칠해 왔다. 아무 의심 없이 자신 있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해를 한 번도 자세히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녘 겨울 바다에 선 ‘나’의 눈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해는, 빨간색이 아니라 “눈부신 노란색”이다.

작가는 바다나 해처럼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함에도 많은 이들이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던 존재들을 각 이야기의 무대 중심에 세웠다. 배달 노동을 하며 “돈 생각 좀 안 하고 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 “쉬쉬 숨겨야 하는” 사랑을 하는 아이, 예민한 마음으로 콘돔 봉투를 처음 뜯는 아이, 타국의 골목에서 “세상에 없는 듯” 살아가야 하는 아이까지. 이 아이들은 “숨겨야” 하거나 “자꾸자꾸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지만 실은 “할 말 없음이 가장 솔직한 내 심정”이라며 설핏 속내를 내비친다. 세상이 지레 넘겨짚거나 심지어 없는 취급을 할지라도, 이들이 눈부신 노란색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더 보탤 말이 없을 정도로 명백한 사실이므로. “거기 있음을 아는 것이 나의 시작”이라는 작가의 말에는 누구든 자신의 존재를 해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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