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송태욱 옮김/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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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현재 일본 문단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는 문학 평론이나 이론, 연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평가로서 그의 유려한 문장은 에세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따뜻한 감성과 예리한 지성이 어우러진 그의 에세이들은 출간될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많은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말의 선물'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말’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평소에는 거의 의식하지 않는 말의 본질과 의미, 말이 우리의 삶에 던지는 화두에 관한 고백적이며 성찰적인 글 스물네 편을 담았다. 말과 관련하여 동서고금의 고전과 명저에서 고른 글들과 저자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이 어울린 에세이는 한 편 한 편이 마치 말의 풍경화 같다. 얼핏 건조하고 사변적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을 저자는 눈앞의 독자에게 ‘말’을 하듯 자상하고 조용한 어조로 풀어나간다.

언어에 대한 비평적 탐구라기보다 말이 인간의 삶과 일상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차분한 사유가 담긴 이 책에서는 일본을 포함해 동서고금의 작가와 선철(先哲) 들의 말이 자주 소개된다. 미야자와 겐지, 다자이 오사무, 야나기 무네요시, 시몬 베유, 릴케, 에머슨, 플라톤, 키케로 등이 남긴 글과 사유의 흔적들이 저자 개인의 내밀한 고백과 함께 책의 풍미를 더한다. 특히 젊은 시절 만난 회사 상사와의 강렬한 일화를 담은 「하늘의 사자」,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아버지를 회고하는 「읽지 않는 책」,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통해 인간 정신의 혁명성을 들여다본 「메로스의 회심」 같은 글이 주는 감동과 여운은 자못 인상 깊다.

이 책은 한 권의 독특한 문장 작법서 혹은 글쓰기 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 모두 ‘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지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한다. 실제로 저자는 몇 년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저자가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얻은 깨달음과 비평가로서 얻은 글쓰기의 비밀을 이 책에서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의 비밀은 실용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저자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글쓰기, 자기 마음에 귀기울이려 노력하는 진지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관계에 지치고 일에 찌든 우리에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일면 단순하다. 바로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말을 찾으라는 것. 쉽게 찾을 수 없을 게 분명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만큼 헤매게 될 테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책을 읽거나 서투른 솜씨로나마 글을 써보는 이유 또한 모두 그러한 시간을 살아내는 과정이 아닐까. 『말의 선물』은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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