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
[신간] 제주 사는 우리 엄마 복희 씨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0.10.12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비 글/ 박조건형 그림/ 김영사
ⓒ위클리서울/ 김영사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돈 쓰면 큰일 날 것처럼 굴고, 앞뒤가 맞지 않는 혼잣말을 노래하듯 흥얼거리는 엄마. 어느덧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의지나 자식에 대한 진심은 결코 약해지지 않은 엄마, 복희 씨. 제주 이야기를 담은 책은 많지만, 이 책은 제주에 사는 복희 씨를 통해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나둘 접하다보면 엄마, 할머니에 대해 지녀온 그리움이나 미안함, 애잔함 등의 감정이 생생하고 풍부하게 되살아난다.

소설가인 김비의 글에는 제주의 따스한 햇볕과 시원하고도 서늘한 바람, 으스스한 추위까지 스미어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을 오감으로 느끼는 듯하다. 거기에 수채화로 표현한 박조건형 작가의 제주 풍경이 더해져 여행의 깊이가 더욱 깊어진다.

글과 그림으로 담아낸 파란 바다와 탁 트인 오름, 만만치 않지만 훈훈함이 묻어나는 한라산 등반길 등의 풍경은 이들 셋과 함께 제주를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이들 셋의 제주 살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 자신의 제주 여행의 추억, 엄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인간다움이 듬뿍 느껴지는 표현으로 인해 복잡다단하고 사소하지만은 않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드로잉 에세이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나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지내기는 쉽지 않다. 잠깐의 여행이 아닌, 한 달이 넘는 ‘살이’라면 더욱 그렇다. 함께해서 기쁘지만 함께라서 피곤해지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정말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에게 여과 없이 불쾌한 감정을 툭툭 내뱉기 십상이다.

이 책에서 소설가 김비가 사랑하는 엄마 ‘복희 씨’와 소중한 남편이자 이 책의 그림 작가 ‘박조건형’과 제주에서 함께한 ‘살이’ 역시 그렇다. 서로 다른 개성의 세 사람이 사십 일간 부대껴 함께 생활하고 여행하는 시간이 마냥 좋기만은 어렵다. 불편하고 답답하며 맘에 안 드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놓지 않는다. 불쑥 튀어나오려던 가시 돋친 말을 꾹 삼키고, 상대방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며, 조심스럽게 상대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한다. 천천히 이해해간다.

그래서 이 책은 그들 간의 다툼이나 갈등을 관람하기보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예의와 태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단순히 ‘우왕좌왕 여행기’ 정도의 경험만 전하는 것 이상으로, 따스한 뒷맛을 남긴다.

소소하면서도 아웅다웅한 제주 살이가 될까, 했는데 누가 꾸며두기라도 한 듯 위기가 찾아온다. 소설 같은 ‘박조건형 실종 사건’과 ‘한라산 발목 부상 사건’ 그리고 그 속에서 ‘복희 씨’를 10년 만에 만나게 된 사연까지. 결코 평온하고 고요할 수 없는 이들의 인생 이야기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침잠하지 않는다. 김비 작가가 써내려간 아름답고 따스한 문체로 이야기는 너무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게 흘러간다. 오히려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서로를 돕는 모습, 또 그런 모습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책에 빼곡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인생이지만, 그 경험 속에서 받고 또 주는 도움이 있기에 살아내게 되는 것.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제주 살이에서 자연히 생을 떠올리고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해피 엔딩과 새드 엔딩,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맴도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으며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