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인터뷰①] 배우 고영빈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불량하고도 고급스러운 암흑과 치명적인 붉은색 조명의 무대는 연옥을 연상케 했다. 스포트라이트가 ‘올드맨’을 비추었을 때, 배우 고영빈의 얼굴엔 루시퍼와 가브리엘이 처절하게 공존했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첫 번째 에피소드. ‘영맨’과 ‘올드맨’이 무대에 올랐을 때, ‘올드맨’이라는 배역 이름은 일종의 위트인 줄 알았다. 고작해야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두 남자 중 어느 쪽이 ‘영’하고 어느 쪽이 ‘올드’하다는 걸까? 

관객을 압도하는 ‘올드맨’의 눈빛, 그 안에서 일종의 여유마저 읽었을 때 ‘올드맨’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는 27년 차 배우 고영빈이었다.

가을의 자락. 대학로 문턱의 한 카페에서 막 연습을 마치고 나온 고영빈을 만났다.

 

배우 고영빈 ⓒ위클리서울/ 알앤디웍스 제공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지난 9월부터 두 달 동안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했던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알 카포네’가 악명을 떨치던 시대, 시카고 렉싱턴 호텔의 방 661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3부작 연극이다. 세 시간에 가까운 웅장한 러닝타임이었지만, 90분의 경기 후 연장전과 페널티킥까지 이어지는 월드컵 토너먼트 경기처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유난히 다른 공연들보다 배우들이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보통은 한 인물의 세계에 집중해 연기하면 되지만 이 작품의 경우 세 편의 다른 공연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경험은 저도 배우 하면서 처음이었거든요.”

‘카포네 트릴로지’는 쇼걸 ‘롤라 킨’의 이중생활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코미디에 가까운 첫 번째 에피소드, 카포네 조직의 2인자 ‘닉 니티’의 처참한 생존 싸움이 펼쳐지는 다소 무거운 두 번째 에피소드, 젊은 경찰 ‘빈디치’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자 비극인 세 번째 에피소드로 나눠진다. 그러면서도 한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배역들을 단 3명의 배우가 모조리 나누어 연기한다. 스스로를 다중인격자로 만들지 않으면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일까.

“주말엔 3부작을 이어 공연했지만, 주중엔 3부작 중 2개 에피소드를 공연해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이어 하거나, 두 번째와 세 번째 에피소드를 이어 하면, 계단을 밟아가는 것처럼 중간에 약간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공간이 있죠. 하지만 드물게 있던 첫 번째와 세 번째 에피소드를 이어 공연하는 날엔, 활기찬 분위기에서 훌쩍 비극으로 넘어가니 감정이나 역할에 집중할 시간이 짧아 까다로운 편이에요. 그러면서 뭔가 ‘잘하고 있나?’ 하는 의심도 좀 들게 만들고.”
 
‘연기’라는 이 기묘한 세계는 27년 차 베테랑 배우조차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연기 인생 60년이 가까운 국민 배우 신구조차 ‘아직도 연기를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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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공연사진 ⓒ위클리서울/ 제공 알앤디웍스

배우 고영빈

“아주 어렸을 땐 내가 뭘 잘하는지 못하는지 찾기가 어려웠어요. 되고 싶은 게 뭔지 얘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중학생이 됐을 때,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빛나 보이더라고요. 고민 없이 움직였어요. 탤런트 학원이라는데 저 혼자 찾아가 문을 두드렸고, 오디션에 합격했어요. 집에 가서는 반협박 식으로 얘기했죠. ‘학원 등록금 안 주면 학교 안 가겠다’고. 그렇게 탤런트 학원에서 수업도 받으면서 아역 탤런트로 조금씩 활동을 시작했는데, 키가 갑자기 많이 커버린 거예요. (고영빈의 키는 180이 훌쩍 넘는다.) 얼굴은 어린데 키가 너무 커지니까 아역 오디션에서 자꾸 떨어지는 거예요 고등학교도 가기 전이었지만 제 길이 아닌가 싶었죠. 그렇게 평범하게 고등학교 진학하고 대학 준비를 시작했어요.”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은 아직이었다. 집안의 반대로 고영빈이 선택한 진로는 중앙대 연극영화학과가 아닌 전기공학과였다. 비틀즈가 실용음악을 전공을 하지 않았고,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의대생이었듯 예술 관련 전공이 예술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될 리는 없다. 고영빈은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찾아갔다.

“대학교 들어가선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어요. 학과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동아리 활동을 여럿 했어요. 그중 연극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연극 무대라는 데를 처음 서 봤는데, 제 인생에 가장 큰 충격적인 울림이 있었어요. ‘대학연극제’라는데 나가 우리 팀이 대상을 받고 관객들이 환호하는데, ‘와, 이건 뭐지?’하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희열을 느꼈어요. 그전까진 연극이 뭔지도 몰랐고, 연극을 보기는커녕 대학로에 나와본 적도 없었거든요. 황홀한 무대 첫 경험이 끝나고 ’연극반 선배님들이 대학로라는 곳에서 연극을 한다더라‘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냥 대학로에 무작정 찾아갔는데 길에 뭐가 포스터가 붙어있길래 연극 오디션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뮤지컬이었어요. 그게 또 운 좋게 붙어버렸고. 스물 두 살로 넘어가던 그 겨울에 제 인생이 바뀌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모르니까 그렇게 확 빠졌을 거 같아요. 연극이 뭔지, 뮤지컬이 뭔지, 무대 위 분들의 생활은 어떤 건지 따져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여전히 그렇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누구와 상의를 안 해요. 상의해 봤자 어차피 제 맘대로 할 걸 알기 때문에. 대책 없는 성격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냥 가보는 거지 뭐’ 하면서. 그런 낙천적인 선택들로 여기까지 왔고, 20년이 훌쩍 지나 이 길을 여전히 걷고 있는 걸 보면, 글쎄요. 잘 선택한  것 같기도 해요.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 그토록 바랬던 배우의 길에 접어들어 세종문화회관 예술단에 입단해 활동을 시작했지만, 매일 아침에 출근해 트레이닝 받고, 연습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일 년에 정기공연 두 편을 하며 월급 받아 생활하는 ‘준 공무원’ 같은 일상은 고영빈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4년의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생활을 뒤로하고 대학로 연극 판으로 눈길을 향했을 때, 기회가 아주 제대로 찾아왔다.

”뮤지컬 ‘페퍼민트’와 ‘그리스(Grease)’. 2003년 가장 뜨거웠던 두 작품을 하게 됐어요. 저같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 뮤지컬 신의 가장 유명한 사람들과 서게 된 거죠. ‘페퍼민트’는 SES 바다와 남경주 선배님과 함께 주연을 맡았고, ’그리스‘도 소위 그 당시 대학로에서 잘 나간다는 배우들이 전부 모였어요. 오만석, 엄기준도 있고, 홍록기 형도 있으셨고, 김소연도 있었고. 배우들 간 시너지가 좋았고 작품들에 대한 반향도 컸어요. ‘와 이거다’ 싶었죠. 팬클럽도 생기고 러브콜도 굉장히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정상으로 가는 열차에 오른 배우. 그는 스스로 철로를 바꾸고 훌쩍 일본으로 떠났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정이었다.

“이대로 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문득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의 본고장에 가서 배워보고 싶은 마음도 커졌고. 한국보단 선진화된 시스템에서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죠. 그러던 차에 일본에 있는 극단과 연결이 됐어요. 유학까진 아니더라도 극단에서 돈 받고 연기를 할 수 있고, 트레이닝 시스템이 되게 체계적이라고 하니까 ‘아, 그럼 여길 가야겠다’하고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어요. 그랬더니 주위에서 당황스러워했죠. ‘어? 혜성처럼 누가 나타났던 거 같은데? 갑자기 사라졌네?’하면서.”

“주위 반응과는 별개로 일본에 가고 나서는 좋았죠. 당시 한국보단 조금 더 뮤지컬 선진국이었던 일본의 시스템을 배우고 무대도 여럿 경험해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던 중 극단 대표님이 한국 배우들이 재능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한국 배우들을 대거 입단시키기 시작했어요. 서울예대 뮤지컬 전공 학생들도 많이 오고. 한국 배우들이 일본 배우들보다 뮤지컬 연기하는 실력들이 훨씬 좋았거든요. 점점 한국 배우들이 많아지고, 거기서 2년쯤 있었을 때 한국에서 러브콜이 들어와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그 후 고영빈은 뮤지컬 ‘캣츠’, ‘바람의 나라 - 무휼 편’, ‘햄릿’, ‘대장금’, ‘마마, 돈 크라이’, ‘스트리트 오브 마이 라이프’, 연극 ‘클로저’, ‘엘리펀트 송’ 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작품들에서 스스로를 빛냈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공연사진 ⓒ위클리서울/ 제공 알앤디웍스

고영빈을 연기하게 만드는 건 어떤 것들일까?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듯 결핍을 채우기 위한 표출 방법이었을까? 혹은 사랑이었을까? ‘카포네 트릴로지’ 무대 위의 그는 적어도 과장된 분노보단 감정의 여백을 만들었다.

”제 성향상 너무 과격하거나 과한 쪽을 택하지는 않는 편인 것 같아요. 대본을 접할 때 ‘사람이 거기까지 악인이 돼야 돼?’ ,’굳이 거기까지 사람이 망가져야 돼?’ ‘그래도 얘도 사람일 텐데’ 같은 제 나름대로의 캐릭터 해석이 있는데, 굉장히 비극인데도 불구하고 연민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아 저 나쁜 놈 죽여야 되는데’하고 느끼기보단 ‘하, 저 나쁜 놈 얼마나 괴로웠을까’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제가 일부러 의도하는 게 아닌데도, 그냥 제 목소리와 연기 스타일, 외적인 애티튜드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드나 봐요.“ 

”12월 공연하는 연극 ‘곤 투머로우’에선 갑신정변에서의 고종을 연기해요. 어느 날 연습하고 나오는데 연출가가 저에게 ‘고종이 각각 다른 세 분이 있는데 고영빈의 고종은 너무 슬퍼요. 그래서 좋아요’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또 슬퍼요?’그러고 왔죠. 아무리 연기를 잘하고 캐릭터를 잘 표현해도 저 심연 같은 마음 안쪽을 들어가도 제가 용납이 안 되는 감정과 저라는 사람의 충돌이 생겨버리면 연기를 할 수가 없거든요. 너무 거짓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고영빈의 대답이 ‘연기’라는 것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자신까지 속여 연기를 해야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진정한 연기가 맞을까? 간혹 사람들은 자기 삶을 연기 배역에 투영시켜버린다는 ‘메소드 연기’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한동안 한국 영화를 잘 보지 않았던 때가 있어요. 욕으로 점철된 뒷골목 얘기, 소리 지르고 부수고... 핏대 세우고 핏줄 터트리고 막 그러면 연기 잘한다고 환호하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아름다운 화면을 보고 싶고, 편안한 말들과 정서를 느끼고 싶은데.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죠. 방송했을 때도 그렇고, 제가 악인을 연기하면 잘 할 것 같다는 얘길 듣고, 실제로 가끔 악역 맡으면 잘 어울린다고 많이들 얘기해요.”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내리는 고영빈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카포네 조직의 2인자 ‘닉 니티’가 조직의 겁박에 손가락이라도 하나 자르고 온 것처럼.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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