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부터 편의점까지 가상세계 입점

[위클리서울=김정현 기자] 가상세계에 또 다른 내가 경제활동을 하는 날이 머지않았다. 나와 비슷한 아바타가 서울과 닮은 공간에서 놀고 즐기며 돈까지 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진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한 이야기다. 3차원 가상세계에서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곳.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너도나도 앞다퉈 뛰어드는 메타버스란 과연 무엇일까.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pixabay.com, CU, GS25, 구찌)

가상현실에 투자하는 기업들

메타버스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는 VR(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통해 게임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개념이 등장했다.

메타버스는 기본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아바타를 주축으로 이뤄진다.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을 가상세계로 옮겨오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도 구현된다. 코로나19로 한강을 가지 못하는 나 대신, 나의 아바타가 메타버스 속 한강공원 벤치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는 것. 즉,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를 실현할 수 있는 또 다른 가상공간이 바로 메타버스다.

대표 플랫폼으로는 네이버 계열사인 네이버제트가 만든 ‘제페토’, 미국의 롤플레잉 게임 ‘로블록스’, 화상회의 플랫폼 ‘게더타운’, SK텔레콤이 만든 ‘이프랜드’, 캐주얼 게임 ‘플레이투게더’ 등이 있다.

제페토의 경우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전 세계 200여개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2018년에 출시돼 3년6개월 만에 글로벌 누적 가입자 수 3억명을 돌파했다. 재작년 2월 가입자 2억명을 넘어선 데 이어, 이후 2년 만에 3억명을 웃돌았다. 이 중 약 95%는 해외이용자다.

제페토 글로벌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000만명, 아이템 누적 판매량은 23억개에 달한다. ▲크리스찬 디올, 구찌, 나이키, 랄프로렌 등 패션기업 ▲하이브, JYP, YG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 ▲현대자동차, 삼성 갤럭시 등 국내 대기업과 제휴를 통해 다양한 글로벌 지식재산권(IP)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CU-CJ제일제당 콜라보레이션 마케팅 ⓒ위클리서울/ CU 제공

편의점 빅3 모두 ‘메타버스’ 진출

메타버스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기업은 다름 아닌 유통사들이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도 이미 오프라인 쇼핑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는데, 특히 펜데믹 이후 급격하게 온라인 쇼핑에 역전됐다. 유통기업들 입장에서는 당장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온라인 큰손으로 자리 잡은 MZ세대를 겨냥할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메타버스는 주 이용층이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Z세대’로 이뤄져 있다. 제페토의 경우 95%가량이 해외 이용자다. 코로나19로 국내에서 오프라인 홍보를 할 수 없고, 해외 진출도 불가해진 상황에서 메타버스는 잠재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마케팅 수단으로 떠올랐다.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을 하는 업계는 다름 아닌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나이가 어리고 구매력이 낮은 Z세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쇼핑 채널 중 하나다. 메타버스를 활용하기 이전에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라이브 커머스 등 다양한 디지털 마케팅을 운영해왔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제페토에 ‘CU제페토한강공원점’, ‘CU제페토교실매점’, ‘CU제페토지하철역점’ 등 3개의 가상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점포는 제페토 공식 맵인 한강공원과 교실 등에 입점해 있다. 실제 편의점이 한강공원과 학교 카페테리아, 지하철 내부에 존재하듯이 메타버스에서도 ‘입점’ 형태를 택했다.

한강공원점과 교실매점은 아르바이트생 ‘하루’가 매장에 입장하는 아바타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지하철역점은 무인 편의점 콘셉트로 아바타가 접근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며, 아바타가 퇴점 시 ‘짤랑’하는 자동 결제 사운드가 적용되는 디테일을 살렸다. 아르바이트생 하루가 입고 있는 의상과 가방, 신발 등을 제페토에서 따로 판매된다. 해당 아이템들은 론칭 한 달여 만에 22만개가 팔렸다.

CU는 가상 편의점을 운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빙그레 바나나우유, CJ제일제당 비비고·햇반컵반 등과 협업해 재미 요소를 강화했다. 매대에 진열된 바나나우유나 햇반컵반 등을 터치하면 아바타가 손에 들고 있는 연출이 가능하다. 의류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와도 콜라보해 아바타가 입을 수 있는 의상을 출시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월드인 _GS25 맛있성_ 앞에 아바타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미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월드인 'GS25 맛있성' 앞에 아바타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미지 ⓒ위클리서울/ GS리테일 

편의점 맞수인 GS25도 이에 질세라 성(Castle)을 테마로 한 ‘GS25 맛있성’ 맵을 열고 제페토에 진출했다. 이 맵은 제페토 이용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맵 접속이 가능하며, 제페토 검색창에 ‘GS25 맛있성’ 혹은 ‘GS25 계정(@gs25_gsrio)’을 입력하면 입장할 수 있다.

내부는 편의점과 카페, 공유주방 등 GS25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콘텐츠 장소가 구현됐다. 점프게임 및 미로게임 등 이용자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놀이 공간이 마련됐다. 맵 곳곳에 실제 신상품, 정기 행사, 이벤트 등 홍보물을 부착해 온·오프라인 고객 간 상호 연결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편의점업계 3위 기업인 세븐일레븐은 제페토가 아닌 게임 기반 메타버스 ‘플레이투게더’에 입점했다. 플레이투게더는 가상세계 ‘카이아 섬’을 배경으로 전 세계 이용자들과 함께 다양한 미니게임과 취미생활 등 아기자기한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해 4월 출시 이후 전 세계 7000만 건 이상 누적 다운로드 및 일일 이용자 수(DAU) 400만 명을 기록했다. 특히 대만과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의 큰 인기를 바탕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카이아섬 광장에 실제 매장과 동일한 모습으로 구성된 ‘세븐일레븐 카이아섬점’을 오픈했다. 이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획득한 재화(게임머니)로 전주비빔밥, 세븐카페, 바프허니버터팝콘 등 13가지 상품을 아바타가 구매해 먹고 마시는 체험이 가능하다. 게임에서 체험한 상품과 서비스는 세븐앱 링크를 통해서 곧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활용해 브랜드를 더욱 친숙하게 알리기 위해 가상세계를 준비했다”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메타버스 플랫폼과 연계해 MZ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온·오프라인 시너지 효과 창출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페토 구찌 협업
제페토-구찌 협업 ⓒ위클리서울/ 출처=네이버제트

패션·뷰티·영화관도 메타버스서…

패션기업들도 메타버스 진출에 한창이다. 가장 먼저 제페토에 진출한 패션 기업은 다름 아닌 럭셔리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다. 구찌는 지난해 5월 제페토와 제휴를 맺고 IP를 활용한 다양한 패션 아이템과 3D 월드맵을 정식 론칭했다.

구찌는 입점과 함께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패턴이 수놓아진 의상과 핸드백, 액세서리 등 총 60여 종 아이템을 정식 출시했다. 봄·여름 상품 일부를 구현한 ‘버추얼 컬렉션’과 SNS 상에서도 화제를 얻었던 ‘도라에몽X구찌 컬렉션’ 등 아이템이 다양하게 포함됐다.

이용자들은 구찌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 ‘구찌 빌라(Gucci Villa)’ 월드맵에서 직접 아이템을 착용해 볼 수 있고, 유럽풍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세계 각국의 이용자들과 만나며 소통할 수도 있다.

MCM도 지난해 말 제페토에 ‘MCM 큐빅맵’을 열고, 백팩과 모자 등 가상 패션 아이템 15종을 출시했다. 공간은 창립 45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큐빅 모노그램’ 테마로 꾸며졌다. ▲캐릭터가 점프해서 위태로운 큐빅 계단을 올라가는 ‘점핑 큐빅 게임 존’ ▲MCM 인형과 풍선이 가득한 ‘멜팅 팝 존’ ▲MCM 2021 F/W 캠페인을 촬영한 ‘메타버스 스튜디오’ ▲디스코 파티를 즐길 수 있는 ‘MCM 디스코 스테이지’ 등 4가지 방으로 구성됐다.

MCM 관계자는 “힙한 트렌드의 선두에 있는 글로벌 MZ세대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MCM 메타버스 세계관을 알리고, 브랜드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자 제페토 진출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영화관 CGV도 지난 1월 ‘제페토 CGV월드’ 맵을 오픈했다. 다양한 상영작 포스터가 비치된 로비에서 보고싶은 영화를 고른 후 티켓 판매기에서 티켓을 출력하고, 매점에서 팝콘과 음료 등을 구입해 로비 테이블에서 취식을 즐기는 등 실제 영화관 방문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메타버스에서 할 수 있다. 로비 한쪽에는 CGV 공식 캐릭터인 ‘파코니’와 기념 촬영이 가능한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해외이용자가 많은 만큼 국내 브랜드 진출도 활발하다. 국내 토종 커피전문점 이디야는 제페토 내 공식 맵 ‘포시즌카페’에 입점했다. ‘한옥 카페’ 콘셉트의 외관과 실제 매장과 흡사한 인테리어를 적용했다. 방문 고객들은 가상 메이트 캐릭터 ‘토피(TOFFY)’와 매장 내 진열돼 있는 다양한 인기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뷰티 브랜드 헤라도 제페토 한강공원점에 가상 팝업스토어 ‘로켓위시’를 입점했다. 일러스트 아티스트 방상호 작가의 시선으로 담아낸 서울의 모습과, 희망과 관련된 오브제들로 내부를 꾸몄다. 메이크업존, 포토존, 무중력 서재 등 3개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헤라 위시로켓 한정판 제품을 체험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이머진(EMERGEN) 리서치는 2020년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약 476억9000만 달러(57조 7907억원)에 도달했으며, 2028년까지 8480억 달러(1027조 6064억 원)로 연평균 약 43.3%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타버스가 Z세대와 해외 이용자 등 잠재 고객을 만나기 위한 새로운 온라인 마케팅으로 부상했다”며 “공간을 기획하고 구현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이제 기업에게 메타버스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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