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는 ‘팜유’ 인도는 ‘밀’ 수출 중단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제한에 이어 인도가 밀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세계 3위 밀 수출국이다. 현재까지 국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만, 이 같은 수출 중단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빵과 라면, 제과 등 국내 가공식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지난해부터 식품 가격이 인상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식품기업들은 수출 중단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

인니, ‘팜유’ 수출 금지…온·오프라인 식용류 대란

인도네시아는 지난 4월 28일부터 식용 팜유 수출을 금지했다. 팜유는 야자 열매 과육(함유분 16~20%)을 쪄서 압축 채유 되는 식물성 유지이다. 전 세계적으로 최고 생산을 보이는 유지 자원이며, 연간 약 5500만톤 정도가 생산 및 소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두유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다른 식물성 지방 대비 높은 산화안정성을 갖고 있어, 제조·유통 과정 중 산패되기 어렵다. 이에 라면과 과자, 식용유, 마가린 등에 주로 사용되며 화장품과 비누, 샴푸, 세제 등 생활 소비재에도 쓰인다.

인도네시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현재 팜유 수출을 중단한 상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세계 해바라기씨유 수출량의 75%를 맡고 있는데 양국에 전쟁이 발생하자, 세계 3위 팜유 보유국인 인도네시아가 자국 내 안정화를 위해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세계 최대의 팜유 생산국인 우리가 식용유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국민에게 식품을 저렴하게 공급할 필요성을 글로벌 대란 우려보다 우선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중단 조치 발표 직후 미국 시카고 거래소의 콩기름 거래가격이 4.5% 오르는 등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같은 국제 식용유 가격 상승은 국내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오뚜기 콩기름(900ml)의 5월 평균 판매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33.8% 오른 4916원이다.

이에 현재 온·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식용유 구매 제한이 시작됐다. 당장 공급 차질은 없으나, 사재기를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로 풀이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코스트코 등 창고형 할인매장, 하나로마트 등은 1인당 식용유 구매 개수를 2개로 제한하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구매 제한을 하지 않고 있지만 식용유 대란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몰에서 식용유를 ‘최대 2개까지 구매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위클리서울/ 사진=홈플러스몰 캡쳐

온라인몰에서는 최근 식용유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이커머스에서는 일부 제품이 일시 품절 사태를 겪기도 했다. SSG닷컴에서는 지난 13~16일 식용유 판매량이 전주 같은 기간 대비 105% 늘면서 1.8L 대용량 제품을 중심으로 일시 품절이 발생했다. 마켓컬리에서도 ‘백설 콩기름 1.8L’ 등 일부 제품은 이달 들어 품절 상태다.

이에 온라인 몰 역시 구매 제한을 시작했다. SSG닷컴 내 트레이더스는 식용유 제품을 1인당 2개까지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홈플러스 몰도 마찬가지로 2개까지만 구매 가능하다. 쿠팡은 로켓배송 시 10개까지로 수량을 제한했고, 롯데마트몰에서는 1.7L 대용량 제품의 경우 하루 최대 구매량을 15개로 정했다.

팜유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화장품 업계는 제조에 사용되는 원재료인 글리세린 매입 가격이 올랐다고 공시했다. 립스틱과 로션 등 화장품에 주로 사용되는 글리세린은 팜유에서 유래된 원료다.

아모레퍼시픽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화장품 사업에 사용되는 원재료인 글리세린 매입 가격은 1kg당 1524원으로 지난해 1159원보다 31.4% 증가했다. 코스맥스도 분기보고서에서 글리세린 가격이 1930원으로 지난해 1720원보다 12.2% 올랐다고 공시했다.

LG생활건강은 팜스테아인 오일 매입 가격이 1톤당 1551달러로 지난해 1291달러보다 20.1% 증가했고, 팜핵유 가격은 톤당 2394달러로 18.2% 증가했다고 밝혔다. 애경산업의 팜원유 매입 가격은 톤당 1615달러로 지난해 말 1372달러보다 17.7% 올랐고, 옥수수 매입가는 부셸당 672달러로 18.5% 올랐다.

한편, CNBC 인도네시아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 수출 금지 해제 압박을 받고 있다. 현지 시장과 마트 식용유 가격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으며, 농가 농민들 역시 팜 열매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수익이 끊겼다며 수출 금지를 해제해달라는 시위를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위클리서울/ 농심 홈페이지 캡쳐

팜유 이어 ‘밀가루 대란’…과자·라면 오를까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 중단에 이어 인도는 최근 밀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인도 역시 자국 식량 보호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인도로부터 밀을 수입하는 비중이 낮지만, 이 역시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식탁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5월 13일 인도 정부는 “식량안보를 확보하고 이웃 국가 수요 충족을 위해 밀 수출 정책을 ‘자유’에서 ‘금지’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인도는 세계 3위 밀 생산국이지만 수출량은 전 세계 수출량의 4% 수준을 차지한다. 통상 인도는 밀 생산량 대부분을 자국 내 소비했으나, 지난해부터 자국 내 작황 양호, 국제 밀 가격 상승 등으로 수출을 늘렸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분용과 사료용으로 연간 334만 톤의 밀을 수입(2020년 기준)하고 있는데 제분용은 미국·호주·캐나다에서 전량 수입 중이며, 사료용은 대부분 우크라이나·미국·러시아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현재 국내 업계는 제분용 밀의 경우 8월 초(계약물량 포함 시 10월 말), 사료용 밀의 경우 10월 초(계약물량 포함 시 2023.1월 말)까지 사용 물량을 보유 중이다.

정부는 전 세계 밀 수출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 국내 밀 재고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인도의 밀 수출 중단으로 국내 단기적인 수급 영향은 제한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인도의 밀 수출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 밀 수급·가격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앞으로도 업계, 전문가 등과 협력하여 국제곡물 시장에 대한 점검을 지속하면서 단기 대책뿐만 아니라 국내 자급률 제고, 해외 곡물 안정적 공급망 확보 등 중장기 대책도 적극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외의 식량 보호 사태가 길어질 경우 밥상 물가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은 지속 이어지고 있다. 곡물 가격 상승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팜유와 밀이 수출 중단된 만큼 라면과 빵, 과자 등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가공식품 물가는 7.2% 상승하며 2012년 2월(7.4%)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게 치솟았다. 특히 라면(10.6%), 국수(29.1%), 빵(9.1%) 등 가공식품뿐 가격이 크게 올랐다. 밀은 사료용으로도 사용되면서 수입 쇠고기(28.8%), 닭고기(16.6%), 돼지고기(5.5%) 등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업들은 원부자재 가격 인상으로 지난해 말부터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농심은 3월 국민 과자인 ‘새우깡’과 ‘양파깡’ 등 22개 스낵 출고가격을 평균 6% 올렸다. 농심의 스낵 가격 인상은 2018년 11월 이후 3년 4개월 만이다. 소매점에서 1300원에 판매됐던 새우깡 가격은 100원이 인상됐다.

농심 관계자는 “3년여 동안 팜유와 소맥분 국제 시세가 각각 176%, 52% 오르는 등 주요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를 비롯한 제반 경영 비용이 상승했다”며 “소비자 부담을 고려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조정했다”고 말했다.

롯데제과도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빼빼로’, ‘빈츠’, 아이스크림 제품 등의 가격을 인상했다. 빼빼로는 권장 소비자가격 기준 1500원에서 1700원으로 인상됐다. 빈츠는 2400원에서 2800원, ‘ABC초코쿠키’는 1000원에서 1200원, ‘해바라기’와 ‘석기시대’는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조정됐다.

해태제과도 5월부터 8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12.9% 올렸다. ‘구운감자’와 ‘웨하스’는 기존 900원에서 1000원으로 11.1%, ‘자가비’와 ‘허니버터칩’, ‘롤리폴리’는 1500원에서 1700원으로 13.3% 올랐다. ‘칼로리바란스’는 1700원에서 2000원으로, 후렌치파이는 3800원에서 4200원으로 각각 17.6%, 10.5% 인상됐다.

식품업계는 인도를 비롯해 전통적인 곡물 수출국인 미국과 캐나다, 호주가 장황 부진을 겪고 있는 만큼 국제 밀 가격이 전체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상 고온으로 인한 작황 부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올해 초부터 원재료 수급에 문제가 지속 발생하고 있다”며 “가격 반영까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나, 장기화 가능성이 있는 만큼 사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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