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안전운임제 유지해야” 파업 장기화
시멘트·철강 타격…기업들 “공장 가동 낮춘다”
경제단체 “파업 중단 촉구…업무개시명령 해야”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안전한 근로환경을 요구하며 시작된 화물연대 총파업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이로 인해 자동차와 철강, 시멘트 업체들의 출하가 중단되며 물류 차질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정부는 관련 피해 규모를 1조6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 업체들은 원부자재 확보 및 공장 가동률 축소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파업이 길어져 생산 차질이 본격화되면 연쇄 셧다운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디자인=이주리 기자

화물연대 파업의 이유 ‘안전운임제’

화물연대 총파업은 지난 7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파업 이유는 바로 ‘안전운임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운전자에 대한 일종의 최저임금제다. 적정 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20년 도입됐으며, 3년 일몰제(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소멸되는 제도)로 시행해 올해 말 제도가 끝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측은 “운송료가 낮으면 유류비, 차량할부금 등을 지출하고도 생활비를 남기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빨리 달릴 수 밖에 없게 된다”며 “지난 10년 간 물가인상률보다 오히려 하락한 화물 운송료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은 하루 13시간이 넘는 과로와 위험한 과적, 과속을 강요받아 왔다”고 호소했다.

이어 “안전운임 시행 후 과적과 과로, 야간운행이 줄어들었고, 전반적인 노동위험지수 역시 감소했다”며 “안전운임제가 없어진다면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이 위협에 처하는 것은 물론, 도로의 안전 역시 위협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물연대의 요구 사항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전차종 전품목 확대 ▲운송료 인상 및 생존권 보장 ▲지입제 폐지와 화물운송산업 구조개혁 ▲노동 기본권 확대와 권리 보장 등 5가지다.

이들은 “시동을 걸면 더 적자를 보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대기업 화주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배를 불리고, 수많은 다단계 업체들이 난립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피해 불가피…정부 “1.6조원 물류 차질”

문제는 화물연대의 이번 파업으로 1조6000억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의 파업 진행 과정이 다소 폭력적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파업이 시작한 7일부터 12일까지 엿새 동안 자동차·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주요 업종의 생산·출하·수출 물류 차질 규모를 액수로 환산한 결과 1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동차 산업은 부품반입 어려움을 겪으며 생산 차질 규모가 5400대(2571억원 상당)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타이어 제품 출하 차질 규모도 64만개(570억원 상당)로 조사됐다.

철강 산업은 육상 운송화물 이용 제품 반출이 대부분 제한되면서 45만톤(6975억원 상당)의 출하 차질이 발생했다. 석유화학 산업도 여수·대산 등 석유화학 단지의 제품반출 제한으로 5000억원 상당 제품 출하 차질이 생겼다.

시멘트 산업은 평시 대비 출하량이 90% 이상 줄어드는 등 극심한 출하 차질로 81만톤(752억원 상당)에 이르는 건설 현장 공급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산업부는 이번 물류 차질이 국내 산업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6일간 발생한 극심한 출하 차질로 적재 공간이 한계에 다다른 업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 이번 주부터는 생산 차질 피해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화물연대 관련 물류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국민 경제와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며 “조속하고 원만한 합의와 물류 정상화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류 차질과 별개로 화물연대의 파업 방식이 다소 막무가내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업방해, 불법시위, 경찰 폭행 등으로 체포되거나 조사를 받는 조합원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필수로 통행해야 하는 차량을 막아서는 등 업무방해를 저질러 15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기도 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공장 가동률 줄이고 생산량 축소로 대응

정부와 화물연대는 지난 12일 오후부터 13일 오전까지 제4차 ‘마라톤 회의’를 통해 교섭을 진행했으나 결국 타협점을 찾지 못하며 최종 결렬됐다. 그러는 동안 업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이에 업체들은 공장 가동률을 줄이거나 중단시키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포스코는 13일 오전 7시부터 경북 포항시 포항제철소 선재공장과 냉연공장 가동을 중단시켰다. 생산 제품을 출하하지 못하고 쌓아놓다가 적재 공간이 부족한 상태에 이른 탓이다. 창고가 포화상태에 달해 공장 주변에 제품을 적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그동안 2008년을 포함해 여러 차례 화물연대 파업을 겪었으나, 공정 일부가 중단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선재공장은 1선재 공장부터 4선재 공장까지 모든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냉연공장은 가전이나 고급 건자재용 소재를 주로 생산하는 2냉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선재제품 하루 약 7500톤, 냉연제품 하루 약 4500톤 등 약 1만2000톤의 생산 감소가 빚어지게 됐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완성차와 부품 수급 상황을 일일 점검하고, 업계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한다. 생산이나 수출 차질 등 현장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대정부 건의 사항을 발굴해 건의할 계획이다.

참여하는 완성차업체는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쌍용차, 르노코리아 등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현대기아협력회, 한국지엠협신회, 쌍용협동회, 르노코리아협신회 등 부품업계도 동참한다. 김주홍 KAMA 정책연구소장이 팀장을 맡았으며 TF 기한은 13일부터 상황 종료 시까지다.

KAMA는 “최근 화물연대 파업과 물류 방해 행위로 인한 부품수급 차질과 그로 인한 완성차 생산 차질이 다시 부품 수요 감소에 따른 부품 기업의 경영 애로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직면해 있다”며 “차 업계는 피해나 애로사항을 매일 파악해 신속 대응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TF를 구성, 가동키로 했다”고 말했다.

 

ⓒ위클리서울/ 화물연대본부 홈페이지 캡쳐

경제단체들 “업무 개시 명령 검토해야”

이에 경제단체들은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화물연대의 운송방해와 폭력은 불법행위”라며 파업 중단 및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을 촉구하는 내용을 골자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경제단체 연합체인 경제단체협의회는 지난 12일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대한 경제계 공동입장’을 발표했다. 공동입장에는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와 한국자동차산업협회·한국시멘트협회 등 관련 업종별 협회 25곳이 참여했다.

이들은 “최근 우리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원자재 가격상승 및 물류비 인상의 3중고로 복합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운송사업자 단체인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가 장기화되면서 시멘트, 석유화학, 철강은 물론 자동차 및 전자부품의 수급도 차질을 빚고 있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과 무역에 막대한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물연대는 우리 국민들의 위기 극복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집단 운송 거부를 즉각 중단하고 운송에 복귀해야 한다”며 “정부는 국민 경제 전체에 미치는 막대한 파급효과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상황에 따라 업무 개시 명령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화물연대의 운송방해, 폭력 등 불법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처해 산업현장의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원경제인연합회 역시 성명을 통해 물류대란과 국가 경제 기틀을 흔드는 사안에 대해 파업을 즉각 중지하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소할 것을 촉구했다.

강원 연합회는 “국내 산업의 에너지, 원자재, 생산품 등 상당 부분 물류 동맥이 끊어져 생산과 수출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까지 이르고 있다”며 “화물연대의 전면적인 파업은 자원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 국가 경제를 심각하고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어려움을 안 겪은 국민과 기업은 별로 없다”며 “이제 겨우 국가 대부분 산업이 정상화하려고 노력하고, 소상공인들도 새로운 기대 속에 힘을 내려는 시기는 짧은 기간이라도 서로 협력해 국가 경제를 안정화해 에너지, 식량, 원자재 위기를 극복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와 화물연대의 협상은 단기간에 결론 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지난 10일 “정부의 공권력 배치가 국제노동기구(ILO)의 87·98호 협약 위반”이라며 ILO에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ILO 87·98호 협약은 각각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과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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