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든 사이에
내가 잠든 사이에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2.06.16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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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내용도 없는 새정치라는 구호 하나 달랑 들고 호남에 와서 각종 기회주의자를 대량 생산한 안철수, 홧김에 어쩐다고 그 사람의 파렴치한 행각을 저지해야 한다는 오직 그 하나의 결기만으로 민주당 권리당원 노릇을 하겠다고 나선 지도 어언 8년차인 나, 아직도 분노와 희망을 같은 무게로 가슴에 품고 있는 내가 볼 때 그날의 그것은 한 편의 거대한 영화였다.

선거와 그 결과를 영화로 파악한다는 게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날의 그것이 가령 진짜 영화라고 한다면 매우 잘 만든 작품이었다. 그렇게도 역동적이며, 그렇게도 숨 막히게 섬세한, 설렘과 낙담과 좌절과 희망과 한숨을 씨줄과 날줄로 교묘하게 배치한 그런 거대한 대하드라마를 사람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는 아마도 불가능하리라.

그날의 거대한 감동은 내가 잠든 사이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잠결에 박수 소리를 들었다. 제법 요란했다. 환호성도 들렸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꿈이 아니고서야 박수에 환호성까지 들려올 까닭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잠들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잠들기 전의 나는 설렘이니 희망이니 긍정적인 감성들을 죄다 놓아 버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실 잠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최소한 내가 원해서 든 잠은 아니었다. 실망이랄까 절망이랄까 뭐 그런 것들에 낙담까지 더해져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소주 한 잔을 크게 마시고, 한 잔 더 마시고, 또 한 잔, 하다가 어느 순간 모로 쓰러져서 으, 으, 신음을 토해내며 뒤척거리다가 시나브로 잠이 들었든가 어쨌던가, 뭐 그랬을 것이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03시에서 04시 사이였다. 평상의 그 시간이면 내가 잠자리를 빠져나와서 얼굴을 씻거나 커피를 내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날은 평상이 아니었다. 잠자리에 들어야 할 전날 밤 9시부터 나는 바싹 긴장해 있었고,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까워서 요강 비슷한 것을 옆에 낀 채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자정을 넘겼다.

아랫집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에서도 닭이 울었다. 멀리서도 닭 우는 소리가 속속 들려왔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던 나는 지금이다 하는 기분으로 마당으로 나가서 물구나무를 선 채 하늘을 보며 악, 악, 소리를 질렀다. 닭 우는 소리에서 무슨 메시지를 얻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한 번 닭처럼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던 것일 뿐이었다.

요즘 시골에는 유정란 바람이 불어서 집집마다 네다섯 마리씩 닭을 치는데 그 녀석들의 훼치는 소리가 개 짖는 소리보다 열 배는 더 크게 들렸다. 닭이 울면 새벽이 오는 줄 안다는 옛 시도 있건만, 오늘날의 닭들은 디지털 세대라서인지 밤 12시가 넘으면 울어대기 시작하고, 날이 밝아올 즈음이면 조용해져서 나를 무한히 헷갈리게 했다.

아무튼 뭐 그랬다. 나로서도 처음 해보는 짓이었다. 굳이 마당으로까지 나가서 잔다 위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발바닥은 하늘로 향한 채 악, 악, 소리를 몇 번 지르고 나니 비로소 꽉 막힌 가슴에 산소가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산소를 가령 희망이라고 한다면, 나는 새로운 희망을 안고 새로운 기분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막연한 희망이 구체성을 띨 수 있을까?

변화는 있을까?

뒤집을 수 있을까?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가슴으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신경이 터지도록 온 힘을 다해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보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쑥쑥 잘도 흘러가건만 변화는 없었다.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개표는 벌써 팔십 퍼센트를 넘어 구십 퍼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 당시의 개표 상황이 무시로 떠올라왔다. 금방 뒤집을 것 같으면서도 못 뒤집고 엎치락뒤치락, 일정한 표 차이를 유지한 채 끌려가다가 이십사만 여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돼 버린 그 허무한 기억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내 머릿속을, 가슴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와 같은 상황이 또 한 번 전개되는 것인가?

그야말로 아슬아슬했다. 표 차이가 많았다면 일찌감치 관심을 끊어버렸을 것이었다. 그런데 기껏 오만여 표 차이었다. 인구 일천사백여 만 명의 경기도에서 표 차이 오만이라면 금방 뒤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다.

생각하면 기막히고 황당한 일이었다. 내 자신 호남에 살고 있고, 호남에서 투표를 했지만 호남의 상황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사실은 투표 자체를 그만 포기해버릴 뻔도 했었다. 공천과 선거운동 과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이 좋아 공천이지 완전 사천이라는 소문이 짜하게 돌았다. 게다가 그들은 매표 행위까지 했다는 정황을 나는 잡고 있었다. 갖가지 명목의 소규모 회합에서 쓸데없이 화려한 벽시계며 청소기 따위들이 건네졌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렸고, 실물을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선거운동이 연초부터 벌어졌다. 그때는 대통령 선거운동에 열심을 팔아야 할 시기였다. 대통령 선거운동에 힘을 쏟아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이 은밀하게 자기 선거운동을 그것도 불법으로 하고 있었고, 그런 짓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소위 호남 거물이란 자가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알고 있는 내게 호남의 선거 결과에 관심을 가질만한 에너지는 없었다. 그나마 관심이라면 그놈들 죄다 떨어져 버려라 하는 저주의 마음 정도였다. 호남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자멸하는가 하는 서글픔도 없지 않았다.

다행히도 유권자들까지 직업 정치꾼들의 그런 쓰레기 짓에 편승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안철수를 호남에서 몰아낸 사람도 일반 유권자들이었다. 아무튼 투표장에 나가지 않은 사람이 엄청 많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러니도 이런 황당한 아이러니가 세상에 또 있을 것인가.

광주의 투표율이 전국 최하위라는 점을 놓고 평론가라는 사람들은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자체가 호남의 희망이라고 판단했다. 권력자나 유명인사가 뭐라고 떠들어대면 그 말이 곧 진리요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맹목은 최소한 호남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 이것만으로도 나는 기뻤고, 그 기쁨을 에너지로 전국적인 선거 결과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었다.

전국 평균 오십 퍼센트를 간신히 넘긴 투표율로 볼 때 민주당원인 내가 설레는 가슴을 안고 지켜볼 만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오십 퍼센트 후반은 돼야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과 판단이 선거 전에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런데 후반은커녕 중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틀렸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도권과 충청권 개표를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내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중앙당에서, 그리고 정치 거물이란 자들이 승리를 목적으로 전략을 짰더라면 충분히 투표율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고, 투표율이 높았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믿고 싶지 않는 일이지만 패배할 목적의 전략 전술을 짠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이 민주당 당원들 사이에 팽배했다. 왜 그런 자멸의 전략을 수립했는가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추론이 떠돌았다. 그 모든 추론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나’ 혹은 ‘우리’가 득세하기 위해서는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상대 당과의 싸움보다 당내 싸움, 그러니까 내 편을 먼저 죽여야 한다는 사상으로 똘똘 뭉친 직업 정치꾼들의 오래된 못난 속성이었다. 집안에 특별히 뛰어난 형제를 제거하기 위해 다른 형제 몇 명이 공모해서 집에 불을 질러버리는 형국으로 비유할 수도 있는 이런 ‘모질이’ 정치인들은 안철수가 호남에 이상한 바람을 들이밀었을 당시 대부분 자멸의 수순을 밟았거나 그쪽으로 합류해 갔지만, 새로운 ‘모질이’ 가짜 민주주의자들은 틈만 나면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었다.

질투와 시기 그리고 귀족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런 ‘모질이’ 가짜 민주주의자들이 이재명을 특히 싫어하는 이유는 이재명의 집안 내력이 형편없다는 점이 첫째이고, 둘째로는 이재명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입으로는 민주, 민주, 틈만 나면 민주를 외치는 그들에게 민중 따위는 누구 말처럼 ‘개돼지’들일 뿐이었다. 개돼지 출신이 감히 귀족 출신을 딛고 일어서려 한다? 이런 의문과 불만을 그들은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었고, 그것은 나 같은 사람의 귀에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재명의 도약 무대가 될 수도 있는 선거를 제대로 치러낼 것인가.

어쨌든 뭐 그랬다. 그렇게 저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방선거는 끝났고, 없는 희망이나마 쥐어짜내 가면서 지켜볼 일만 남았다. 서울과 인천은 일찌감치 멀어져 버렸고, 충청권에서는 아슬아슬, 엎는다, 엎는다, 하면서도 못 엎고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이제 경기도만 남았다. 경기도도 틀린 것 같았지만 그나마 희망을 갖고 지켜보는 이유는 백 표, 이백 표, 열심히 따라잡다가 오륙백 표를 한꺼번에 까먹어버리는 식의 아슬아슬함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진행자들의 해학적인 추임새가 없었다면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으리라.

그날 내가 본 방송은 요새 유행하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진행자는 다섯 명이었고, 자기들만 볼 수 있는 지상파 방송 채널 세 개를 동시에 보면서 설명을 하는 한편 도표를 띄우기도 하고,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다른 컴퓨터에 열어놓고 이삼 분 간격으로 새로고침을 해가면서 상세한 수치를 읽어주며 중간중간 농담을 양념처럼 뿌려주는 방식의 그런대로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는 방송이었다.

사람이 한 가지 일에 투자할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은 얼마나 될까. 희망이나 설렘이 샘물처럼 계속 솟아난다면 총량 개념은 아마도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틀렸구나, 하는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면? 밤 여덟시에 시작한 개표방송 설명이 자정을 넘어 01시, 02시, 03시를 넘어가면서 진행자들은 슬슬 눈이 풀려갔고, 말이 꼬이고, 자세도 많이 무너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말이 나왔다.

“아이 씨, 족발 생각나네. 족발이나 먹으러 갈까?”

“소주도 한 잔 해야지.”

매가리가 하나도 없는 소리를 내면서 한 사람이 일어서고, 또 한 사람이 일어서고, 이어서 또 한 사람이 일어섰다. 다른 두 명은 일어설 듯이 일어설 듯이 몇 번을 엉거주춤 하다가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자리를 지켰다.

닭 우는 소리가 요란한 와중에 듣는 소주 한 잔 소리가 나를 강력하게 유혹했던가. 벌떡 일어섰다.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다가 맥주잔에 콸콸 따라서 한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잠시 컴퓨터 모니터를 지켜보다가 또 한 잔을 마시고, 또 마셨다.

온 몸이 나른하게 풀리면서 허리를 지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버린 게 언제였는가는 당연히 기억나지 않았다. 폭발적인 박수소리와 환호성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한 시간쯤 지난 것 같았다. 박수와 환호성 소리는 유튜브 진행자들이 낸 것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민주당 관계자들이 벌떡 일어서서 아직도 악수를 한다 하이파이브를 한다 요란을 떨고 있었다. 결과가 뒤집어진 것은 아니었다. 뒤집어지기커녕 오만여 표 차이였던 것이 겨우 사만여 표 차이로 좁혀져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유튜브 진행자들은 아직 시큰둥한 표정들이었다.

 

개표방송 캡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개표방송 캡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개표방송 캡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나 또한 글쎄, 뒤집어질까, 기연가미연가 하는 심사로 지켜보기를 얼마나 하다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사만여 표 차이가 삼만여 표 차이로 좁혀진 거였다. 신기했다. 이럴 수도 있나?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정신없이 깜빡거리며 들여다보고 있는데 어라, 더 좁혀져서 이만여 표 차가 되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지켜보던 진행자는 사전투표 함이 부분적으로 이제 열리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뒤집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설렘을 안고 지켜보기를 얼마나 했던가. 갑자기 상대가 오천여 표를 따라잡아서 도로 삼만여 표 차로 좁혀졌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지켜보던 진행자는 아직 남아 있던 성남시 분당 쪽 투표함이 열린 결과라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분당, 분당이라면, 그러면 틀렸는갑다, 하고 도로 실망 모드를 취하고 있는데 분당 개표는 백 퍼센트 완료됐다는 설명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그동안 개표를 중단하고 있던 부천 쪽 투표함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부천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니 기대해볼 만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는 한 번도 벌어지지 않고 이천 표, 삼천 표, 오천 표, 하는 식으로 계속 따라잡아서 마침내 저 유명한 골든크로스가 이루어졌다. 수치는 매우 미약해서 고착 삼십 표 차이였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삼십 표 차이가 어디인가. 한 번도 앞서지 못하던 것이 삼십 표나 앞서지 않았는가 말이다.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지켜보고 있는데 삼십 표는 곧 삼백 표가 되고 천삼백 표가 되고 오천 표가 되었다. 박수와 환호성과 울먹이는 소리가 끝도 없이 들려오고 있었고, 나는 미친놈처럼 일어섰다 앉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렸다.

그때 개표는 99퍼센트를 기록하고 있었고, 나는 이겼다는 확신을 갖고 샤워실로 가서 온 몸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당은 어느새 날이 새서 뿌연 커튼을 창문에 드리우고 있었고, 닭 우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닭 우는 소리 대신 까치와 어치와 참새 소리가 마당을 그득 채우고 있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럴 수도 있는 거였어. 그래서 끝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 그래서 그게 중요하다고들 하는 것이겠지.

전체 시간을 계산해보니 꼬박 열 시간이었다. 열 시간 동안 중간에 깜빡 졸았던 시간을 빼고 완전히 그냥 거기에만 몰입해 있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지켜보기를 취미처럼 해 왔던 나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새로운 배움의 시간을 가진 셈이었다. 끝났다고 생각해도 끝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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