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에너지 등 생산 차질...물가 폭등 '유발'
하나금융硏, "고금리 등 장기화 유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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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영신 기자] 엘리뇨 등 이상기후로 인한 에코플레이션 위험이 증대하고 있다.

에코플레이션은 생태계를 뜻하는 에콜로지(Ecology)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환경적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을 의미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7월4일 엘니뇨의 발생을 공식 선언하고, 올 하반기 내내 엘니뇨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을 96%로 전망했다.

또한 오는 11월부터 내년 1월 중 해수면 평균 온도가 평년 대비 1.5℃ 이상 상승하는 ‘슈퍼급 엘니뇨’로 발전될 가능성도 절반 이상(56%)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엘니뇨 자체는 2~7년 주기로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나, 계속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맞물리며 기상재난 피해 수준이 심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엘니뇨로 글로벌 경제피해 '속출'

특히 엘니뇨 등 여파로 올해 다수의 국가에서 기록적인 폭염, 폭우, 가뭄, 산불 등 기상재난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이로 인한 대규모 경제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이상기후로 인해 △농산물 작황 악화에 따른 글로벌 식료품 가격 불안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방 위험 확대 △주요 산업용 광물의 생산 차질 우려 등 에코플레이션 위험이 증대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세계 곡물 생산지의 농업 기상 악화로 농산물 작황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설탕 총 생산의 18%를 차지하는 인도의 기상이변(사탕수수 성장기 강우량 부족, 수확기 폭우) 피해가 국제 원당 공급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하반기 엘니뇨가 강화될 경우 인도의 원당 수출 규모는 2023·2024년 500만톤대(2022·′2023년 610만톤)로 대폭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옥수수·대두 산지인 미국 중서부 가뭄 비율은 7월25일 기준 88%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하고, 캔자스 등 주요 겨울밀 산지 또한 50%가 가뭄 영향권에 들어갔다.

7월16일 기준 미국 옥수수와 대두의 상급 품질 비율은 각각 57%, 55%로, 가뭄 영향으로 인해 예년 평균인 65.6%, 62.4%를 큰 폭으로 하회했다.

캐나다 소맥 주산지인 앨버타와 서스캐처원의 가뭄 및 이상 건조 비율이 각각 89%, 79%를 기록하며 곡물 수확량 및 품질이 과거 평균 대비 큰 폭 저하됐다.

유럽 또한 EU 회원국의 40%가 건조 경보 상태이며, 유럽의 최대 소맥 수출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북부 지역까지 가뭄으로 인한 토양 수분 부족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이처럼 기상피해로 인해 주요 수출국의 공급량은 감소하는 반면, 수입국의 소비수요 및 향후 식량 공급 차질에 대비한 재고 비축 수요는 증가하는 등 곡물 수급에 불균형이 발생한다.

특히 국제 곡물 시장은 소수의 수출국이 전체 교역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독과점 시장인 만큼 주요 농업국의 생산량 변화는 곡물 가격에 상당한 충격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식량가격의 경우 체감물가나 생활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기대 인플레이션 불안 및 인플레이션 악순환 발생이 우려되기도 한다.

한국은행은 집중호우와 폭염, 태풍 등 기상여건 악화로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전월 대비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데다 일부 국가의 식량수출 제한 등이 겹치면서 식료품 물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은은 해수면 온도가 예년 대비 1도 상승할 때 평균적으로 1∼2년의 시차를 두고 국제식량가격이 5∼7%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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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상기후는 국제 에너지 시장의 수요-공급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 세계에 발생한 기록적 폭염으로 냉방 발전용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가뭄으로 인한 수력 발전량 감소가 화석연료의 수요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이상기후 피해로 국제 곡물 가격 급등 시 바이오 연료의 수급 불안정성 또한 확대되며 대체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화석연료 수요가 추가로 증가할 소지도 있다.

반면 기상이변 영향으로 주요 에너지 공급시설의 가동률 및 생산능력은 악화되고 있다.

높은 기온은 정유공장의 냉각 능력 저하로 이어져 원유 처리량을 감소시키며, 화석연료 생산과정에서는 물 사용량이 상당해 가뭄 발생에도 취약하다.

아울러 이상기후는 산업용 광물의 공급 불확실성도 증대시킨다.

비철금속은 철광석에 비해 매장량이 적고 특정지역 및 국가에 편중돼 있으며, 주요 채굴 국가들이 엘니뇨의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분포해 있다.

특히 전 세계 구리 채굴량의 38% 가량이 밀집된 중남미의 칠레·페루는 적도 태평양 인근에 위치해 엘니뇨 발생 시 폭염 및 호우 피해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칠레는 1993년 이후 최대 규모의 홍수가 발생하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주요 광산 가동이 중단되는 등 채굴 작업에 차질을 빚었다.

생산비용 증가, 최종소비자에 '전가'

연구소는 “엘니뇨 등 기후위기로 인한 기후 리스크가 곡물뿐 아니라 가공식품·에너지·산업용 광물 등 원자재 시장 전반에 광범위한 수급 불안을 야기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와 직결되며 생산자의 비용 상승은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됨에 따라 향후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후 리스크가 중장기적인 물가폭등세 유발함으로써 글로벌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제약 요인으로 작동해 고금리 유지 기간이 장기화될 소지가 있다”며 “이러한 긴축 기조 장기화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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