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한반도 전문가’ 조성렬 교수-1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올해로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했다. 3년 동안 치러진 전쟁은 1953년 7월 사실상 ‘휴전 선언’으로 체결됐다. 70년 휴전 기록은 세계전쟁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남과 북은 70년 동안 대화와 협상을 시도했지만, 갈등과 반목은 여전하다.

 

ⓒ위클리서울/ 조성렬 교수 제공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더욱 거세게 진행됐다. 북한은 지난해 70여 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올해도 모의 핵탄두를 장착한 각종 단거리미사일의 공중폭발시험과 수중폭발시험을 진행했다. 북한의 핵 위협에 윤석열 정부는 한미확장억제력의 강화로 대응했다. 대규모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 속에 지난 3월 한미 ‘자유의 방패’ 연합훈련을 11일 연속으로 진행하며 5년 만에 야외 실기동 훈련인 ‘독수리훈련’을 부활시켰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남북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우리 정부에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 결의에 따라 북한에 대한 무기 제공을 자제해 왔지만,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한다면 공언한 대로 북한의 재래식무기 현대화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도 대규모 식량 원조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위클리서울>은 한반도 문제를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한반도 전문가’ 조성렬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현 정세를 살펴봤다.

“공교롭게도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대규모 원조가 발표된 직후인 9월 10~19일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하고 9월 13일에는 푸틴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최근 북‧러 관계가 급격히 가까와 진 것은 러시아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발해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이와 관련 조 교수는 “로켓포탄 등 군수물자의 공급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북한과 접근했고, 국제적으로 고립무원 상태에 있던 북한은 한‧러 관계 악화를 틈타 첨단군사기술과 식량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러시아에 접근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내걸고 있는 담대한 구상의 비전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이다. 북측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그에 상응해 남북관계 정상화와 인도적 협력을 할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의 방침이다. 거꾸로 말해, 북한이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를 취한다고 명확히 하지 않으면 평화‧번영을 위한 남북관계의 추진도 없다는 의미이다.

조 교수는 “북한 김여정 당 부부장이 ‘담대한 구상’을 가리켜 ‘비핵‧개방‧3000구상의 판박이’라고 비난한 데서 보듯이, 북한의 이른바 ‘합리적 안보우려’를 고려하지 않은 담대한 구상은 남북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며 “그러니까 남북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합리적 안보우려’와 북한의 ‘합리적 안보우려’를 맞교환할 수 있는 대안의 토대 위에서 인도적 협력과 인적, 경제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과거 조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국정 철학과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퇴출 대상에 지목되기도 했다. ‘족집게 과외 선생’ 같은 분석으로 많은 예견을 했고, 특히 좋지 않은 예견들은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정부로부터 무언의 ‘퇴출 압박’에 시달렸고, 한동안 기자들과의 소통도 단절되다시피 했다. “어떤 정보를 빼내어서 기자들에게 알린 게 아니고, 학문적으로 분석해 결과를 내놓았을 뿐인데, 정부에서는 탐탁지 않게 여기더라.”

조 교수는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오사카 총영사 등을 역임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북한대학원대학교, 경남대 등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음은 조성렬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2019년 6월 30일 정상회담에서 ⓒ위클리서울/ 청와대 홈페이지

- 국가기관 포함 여러 연구기관을 거쳐 얼마 전부터는 북한대학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근황이 어떤가.

▲ 정부 산하 국책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역대 정부들에서 외교안보, 국방, 대북통일 문제에 대해 정책자문을 해왔고, 작년 연말에 오사카 총영사와 외교부 본부대사를 끝으로 국가기관에서의 공직을 모두 끝냈다. 여전히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직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올해 9월부터 경남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 국가기관에서 재직 시엔 발언에 늘 조심스러웠는데, 요즘은 비교적 자유로운지.

▲ 제가 정부 산하 연구소에 들어간 이유가 전문역량을 발휘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있을 때도 국가이익과 민족 장래에 필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소신껏 발언해 왔다. 다만, 정권에 따라 자신들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싫어하고 간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몇 차례 충돌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로서의 소신을 지킨다는 데는 변함이 없었지만 대외 발언이 점점 조심스럽게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사립대학으로 적을 두고 있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사실이다. 눈치를 보지는 않되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국제안보전문가로서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국내외 정세를 분석하고 국익에 바탕을 둔 정책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해다.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 등에 있어 크게 의미 있는 사건이나 행사는 없었던 것 같은데.

▲ 올해 7월 27일은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 되는 날이었으며, 10월 1일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이 맞이하는 날이기도 한다. 또한 이날은 국군 창설 75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지 7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국제법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오히려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고 서로를 겨냥한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바람에 제2의 한국전쟁의 위험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전략경쟁 등 국제정세가 악화되고 있는 영향을 받아 현재 남북관계는 미국과 중국-러시아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작용하면서 남북한 모두 당사자 간의 해결보다는 강대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남과 북은 서로 각자의 입장과 주장만을 내세운 채 대화나 관계개선을 노력이 없이 방치하는 바람에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 몇 해간 남북대화가 부재한 상황이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남북관계는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수소폭탄의 시험발사가 성공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라고 말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응징까지 검토하면서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때 한국 정부가 한미군사연습의 연기를 내세워 북한을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 2월에 있었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비핵화’와 ‘즉시 전면 비핵화’를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회담이 결렬되고 그 이후 북‧미 대화뿐만 아니라 남북대화도 중단되고 말았다. 이처럼 남북대화가 부재한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 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 한국이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이견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대화 및 북미대화가 재개되기 위해서는 최소한도 한반도 비핵화를 이룬다는 대원칙 아래에서 북한의 이른바 ‘합리적 안보 우려’ 해소를 전제로 한 비핵화 방식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 남북관계에 있어 북핵 문제는 늘 걸림돌이었다.

▲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핵 대화의 재개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포기를 들었다. 2019년 10월 5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회담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를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생존권이란 북한체제에 위협이 되는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발전권은 북한경제의 발전을 제약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야 북한도 움직이겠다는 의미로서 한국이나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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