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생명과 평화를 위한 탈핵 활동가들의 투신

일본 동북대학교 국제문화학 박사인 이선희 씨는 일본 동북 지방의 이주 여성들의 현황과 일본의 이민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입니다. 이선희 씨는 “동북 지방은 일본 안에서도 식민지입니다. 만약, 후쿠시마와 같은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핵사고가 동북 지방이 아니라 큐슈와 같은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다면 지금과 같이 침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북 지방은 오랜 식민지로서의 트라우마로 항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동북 지방 사람들의 일본 내에서의 ‘타자화’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선희 씨의 ‘타자화’ 문제는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이선희 씨를 만난 후 핵발전소 지역을 다닐 때마다 ‘타자화’ 문제와 함께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보이는 방파제에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운데)와 이선희(오른쪽) 씨가 함께했다. 이선희 씨는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장영식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보이는 방파제에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운데)와 이선희(오른쪽) 씨가 함께했다. 이선희 씨는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장영식

일본 내에서 핵발전소 최대 밀집지인 후쿠이현의 오바마시는 아주 특별한 지역입니다. 한국의 삼척과 영덕처럼 시민들의 저항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시에는 1000년이 넘은 오래된 절이 있습니다. 묘츠지(明通寺)입니다. 나가지마 테츠엔 스님은 묘츠지의 주지 스님입니다. 스님은 15기의 핵발전소가 밀집된 와카사만을 ‘원전 긴자’라고 부른다고 말합니다. ‘긴자’란 활발한 번화가를 말하는데, 핵발전소가 와카사만에 밀집되어 있는 것과 함께 핵발전소에 기생하는 자본주의에 대해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오바마시의 종교인들과 함께 탈핵 운동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부안핵폐기장건설 반대 운동 때에도 한국에 왔다고 합니다. 영광핵발전소와 광주도 방문했다고 합니다. 부안에서 ‘핵폐기장 반대’라는 구호보다는 ‘아름다운 부안을 지키자’라는 말에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오바마시에서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구호도 핵발전소를 반대한다는 말보다는 ‘아름다운 와카사를 지키자’라는 상징적 구호가 부안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스님은 문규현 신부님의 안부도 묻고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과 진언종의 가르침은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후쿠이현 오바마시의 탈핵 운동의 종교인들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는 묘츠지 절의 나가지마 테츠엔 스님. 스님은 "부처님의 생각은 자연 속에 살고 있다. 자연 속의 모든 생명을 우리는 돌봐야 한다.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불교에 원래 있는 사상이다"라며 종교인들의 반핵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장영식
일본 후쿠이현 오바마시의 탈핵 운동의 종교인들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는 묘츠지 절의 나가지마 테츠엔 스님. 스님은 "부처님의 생각은 자연 속에 살고 있다. 자연 속의 모든 생명을 우리는 돌봐야 한다.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불교에 원래 있는 사상이다"라며 종교인들의 반핵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장영식

후쿠시마에서 만났던 시가 가쓰아키 씨는 어부였습니다. 집안 대대로 조개잡이 어부로 살아왔습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가 밀려 왔던 날에는 납세 문제로 후쿠시마 시내로 나왔던 관계로 재해를 면할 수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시가 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건설 때부터 반대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이가 핵발전소를 반대하게 된 것은 도쿄대 원자력공학과 1기 출신으로 일본 탈핵 운동의 대부격인 안자이 이쿠로(리츠메이칸대학교 종신 석좌교수) 교수의 강연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안자이 이쿠로 교수는 핵무장 해제를 위한 비핵화운동과 지구환경보호운동, 동아시아에서의 화해와 평화 공존에 앞장섰던 학자입니다. 시가 씨는 “핵발전소는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도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짓는다”라며 “후쿠시마가 있는 동북 지역은 1000년 전까지 일본 원주민인 에미시들이 살던 곳으로 식민지라고 할 정도로 착취되고 소외된 지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난했던 후쿠시마 주민들은 한 채의 집을 살 정도인 핵발전소 보상금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라며 “그래서 자신이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했을 때, 주민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가 씨는 “어업 협동조합에서 제명되고, ‘아무도 너를 안 도와줄 것이다’란 말까지 들었죠. 어업이란 것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말이죠.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쿠시마 핵사고가 난 이후 저는 지금 당당해요. 지금껏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제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어민들은 자신들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삶을 부정하는 것 같아 어려운 게 아닐까요. 이제 우리 국민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언론이 올바른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언론의 중요성을 상기시켰습니다.

 

후쿠시마에서 평생을 탈핵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시가 가쓰아키 씨는 조상 대대로 조개잡이 어부다. 그이는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짓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일관되게 핵발전소를 반대했다. 그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시가 가쓰아키 씨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장영식
후쿠시마에서 평생을 탈핵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시가 가쓰아키 씨는 조상 대대로 조개잡이 어부다. 그이는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짓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일관되게 핵발전소를 반대했다. 그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시가 가쓰아키 씨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장영식

오나가와에서 만났던 아베 미키코 씨는 일생을 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펼쳤던 활동가이자 사진가이며 기초의회 의원입니다. 아베 미키코 의원의 선친은 어부였습니다. 선친 무네쓰 씨는 오나가와 기초의회에서 주민들 몰래 핵발전소 유치를 결의했을 때, 어민들과 결합해서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던 핵발전소 반대 운동의 핵심적 지도자였습니다. 당시 23세였던 아베 미키코 씨는 오나가와 핵발전소 건설 반대 투쟁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오나가와 핵발전소는 모두 3기가 있습니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오나가와 지방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오나가와 핵발전소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등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오나가와 핵발전소 3호기에 전기가 공급되면서 천만다행으로 후쿠시마핵발전소와 같은 핵사고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오나가와 핵발전소는 쓰나미 피해 이후 3기의 핵발전소를 모두 정지했습니다. 1호기는 영구 정지되었지만, 2호기와 3호기는 2024년 5월에 재가동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베 미키코 의원은 2기의 핵발전소 재가동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이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위해”라며 선친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나가와에서 일생을 탈핵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아베 미키코 씨. 그이는 어부이면서 오나가와의 탈핵 지도자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투신했다. 아베 미키코 씨는 탈핵 활동가이면서 반핵 투쟁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사진가이면서 오나가와 기초의회의 의원이기도 하다. ⓒ장영식
오나가와에서 일생을 탈핵 운동에 투신하고 있는 아베 미키코 씨. 그이는 어부이면서 오나가와의 탈핵 지도자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투신했다. 아베 미키코 씨는 탈핵 활동가이면서 반핵 투쟁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사진가이면서 오나가와 기초의회의 의원이기도 하다. ⓒ장영식
일본에서 핵발전소를 반대하며, 평화와 생명의 강을 건너고 있는 탈핵 활동가들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장영식
일본에서 핵발전소를 반대하며, 평화와 생명의 강을 건너고 있는 탈핵 활동가들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장영식

일본에서는 소개한 네 분의 탈핵 활동가 외에도 많은 분이 탈핵 운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학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수고는 한국의 탈핵 활동가들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투신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탈핵 활동가들의 차이점은 일본은 한국에서처럼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고, 70-80대의 고령이신 분들이 대부분이란 점입니다. 일본의 시민 사회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공동의 집’인 지구를 생각하며, 언제나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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