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이끌 재계 인물 교체…인력 운영 효율화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국내 기업들의 ‘2024년도 정기 임원인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올해 수익성 악화를 겪은 기업이 늘어나면서 재무건정성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임원들이 승진했다. 또 여성과 미래 성장을 위한 젊은 임원들이 늘었으며, 흩어져있던 조직을 하나로 묶는 일원화도 진행됐다.

이와 동시에 일부 기업들은 희망퇴직을 접수, 수익성과 효율성을 위한 인원 축소에 나선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실적 개선이 불확실해지자 경영상 부담이 커진 데 따른 조치로 분석된다.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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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키워드 ‘성과중심·세대교체’

내년도 인사는 오래 일한 사람이 아닌, 성과 중심으로 치러졌다. 이에 실적 개선을 거두지 못한 임원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기업의 경영 및 재무건전성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인력을 대표로 선임해 조직 배치도를 새로 짜는 분위기다.

신세계그룹은 사령탑격이었던 이명희 신세계 회장 직속 전략실장을 전격 교체했다. 지난달 16일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겸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이사(사장)를 경영전략실장으로 선임했다. 2015년부터 그룹 전략실을 이끌어 온 권혁구 사장은 8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영전략실은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과정에서 탄생한 경영지원실이 모태다. 경영지원실에서 경영전략실로, 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이번에 다시 경영전략실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경영전략실 회의를 연이어 주재하며 조직과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첫 회의에서는 “경영전략실의 조직운영과 의사 결정은 가장 합리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두 번째 회의에서는 “인사 제도의 전반적인 재점검”을 주문했다.

신세계그룹은 이에 앞서 지난 9월, 예년보다 이른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하고 대표이사 40%를 물갈이한 바 있다. 이마트와 SSG닷컴 등의 영업적자가 계속되자 강희석 이마트 대표를 해임하고, 그 자리에 재무총괄책임자(CFO) 출신인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를 앉혔다. 따로 관리됐던 이마트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도 ‘원(ONE)대표 체제’로 전환됐다.

성과주의에 기반해 변화와 혁신에 칼을 빼 든 것은 롯데그룹도 마찬가지다. 지난 6일 이사회를 열고 임원인사를 진행한 롯데그룹 역시 60대 계열사 대표 8명이 퇴진하며, 이를 포함한 계열사 대표 14명이 교체된다. 혁신 지속을 위해 젊은 리더십을 전진 배치하고, 외부 전문가 영입, 글로벌 역량 및 여성 리더십 강화가 올해 인사 방향이다.

먼저 롯데그룹의 화학사업을 5년간 진두지휘했던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군 총괄대표 부회장이 용퇴하고, 후임으로 이훈기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 사장이 부임한다. 여성 임원 규모도 확대돼 전무 이상 고위임원 중 여성의 비중은 지난해 7.4%에서 올해 9.8%로 늘었다.

경영 성과를 보여준 임원들은 승진으로 자리를 지켰다. 고수찬 롯데지주 경영개선실장 부사장, 고정욱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 부사장, 정준호 롯데백화점 부사장 등 총 3명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영구 식품군 총괄대표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롯데지주는 글로벌 및 신사업을 전담하는 미래성장실을 신설해 바이오, 헬스케어 등 신사업 관리와 제2의 성장 엔진 발굴에 나선다. 신임 미래성장실장은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전무가 맡는다. 신 전무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직한다.

SK그룹도 최근 세대교체를 골자로 하는 임원인사 및 조직개편을 진행했다. 최고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열어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임기 2년의 새 의장으로 선임했다. 지동섭 SK온 사장을 SV위원회 위원장에, 정재헌 SK텔레콤 대외협력담당 사장을 거버넌스(Governance)위원회 위원장에 각각 신규 선임했다.

이번 인사에서 신규 선임 임원은 모두 82명으로, 지난해 145명보다 크게 줄었다. 신규 임원의 평균 연령은 만 48.5세로 젊어졌다. 최연소 승진 임원은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이다.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에 임명된 최 팀장은 1989년생, 올해 34세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단행한 임원인사에서 성과를 창출해오고 성장 잠재력을 갖춘 30대 상무, 40대 부사장을 발탁하고 젊은 임원들을 다수 배출했다. 최연소 부사장 승진자는 황인철(46) DX부문 MX사업부 AI개발그룹장이다. DX부문 MX사업부 스마트폰개발1그룹 손왕익 상무(39)도 하드웨어 개발 전문가로서 혁신기술, 특허기술을 다수 확보하며 제품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는 공을 인정받아 승진했다.

LG 역시 대대적인 임원 세대교체를 통해 조직의 위기대응 능력을 강화한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용퇴한 자리엔 12살 어린 김동명 자동차전지사업부장(사장)이 뒤를 잇는다. LG이노텍도 정철동(62) 사장이 LG디스플레이의 구원투수로 투입되면서, 후임으로 1970년생인 문혁수(53) 부사장을 신임 CEO로 선임했다.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

임원 축소·희망퇴직…몸집 줄여 수익 개선

다만, 내년도 인사에서는 신규 승진 인원이 확 줄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2024년 임원 승진자는 총 143명(부사장 51명, 상무 77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4명)으로, 187명이 승진한 지난해 대비 23.5% 가량 감소했다. 2017년 5월(90명) 이후 가장 적은 수다. 삼성전자가 부사장 신규 승진자에게 제공하는 승용차도 ‘현대차 제네시스 G90’에서 ‘G80’으로 하향 조정됐다.

LG그룹의 전체 승진 규모도 축소됐다. 지난해 160명에서 139명으로 13.1% 줄었다. SK그룹은 신규 임원 숫자가 지난해 145명에서 올해 82명으로 43.4%로 대폭 감소했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는 내년도 임원 인사에서 경영 악화 등의 여파로 100대 기업내 전체 임원 수는 올해 7175명보다 줄어든 ‘6900~7100명대’일 것으로 분석했다.

내년 경기 회복이 불투명해지자, 회사들은 임원 수 줄이기 뿐만 아니라 희망퇴직까지 실시하며 비용 절감에 나서는 모습이다. 올해 몇몇 기업들은 효율화를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2019년 이후 4년 만에 희망퇴직을 받는다. 대상은 파주와 구미 공장의 만 40세 이상 생산직이다. 회사는 희망퇴직자에게 고정 급여 36개월 치와 자녀 학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GS리테일도 최근 1977년생 이상의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롯데시네마와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도 지난달 말부터 근속 3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했던 2020년과 2021년에 이어 이번까지 총 3번째 희망퇴직이다. 회사는 근속연수를 기준 으로 퇴직 위로금과 재취업 지원금을 차등 지급한다.

롯데마트도 전 직급별 10년 차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퇴직 확정자에게는 최대 27개월 치 급여와 함께 직급에 따라 재취업 지원금 2000만~5000만원이 지급된다. 앞서 롯데홈쇼핑도 지난 9월, 만 45세 이상이면서 근속연수 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바 있다.

중국 맥주 브랜드 칭따오를 수입하는 비어케이도 지난달부터 희망퇴직을 시작했다. 중국 현지 공장에서 하청업체 인부가 공장 내에서 소변을 보는 이른바 ‘소변 맥주’ 사건 이후, 칭따오 맥주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다. 비어케이는 수입 제품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으나, 편의점 수요는 이미 30% 이상 줄었다.

SPC그룹 파리크라상도 지난달부터 파리바게뜨와 쉐이크쉑 등 14개 브랜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15년차 이상 직원이 대상이며, 회사는 최대 1년 6개월치 급여와 1년치 학자금을 지원하고 창업·이직 교육 및 점포 개설을 지원한다.

매일유업은 지난 8월 만 50세 이상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 바 있다. 근속 기간에 따라 최대 통상임금 18개월치 위로금을 보상했다. 퇴직 후 2년간 경조사 시 경조 물품을 제공받고 재취업 교육 등도 지원한다.

11번가는 창사이래 첫 희망퇴직을 받았다. 만 35세 이상이면서 근속연수 5년 이상 직원이 대상이다. 지난 8일 마감했다. 희망퇴직 확정자는 4개월분 급여를 받게 된다. 11번가는 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 업체 큐텐과의 지분 매각 협상을 이어왔으나, 최근 불발된 바 있다.

이들 회사들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1번가 측은 “한시적 프로그램으로 ‘넥스트 커리어(Next Career)’를 준비하는 구성원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오로지 구성원의 자발적인 신청을 기반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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