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탐방] 마천중앙시장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자, 사과 열 개 만 원, 양파 한 소쿠리에 삼천 원!” 우렁찬 상인의 목소리가 활기차다. 서울 송파구 마천로 45길에 위치한 마천중앙시장.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삼백 미터로 가깝다. 더 가까이 지척에 버스정류장도 있다. 마천시장처럼 규모가 크고 활기찬 시장은 오랜만이다. 서울 시내에 아직도 이렇게 크고 사람들의 발길이 바쁜 재래시장이 있었다니, 기분 좋은 발견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마천중앙시장이 이곳에 자리 잡은 지도 어언 오십여 년. 1968년대 마천동 주택단지 중심가에 개장한 상점들이 모여 지금같이 규모가 큰 재래시장으로 발전했다. 간신히 명맥을 이어나가는 타 재래시장과는 달리 마천중앙시장의 상점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천중앙시장은 송파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전통시장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 골목, 저 골목이 전부 장 보는 손님들로 들어찼다. 추위를 잊은 사람들이 가격을 물어보며 장을 본다. 가격도 저렴하다. 사과 하나에 천 원. 양파 한 망에 이천 원, 방울토마토 한 바구니에 삼천 원, 딸기 한 상자 오백 그램에 오천 원이라니. 비록 아주 질 좋은 양품은 아니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반값 상품을 만날 수 있으니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는 물가를 이곳에서는 잠시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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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송파구로, 천마산 기운을 이어 받은 시장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마천중앙시장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시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침샘을 자극하는 옛날 호떡집이 보인다. 호떡의 유혹을 지나 안쪽으로 걸어 들어오다 분홍 타일로 단장한 어린이집을 지나면 바로 시장이다. 6대 상인회장 당선 플랫카드가 시장 초입에 당당히 펄럭거린다. 단단한 상인회의 모습을 갖춘 시장이다. 마천중앙시장은 다른 시장과는 달리 노점과 상점의 균형이 절묘하다. 시장 중앙으로는 노점이 양옆 길에는 원형 간판의 상점들이 오밀조밀 마주 보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와플!’이라고 느낌표가 적힌 와플 노점상이 보인다. 핫도그와 떡꼬치, 소시지 꼬치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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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으로는 정육점이 보인다. 다시 중앙은 노점이다. 손수 만든 수제 수세미, 때를 시원하게 밀어주는 알록달록한 이태리타월, 혼자서 등을 밀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특별하게 제작된 밀대형 때밀이 타월까지 목욕을 위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노점이다. 다시 좌측으로 보이는 상점은 꽈배기 상점이다. 입이 궁금하다면 바로 이쯤에서 핫도그와 꽈배기 한 개를 사 먹을 법하다. 붉은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노점에서 양배추를 판다. 노점상 한 곁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인상적이다. 일을 마치면 자리를 청소하는 용도다. 자꾸 노점에 더 눈이 간다. 강렬한 오렌지색 점퍼를 입은 할머니는 각종 곡물을 판매한다. 진도에서 올라온 흑미, 안동에서 올라온 거두, 서리태, 청태 등 모두 귀한 국내산이다. 상황버섯 물로 지은 찹쌀 누룽지도 판다. 흔히 보지 못했던 색다른(?) 아이템이다. 재래시장에 가끔 등장하는 수제 빵집도 있다. 프랜차이즈 상점이 아닌 제빵사가 직접 만든 빵이다. 시장 빵집은 가격이 시중 빵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직접 구워 만들어 가격 거품이 없다. 매대에는 가짓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빵이 가득이다. 빵집을 지나 마늘 듬뿍 넣은 삼계탕집도 지나면 싱싱한 채소들이 매대에 가지런히 놓여 손님들을 기다리는 채소가게를 지나게 된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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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대 앞 검은 바탕에 노란색 빛바랜 별 모양의 간판이 눈에 띈다. 별 모양 속에는 ‘스타 점포’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송파구에서 인증한 마천중앙시장의 인기 가게라는 표식이다. 새송이, 파프리카, 브로콜리, 가지, 상추, 쪽파, 부추, 삶은 고사리, 시래기 등 한국인의 밥상에 꼭 올라야 할 수많은 재료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다. 도라지도 쪽파도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모두 까서 다듬어진 모습이다.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채소가게도 좋지만 다 만들어진 반찬집도 장보기에 매력이다. 새콤, 달콤, 매콤 입맛 돋울 반찬들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말린 생선과 조기를 판매하는 수산물 가게도 지난다. 간장에 파, 마늘, 양파 등 갖은양념을 넣어서 하나하나 쌓아 올리면 밥도둑이 될 꼬막이 초록색 그물에 쌓여 손님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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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가 먹을 물을 화수분처럼 샘솟았던 마천리

맛있는 먹거리가 한가득 인 시장 구경을 다니다 보니 슬슬 배가 고프다. 맛있는 건 많은데 뭘 먹어야 건강하게 잘 먹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요즘이다. 정면에 ‘순수 만든 두부’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제 두붓집이다. 어라, 그런데 여기는 좀 다르다. 일단 식당을 겸하고 있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반가운 물병이 반긴다. 어린 시절 각 가정마다 하나씩은 있던 ‘훼미리 주스병’이다. 내용물은 오렌지 주스가 아닌 보리차. 호로록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보리차를 마시며 메뉴를 찬찬히 살펴본다. 직접 만든 수제 두부와 톳을 넣은 강된장 덮밥. 건강함이 물씬 풍기는 메뉴다. 두 명 이상이 온다면 먹을 수 있는 제육볶음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식사가 나왔다. 톳이 주는 바다 내음과 두툼한 수제 두부가 주는 대지의 풍성함이 입안을 행복하게 한다. 소박하지만 건강한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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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둘러싼 마천동은 시장 외에도 볼거리, 구경거리가 많다. 마천동 인근 천마산이 좋은 예다. 마천동은 천마산과 얽힌 설화가 많다. 마천동이라는 지명도 천마산에서 생긴 일이 유래가 되어 마천리에서 마천동이 되었다. 유래는 이렇다. 조선 중기 병자호란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는 임경업 장군이 천마산에 가는 도중 백마에 물을 먹였는데 물을 계속 샘솟았다고 한다.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말에게 먹일 물이 충분한 냇물이라는 뜻으로 이곳을 마천(馬川)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마천동은 이래저래 임경업 장군과 인연이 깊다.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임 장군은 인근 개룡리에서 갑옷을 입고 지금의 거여동에 위치한 봉우리 ‘투구봉’에서 투구를 쓴 후 천마산이 내려준 ‘용마’를 타고 병자호란에 참전했다 전해진다. 하늘이 내린 용맹한 명장이었지만 장군은 누명을 쓰고 죽는다. 청은 임 장군이 명과 내통했다며 포로로 삼아 심양으로 압송시킨다. 임 장군은 포로가 되어 끌려가던 중 탈출한다. 훗날을 도모하려 하지만 어림도 없다. 오히려 역모의 누명을 쓰고 ‘장살’이라는 형벌을 받고 사망한다. 그 당시 시대에 좋은 말로를 가진 이들이 몇이나 되었겠냐만은 백마를 타고 전쟁에 참전하던 용맹한 장수의 말로가 비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임 장군의 업적이 재조명됐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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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근린공원은 바로 임 장군을 추대하며 만들어진 곳이다. 마천동은 60년대만 해도 행정구역이 경기도였다. 1963년 1월 서울특별시조례에 따라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마천리 일대가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마천동도 송파구로 자리 잡게 됐다. 오랜 시간 마천동은 낙후된 지역이 많았다. 오래된 빌라와 주택들로 서울이지만 외곽 지역이라는 인식이 40여 년간 계속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마천동 일대가 재개발되고 시장 건너편으로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앞으로는 성내천과 연계한 이 일대가 수변특화주거단지로 지정되어 이 일대가 탈바꿈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서울시 송파구로 편입되어 상전벽해가 일어나고 있는 동네다.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마천중앙시장은 수많은 오랫동안 전통의 멋과 맛을 계속 지켜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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