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승낙했을 때만 해도 그냥 막연히 ‘나 이제 결혼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양쪽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려고 보니 적어도 결혼식을 언제쯤 할지 정도는 결정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는 일단 그냥 적당히 올해 안에 결혼하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결혼을 발표한 이후로는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에 휩쓸린 것 같이 말이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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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결혼을 올해 안에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으니 어떤 형태로든 결혼식을 하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결혼식을 할 장소는 필요할 터였다. 그래서 나는 일단 별생각 없이 결혼식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평소 나와 남자친구는 가능하면 예식 자체에 깊은 의미가 있는 전통혼례를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식을 전통방식으로 할 수 있는 장소를 우선으로 고려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이리저리 검색을 해보니 서울에서 전통혼례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양 부모님이 한국에 사시는 커플과는 다르게 한쪽 부모님과 가족들이 한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와야 했다. 그러니 다짜고짜 너무 가까운 날짜를 잡을 수도 없고 항공편 예약이 걸려있으니 한 번 정한 결혼식 날짜를 중간에 변경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늦장 부렸다가는 모두의 스케줄이 맞는 시기에 전통혼례는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이 참석 가능한 날짜를 조율하며 급히 여러 곳에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국 한 혼례식장에 예약을 잡았다.

그렇게 어떻게든 결혼식 날짜가 결정되자 나는 이제 한시름 놓았다 싶었다. ‘결혼할 장소를 계약했으니 나머지는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결혼식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는 미리 어느 정도 알아두면 좋겠다 싶어 결혼한 친구 등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그들 각자 성격과 취향에 따라 세부적인 부분은 좀 달랐지만 공통된 의견은 이것이었다. 1) 결혼반지는 다른 무엇보다 그냥 매일 끼기 편한 것이 최고다. 2) 결혼식 자체는 어차피 결혼하는 당사자들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으니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3) 결혼식보다는 신혼여행이 기억에 남고 재미있다. 4) 웨딩촬영이 쓸데없는 것 같지만 일생에 단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니 해보는 것이 좋다. 사실 나와 남자친구는 웨딩촬영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원래 사진을 찍는 일에 큰 관심이 없기에 귀찮은 일 일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나름 재미있다”라는 친구들의 조언에 생각을 바꿔 적당한 가격에 웨딩촬영을 하기로 결심했다. 결혼식 때는 예식용 한복을 입을 테니 웨딩촬영을 하면서는 평생 입을 일 없을 드레스와 슈트을 입고 둘이 하루 재미있게 노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준에 맞는 업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검색하면서 나는 한국의 결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결혼 박람회와 웨딩 플래너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결혼식장을 예약했고 준비할 예물은 결혼반지뿐이다. 그리고 식은 전통 혼례라 본식 때 입을 드레스를 알아보러 다닐 일이 없기에 따로 플래너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준비의 세계에는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결혼 박람회, 웨딩 플래너, 결혼식장, 드레스, 부케, 한복, 결혼예물, 웨딩촬영, 본식 촬영, 피로연장으로 이어지는 상당한 규모의 산업 생태계가 있었다. 그 사이에는 서로 간에 주고받는 커미션과 인터넷 후기 업로드에 따르는 할인이나 페이백 등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결혼과 관련된 오랜 관행과 관련자들의 이해관계, 결혼식에 관한 통념과 환상이 얽혀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웨딩 업계의 이런 전형적인 방식에 딱히 불만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특수한 상황이 흥미롭다 생각했다. 그 업계가 제시하는 옵션들 중 우리가 즐겁게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와 남자친구에게 결혼식은 어떤 형태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식에 대한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우리는 그저 가족들과 모여 식사를 하며 결혼 서약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을 것이다. 사실 결혼식의 본질은 매우 단순하지 않던가?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 반지를 나눠 끼고 혼인신고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혼이라는 기회를 가능한 한도 내에서 여러 가지로 즐겨보고 싶었다. 전통혼례가 우리에게 더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 선택한 것처럼 우리는 웨딩촬영도 같은 마음으로 해보기로 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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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결혼식은 가족과 친척들이 참석하는 행사라 온전히 우리 위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한다면 나는 결혼식에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 입장을 고려해서 부모님의 하객도 충분히 모시기로 했다. 또 우리는 웨딩촬영보다 본식 영상 촬영에 좀 신경을 쓰기로 했다. 남자친구의 조부모님께서는 한국에서 하는 결혼식에 오실 수 없으니 대신 촬영과 편집에 공을 들여 후에 결혼식 영상을 보여드렸을 때 재미있게 보실 수 있게 만들고 싶어서다. 또 외국에서 오시는 하객 중 원하시는 분들은 한복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들 한복은 어떤 디자인이든 상관없으니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결혼식 후 있을 피로연의 장소와 음식은 우리 어머니가 선택하시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있기에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막상 결혼식과 웨딩촬영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은 정보 조사가 필요했고 결정하고 조율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다. 삶에서 선택이라는 것은 늘 어렵고 사람을 고뇌에 빠뜨리는 것이지만 결혼식 준비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 엄청나게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때에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조금만 돈을 더 쓰면 더 좋은 게 있는데 그걸 안 해?’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선택에 더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그 ‘좋은 것’의 한도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는 결혼식 준비를 하며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직접 해보니 결혼식 준비는 생각보다 의미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와 나의 예비 배우자가 실제로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그 가치관이 서로 잘 맞는지를 정말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은 어느 정도 목돈이 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서로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하면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많은 의논과 세심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니 만약 예비부부 간에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면 싸울 일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결혼식이라는 것 자체가 예비부부의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드레스든, 결혼식장이든, 결혼반지든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게 되는 행사다. 그러니 나의 예비 배우자가 자신의 사회적 관계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결혼 준비는 어떻게 생각하면 가족이 되어 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결심한 남녀의 첫 공동 프로젝트이고 진정한 결혼으로 가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현실적인 시험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과정에서 파혼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긴 인생을 보면 오히려 건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준비는 솔직히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더 귀찮은 일이 많고 복잡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가급적 즐겨보기로 했다. 우리의 결혼식은 흠 잡을 데 없이 그림 같은 완벽한 결혼식 사진을 남기는 한 때의 아름다운 이벤트가 아니라, 준비 과정부터 혼례 예식과 피로연까지 우리 둘과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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