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숙 전장연 공동대표, “죽지 않고 이동할 권리”를 달라
'1역사 1동선’ 미완…“살인기계 리프트”

2025년 10월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시위 중인 전장연 활동가들 ⓒ위클리서울/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25년 10월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서 시위 중인 전장연 활동가들 ⓒ위클리서울/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20년째 제자리인 장애인 이동권 현실에서 비롯됐다. 수차례 대책이 발표됐지만 서울 지하철의 ‘1역사 1동선’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고 리프트 사고 위험도 계속되고 있다.

18일 오전 8시경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하행선과 5호선 광화문 상행선 열차가 전장연 시위로 무정차 통과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일부 구간 열차가 지연 운행됐다고 밝혔고 9시를 넘겨 열차는 정상 운행됐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가 2001년 1월 22일에 있었다. 이후 2월 6일로 기억하는데, 이때는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선로에 내려갔다. 참사에 대해 사과하고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박경석 전장연 상임대표는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 지하철 투쟁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했다.

2025년 10월 종각역 시위 활동사진 ⓒ위클리서울/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25년 10월 종각역 시위 활동사진 ⓒ위클리서울/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01년 오이도역에서 설 연휴에 이동하던 장애인 부부가 탑승한 리프트가 추락해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권 단체와 당사자들이 시위에 나섰고 사회의 경각심이 높아지며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공론화됐다.

이듬해 이명박 서울시장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종합대책’을 내놓으며 2004년까지 서울 지하철 모든 역에 100% 승강기 설치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세부실천계획'에서 2022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승강장까지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이행되지 않았고 2017년 신길역에서 또 리프트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 1월,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지하철 1~8호선 전 역사(275개 역)에 100%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고, 오세훈 시장도 같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첫 약속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한’ 이동권 보장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이 전장연의 문제 제기다.

이형숙 전장연 공동대표는 “한강버스에는 수백억의 돈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장애인의 이동권의 현실이 이 모양인 것이 말이나 되는가”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2024년 9월 국회 토론회에서 오세훈 시장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2024년 9월 국회 토론회에서 오세훈 시장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전장연은 오래전부터 역사 내 휠체어 리프트의 위험성과 리프트에 의존해야 하는 환승 구조를 문제 삼아 왔다. 하지만 사고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는 한 번도 없었다고 지적하며 여러 건의 중상·사망사고를 낸 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규정한다. 전장연의 요구는 확실하다. “죽지 않고 이동할 권리” 구체적으로는 ▲지하철 ‘1역사 1동선’ ▲저상버스 보급 확대 및 보편적 대중교통 전환 ▲장애인콜택시 운전원 충원 등이다.

전장연은 “리프트 의존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 내 모든 승강장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한다. 신설동역의 경우 엘리베이터 2회, 리프트 5회를 이용해야 하며 환승에만 30분이 소요되고 공덕, 왕십리, 청량리 등 환승에 20분 이상 걸리는 역도 18곳에 이른다”며 “잔존 리프트 전수 공개와 일정이 명확한 폐기 로드맵 시행”도 함께 요구했다.

2023년 국토교통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노선버스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38.9%에 그치며, 서울만 66.7%로 절반을 넘겼고, 나머지는 모두 50% 미만이다. 하지만 서울에서조차도 저상버스가 보편적 대중교통으로 규정되지 않고 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2005)’에 따라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임에도 서울시는 예외노선(일반버스운영) 승인을 손쉽게 내주고 있다. 전장연은 이 문제를 지적하며 예외라면 개선계획이 따라야 하나, 서울시가 계획 마련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언급했다.

또, 장애인콜택시의 경우 차량 수보다 ‘운전원 증원’이 핵심 문제라고 강조했다. 운전원 부족으로 최대 대기 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 등 서비스 제공에 실효성이 없어 운전원 인건비 등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18일(오늘)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탑승 시위 중인 전장연 활동가들 ⓒ위클리서울/연합뉴스
18일(오늘)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탑승 시위 중인 전장연 활동가들 ⓒ위클리서울/연합뉴스

"이미 서울시 94%의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2022년 전장연 이동권 시위를 두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한 발언이다. 그러나 수치는 ‘엘리베이터 설치 여부’를 단순 집계한 값일 뿐 ‘완전한 이동권 보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역 내에서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리프트를 갈아타야 하는 등 ‘1역사 1동선’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제 기준 또한 단순 엘리베이터 설치를 넘어 ‘한 번에 이동(one-level transfer)’ 등 구조적 접근성을 요구한다. EU의 철도 접근성 규격(PRM-TSI)·영국의 step-free 정책 등은 플랫폼 높이·도어 위치·격차 허용치 등 이동 전 과정에서 교통약자의 편의가 보장되는 설계를 목표로 한다. 일부 역이 요소적으로 엘리베이터를 갖췄더라도, 동선 설계가 엉켜 있으면 장애인은 실질적 이동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장연이 주장하는 ‘이동권’은 교통약자 모두에게 해당한다. 특정집단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설계’이다. 국토교통부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교통약자의 가장 큰 비중은 65세 이상의 고령자이며, 이어 장애인·어린이·영유아동반자·임산부 순으로 나타난다.

단체는 “20년간 외쳐왔지만 평등한 권리는 여전히 없다”고 말한다. 논란이 되는 지점은 분명하지만 본질은 이동권 보장이다. 전장연은 집회, 문화제 등 다양한 방식의 시위를 해왔음에도지만 변한 게 없었다고 했다. 그들이 손가락질을 받아도 극단적인 투쟁에 나선 이유다.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도 장애인 권리를 위한 예산 확보 보다는 법적 처벌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원 인건비 등의 핵심 예산은 제외됐으며 되려 국회에서는 전장연 방지법(2025 철도안전법 개정, 국힘 김재섭)이 발의됐다.

전장연 지하철 시위는 단순한 ‘출퇴근 불편’ 제기가 아니다. 반복되는 리프트 사고와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아직까지 보장되지 않은 이동권에 관심을 촉구하는 몸부림이다. 전장연 측은 예산·법 등 종합적 개선을 요구하며 향후에도 집회와 공론화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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