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천사 같은 희중이 엄마 뿔나다

 

 

“아따 내가 그놈의 돈 오만 원 돌려주니라고 세상에나, 밤새도록 실갱이를 벌였더니마는, 그 바람에 내가 잠도 못 자고, 피곤해 죽겠는디 잠도 안 오고, 와따 참말 미치겠네 잉?”

덜컹거리며 갖은 요란을 다 떠는 트랙터 위에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꾸벅꾸벅 졸다가 끝내는 발랑 드러누워 미약하게 코를 골던 희중이 엄마가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서 앉더니 한 말씀 하신다. 말씀이라고 했지만 잠결에 내놓은 혼잣말 같은 것일 뿐이어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알아듣기는 힘들다. 물론 내막을 아는 사람은 금방 알아듣고 배시시한 미소를 흘린다.

다은이 엄마의 얼굴에 그런 미소가 피어올랐다.

“뭔 일 있었어요?”

남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내가 다은이 엄마의 미소를 놓칠 까닭이 없다. 다은이 엄마 역시 통역을 원하는 나의 요청을 외면할 까닭이 없다. 갯마을 하전에서 바지락 양식장까지는 트랙터로 사십여 분을 달려야만 한다. 사십여 분, 그것 뭐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온 몸의 관절을 뒤틀어놓을 듯이 덜컹거리는 트랙터 위에서는 사십 분이 네 시간 아니 나흘만큼이나 긴 시간이다. 이 장구한 고달픔의 시간을 마취해주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이야기요, 둘째는 상상이다. 술은 내가 마시고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는 어느 시구처럼, 아주머니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나는 끊임없는 상상으로 이야기를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어나간다.

 

▲ 아이고 잠와 죽겠네

 

그렇게 해서 나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벌었다. 그렇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의 재미뿐만 아니라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욕심까지 취하는 그야말로 욕심쟁이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지 않고 벌었다고 말한다. 어쨌든 이야기 하나를 벌었다. 벌어놓고 보니 이야기가 참 그냥 확 달려들어서 얼굴을 비벼대고 싶을 정도로 물씬물씬 사람 냄새가 진동한다.

희중이 엄마가 간밤에 아마 동네의 누군가와 장난 비슷한 실랑이를 벌이다가 머리에 약간 생채기나 났던 모양이다. 희중이 엄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힌 사람이 약값 명목의 현금을 들고 와서 희중이 엄마 손에 쥐어주고 달아났다. 희중이 엄마는 그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얼결에 받았다가 질겁을 했다. 그래서 그 돈 오만 원을 들고 그 집으로 달려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질러대며 돈을 방에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십 분도 채 안 돼서 돈 오만 원은 다시 희중이 엄마의 손에 들어왔다. 보다 정확하게는 희중이 엄마가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는 방안으로 돈이 흡사 밖에서 날아드는 돌멩이처럼 날아 들어왔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약값이라도 하라는 말과 함께 금방 사라져 버렸다. 희중이 엄마는 그 돈을 집어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이렇게 해서 현금 오만 원이 주인공이 되는 한밤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희중이 엄마는 돈을 받지 않아야 할 이유를 개발해서 설명하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돈을 주고자 하는 사람은 희중이 엄마가 약값 명목의 돈을 받아야 할 이유를 개발해서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주장을 펴느라 밤이 다 새버리는 줄도 몰랐다는 거였다.

“항꼬 놀다가 쬐께 다친 것인디 뭔놈의 약값이여, 약값이. 아저씨도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안 그러요?”

다은이 엄마의 이야기 속으로 당사자인 희중이 엄마가 불쑥 끼어들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묻고 있었다. 마치 최종 판단을 구하는, 선처를 바라는 피고자의 그것처럼 뭔가 간절한 그 눈빛이 너무도 진지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참을 허둥거리다가는 그만 히히, 웃어버리고 말았다.

 

▲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중의 희중이아빠

 

“그것 참,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친구와 술을 마시고는 밤이 다 새도록 서로 바래다주기를 하시다가 그만 다음 날 하루를 망쳐버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는데, 그거랑 쪼까 비슷한 거네요, 잉?”

“아따 참말로 아저씨도, 그것이랑 이것이 으찌케 같다요? 아 그 여편네는 돈 받을 일이 하나도 없는 나한테 맥없이 돈을 준다는 것이고, 집의 아버지하고 아버지 친구는 사이가 너무 다정해서, 술 취한 몸으로 혹시 다치면 어쩌나 해서 그런 것인디 으찌케 같냐고요.”

희중이 엄마는 이제 자신이 나를 판결하고 있었다. 그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에 나는 새로운 차원의 웃음보가 터지려 하고 있었지만 안간힘을 다해 참아야만 했다. 만약에 내가 웃음보를 터뜨리고 만다면 희중이 엄마는 이유야 어떻든 속상해 할 것이 너무나 뻔했다.

뭐라고나 할까. 희중이 엄마는 우리의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는 원칙주의자라 할 만하다. 옳은 것은 확실하게 옳은 것이고 나쁜 것은 또 확실하게 나쁜 것이어서 ‘적당히’라든가 ‘대충’ 같은 것이 들어설 틈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의 대통령과 희중이 엄마의 원칙주의가 같은 등급이라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다. 귀족 계급의 대통령과 서민 중에서도 이른바 ‘하빠리’ 서민 계급에 속하는 희중이 엄마의 성장 배경을 굳이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됨됨이는 흑과 백 만큼이나 너무나도 명료하게 달라서 혹시 내부 장기의 생김새나 구조도 그렇게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원칙이 대통령의 이익이나 철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면, 희중이 엄마의 원칙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크게 이익을 본다면 내가 즐겁다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나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니 두 사람의 원칙은 근원에서나 결과에서나 도무지 같을 수가 없다. ‘원칙’이라는 두 음절의 단어 하나만 같을 뿐이다. 이러한 원리는 마치, 내 친구가 내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 아버지가 친구의 아버지는 되지는 않는 것이나 같은 것이어서, 현상을 표현하는 언어와 실제의 현상은 이렇게도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구나, 하는 느닷없는 깨달음에 이르기도 한다.

 

▲ 소라잡이 하던 날

 

그러다가 문득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다. 희중이 엄마와 대통령은 분명히 다르다. 그 다른 점은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에 우리의 대통령이 희중이 엄마처럼 평균보다 대범하고 가슴도 깊어서 역지사지를 할 수 있다면, 정부 정책이나 대통령의 사회인식을 비난,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수사로 경찰력을 소비하는 경찰총수를 따로 불러 그런 자잘한 일에 국고를 낭비하지 말고 보다 큰 도둑을 잡는 데 역량을 집중해 달라는 정도의 지시 내지는 당부쯤은 식은 죽 먹듯이 해치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닐까? 혹시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경찰의 그런 ‘쓸데없는’ 일에는 관심을 가질 수조차 없는 것일까? 물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덮어놓고 대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덮어놓고 역지사지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대통령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찌질’하게 편협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제아무리 잘난 철학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찌질’하고 편협하기 짝이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를테면 생명을 위협하는 뇌염모기도 아닌 일반 모기에 한 방 물린 것을 가지고 아프다느니 가렵다느니 못 살겠다느니 등등 마치 세상이 다 끝나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는 게 인간이고, 그런 인간들의 사회를 관리하는 게 대통령인데 그냥 덮어놓고 대범하게 “모기한테 피도 좀 나눠주고 하는 그런 넉넉한 국민이 됐으면 좋겠어요‘한다면 누가 그런 대통령을 좋다고 하겠는가 말이다.

아 이런, 희중이 엄마 이야기를 가능한 한 즐겁게 하려다 보니 내 상상의 비약이 지나쳐서 말장난 비슷하게 되고 말았다. 희중이 엄마 본인이 이 사실을 알면 아마 속상해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양반은 장난은 좋아해도 이런 식의 말장난은 좋아하지 않으니 말이다. 아무튼 희중이 엄마는 원칙주의자다.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은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원칙에 아주 충실한 양반이다. 부창부수라고,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그런 사람이다.

 

▲ 어느 하루 물속에서의 희중이엄마

 

자기들도 못 살면서 자기들보다 더 못사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특이하게도 희중이 엄마 부부는 손바닥 뒤집듯이 해치워 버리곤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서 배운 것인지, 아내가 남편에게서 배운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누구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게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기관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희중이네는 논 세 마지기와 밭 한 마지기를 유산으로 받았다. 처음에는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농사짓기는 그만 포기하고 바지락 양식장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농촌 살림에서 논 세 마지기는 사실 농사랄 것도 없는 물량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논 세 마지기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한다면, 그는 아마 굶어죽기로 작심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논 세 마지기, 그것은 차라리 계륵과도 같다. 그 정도의 농사는 지을 수도 없고 안 지을 수도 없다. 그것을 농사라고 짓는다면, 남의 집 품팔이를 다니기가 어려워진다. 자기 농사와 품팔이를 병행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남의 일도 소홀히 하게 되고, 농사 자체도 엉망이 돼버리기 십상이다. 반 마지기 정도의 텃밭이라면 잠깐씩 짬을 내어 손을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지만, 세 마지기는 이게 참 애매하다.

아무튼 희중이네는 너무 가난하지 않게 살기 위해 남의 일을 다니기 시작했고,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충실하게 해주기 위해 농사를 포기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함부로 팔아치울 수는 없어서 그냥 갯벌 일에 필요한 기구들을 보관하는 창고 하나를 얼기설기하게 지었고, 나머지는 방치한 채로 트랙터를 세워둔다든가 하는 일종의 야적장처럼 사용해 왔다.

 

▲ 깊은밤 바다에서 수박을 잘라놓고

 

지난 시절 어느 해인가 좀 더 잘살아 보겠다고 서울로 떠났던 마을 사람 한 명이 서울 살림에 실패하고 마을로 돌아왔다. 집도 절도 없이 덮어놓고 고향으로 내려온 이 사람의 처지가 딱해서 희중이네는 부부가 진지하게 의논을 한 끝에 논 세 마지기 가운데 일부를 내놓았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이라 함부로 팔아치우지는 못했지만 집도 절도 없이 내려온 마을 사람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면 지하의 부모님도 기뻐하실 것 같아서, 그래서 그 땅에 집을 짓고 살라고 내준 것이었다.

집 지을 땅을 무상으로 받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기뻐했고, 그리고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 스무 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사람 세상에서 만약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있는 법이니까,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훗날의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무상으로 준 땅의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희중이네는 그도 옳은 말이다 싶어서 선뜻 도장을 찍어 주었고, 이렇게 해서 그 땅은 이제 더 이상 희중이네 소유가 아니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서울 살림에 실패하고 내려온 그 사람은 이제 승용차를 소유할 정도로 살림이 불었다. 살림이 피어난 그는 집을 키웠고, 집을 완전히 에워싸는 형식의 담장을 치고자 했다. 시멘트로 담장을 친 다음 대문을 달고, 대문에는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그가 담장을 친다면, 희중이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다니던 길을 잃게 된다. 갯벌에서 돌아오면 트랙터를 몰고 가서 민물에 씻곤 했던 바로 그 길을 잃게 된다. 그래서 담장을 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집 주인은 내 집에 내가 담을 치는데 웬 상관이냐고 따진다. 그래서 희중이네는 그 땅은 원래 내 땅이라고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그러자 원래 땅을 무상으로 받은 그 사람은 이제 안면몰수가 되어 누가 땅을 달랬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오매, 오매 시상에 뭔 이런 종자가 다 있당가, 응?”

희중이 엄마는 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는 듯이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소리로 말한다.

“아 인간이 인간 같지가 않당게.”

그리고 또 말한다.

“그 인간이 집 한 채 없이 살적에는 우리도 그 인간이 인간인 줄 알았제.”

가난할 때는 사람처럼 행동하던 사람이 손에 돈을 좀 쥐고 보니 사람 행동을 못 한다는 이런 이야기는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 사건은 현재진행이다. 언제나 끝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해괴한 뉴스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자기 재산이면서도 자기 재산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이름자가 속속 떠올라오는데 그 중에는 이명박이라는 이름 석 자도 끼어 있다. 정수장학회라는 명칭 또한 빠질 수 없다는 듯이 떠올라온다.

도무지 말도 안 될 것 같은 이야기가 엄연한 현실로 전개되고 있는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현재 위치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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