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오가 기억하는 경훈은 말 그대로 동네 아이들의 북 노릇을 도맡아했었다. 커다란 눈에, 어울리는 백옥 같은 피부. 그건 남순과 똑 같았다. 귀공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하지만 당시 산간벽지 깡촌에선 그런 면에선 인정받을 수 없었다. 시커먼 얼굴에, 사시사철 달고 다니는 누런 코, 질질 끌고 다니는 검은 고무신으로 대표되던 시골 아이들이었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그는, 머리 하나만큼은 더 위로 올라와 있었다. 남순과 아주 흡사하다고 하면 아마 이해가 쉬울 것이다. 게다가 그는 말도 없었다. 화를 내는 법도 없었다. 웃는 모습을 본 기억도 없다. 무미건조한 아이. 아무런 표정이 없는. 큰 눈에서는 눈물 방울이 금새라도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그를 놀려댔다. 처음 그의 누이에게 쏟아지던 꺽다리, 라는 별명은 남순이 몇 번 아이들을 쥐어박고 나서부터는 그에게로 옮아갔다.

그는 할머니, 준오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벌써 머리가 새하얗게 돼 백발이 성성한 그런 노할머니, 그리고 삼촌과 함께 살았다. 집도 동네 한 복판이 아닌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그런 곳에 아주 처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봄이 되어 다른 집들은 한 겨울 혹한과 폭설에 시달린 초가지붕을 수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일 때도 그 집만은 항상 조용했다. 지붕 위에 쌓였던 눈이 녹고, 그 위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도, 누구 하나 지붕에 올라가 뽑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붕은 항시 지푸라기가 푹 썩어 움푹움푹 패인 자국이 눈에 밟혔다. 흙을 이겨 만든 집도 군데군데가 다 허물어져 폐가 그것이었다.

하긴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그 집에 있었는데 바로 그들의 삼촌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이에 비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준오는 그 삼촌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본 기억도 없었다. 간신히 160cm나 될까 말까한 작은 키, 머리는 항상 덥수룩했다. 사람들은, 어른이건 아이건 할 것 없이 그를 삼룡이, 라고 불렀다. 그래서 준오가 기억하는 그의 이름도 바로 삼·룡·이였다. 엄연한 그의 이름이 분명히 있었을 터인데도, 그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삼룡이라고 불린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벙어리, 다시 말해서 청각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준오 역시 그를 놀려댄 기억이 있다. 또래들과 자치기 등을 하며 어울리다가 그가 저만치라도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아이들은 획기적인 놀이거리 하나가 생겼다는 듯 그에게 몰려갔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되다시피 한 '삼룡아!!'를 외치며 손가락질을 해대고 발길질을 했다. 심지어는 돌팔매질도 서슴지 않았다. 준오도 그런 아이들 틈에 자주 끼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바로 맨 날 당하는 삼룡이의 태도였다. 그는 아이들의 지극히 저속한 삿대질에도,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먹질과 발길질에도, 여기저기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혹독하게 이어지는 돌팔매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피를 흘리는 채로 헤∼하고 웃는 게 전부였다. 하긴 그 덕분에 아이들의 그런 가혹행위는 그리 오래 끌어지지 못했다. 금방 싫증을 내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에 또 마주칠 때면 아이들은 여전히 그 놀림의 서슬 퍼런 칼날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그 삼룡이가 바로 남순과 경훈의 삼촌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무런 근로능력이 없었다. 그저 헤헤, 거리면서 가끔 바람을 쏘이러 나올 뿐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 틀어 박혀서 지냈고,(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아이들의 가혹행위 때문이 아니었나 싶지만) 온 동네 사람들이 지붕을 새로 올리느라 분주할 때도, 농번기가 되어 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수업을 빼먹어가며 논으로 밭으로 투입될 때도, 그는 혼자 여유로웠다. 아이들의 그에 대한 가혹 행위 이면에는 아마 그런 배경도 깔려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라고 하는 작자가 일은 하지 않고 비실비실 돌아다니며 한껏 여유를 즐기는데, 정작 아직 어린 자신들은 막노동의 일선에서 땀을 흘려야 한다는 자괴감 같은.

하지만 아이들의 그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일방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그는 말을 못하고 약간의 정신장애증세까지 있었는데, 또 그런 만큼 착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 사이에 아르바이트 거리로 꽤 유행하던 개구리잡기에서도 그의 그런 착한 마음은 드러나곤 했다. 그는 곧잘 아이들이 하는 일에 끼어 들려고 했는데 아이들의 구박 끝에 저만치 밀려나게 되면 어느 새 아이들 것보다 족히 두세 배는 더 되는 많은 수의 개구리를 잡아 철사에 끼워와서는 자랑해 보이곤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그저 '어버버'만 연신 토해낼 뿐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철저한 놀이개로서만 그 존재를 인정받던 그가 자신들 두세 명이 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을 해내다니. 그 신기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곧 '씨~팔'하는 비굴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삼룡이는 철저하게 잡은 개구리를 아이들 수만큼 나누어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개구리는 곧 돈이었다. 어디에 쓰려는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루에 한 번 꼴로 그 개구리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한 마리 당 2원인가, 3원인가 하는 돈을 아이들에게 치르고 철사 줄에 매달린 그것들을 가져갔다. 삼룡이의 행동은 곧 자신이 번 돈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런 날 만큼은 아이들은 삼룡이에게 인간 대우를 해주었다. 그래봤자 어른으로서가 아닌 또래의 삼룡이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논 한 쪽에 나뭇가지들을 긁어모아 지핀 불 위에서 끓는 누런 냄비 안의 개구리 다리 한 토막을 얻을 수 있는 영광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는 그는 무척 고맙다는 듯 연신 입을 헤헤거리며 그 다리를 뜯는 것이었다.

경훈은 그런 삼룡이와 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역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벙어리에 바보천치인 그의 삼촌이 한몫을 하는 것도 분명했다.

그리고 사실 큰 키나 하얀 얼굴과 반대로 그는 항상 지저분했다. 머리는 자르지 않아 마치 지푸라기를 뒤엉킨 것 같이 푸석했고, 단 한 켤레뿐인 검정 고무신은 여기저기가 찢어져 실로 꽤 맨 자국이 더 많이 보일 정도였다. 학교에서도 그랬다. 당시만 해도 워낙 씻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서 학교에서의 '때 검사'가 관행화 돼 있었다. 거의 매일 이루어지기도 하고 며칠을 걸러 한번씩 행해지기도 했는데, 선생들이 직접 나서는 매우 중대한 업무 중 하나였으며 학생들에겐 꽤 큰 고민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준오도 몇 번 그 덫에 걸려 창피를 당한 일이 있었다. 남녀공학인 학급의 교실에서 거행되는 이 행사는 학생들이 남녀 할 것 없이 팬티 한 장만을 남겨둔 채 책상 위에 올라가 양팔과 다리를 일제히 벌리고 서면, 선생이 지나가면서 몸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때가 있는 곳에 인쇄용의 시커먼 잉크가 묻혀진 롤러를 굴리는 것이었다. 물로 어지간히 닦아서는 잘 지워지지도 않는 시커먼 잉크를 잔뜩 묻혀두면 집에 가서 씻을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날 여지없이 다시 행해지는 때 검사에서 비교적 큰 공 들이지 않고 결과산출이 가능한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돌아오면 그 시커먼 흔적을 지우느라 아주 용을 써댔다. 조금 '있는' 집 아이들은 세수 비누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걸로 인쇄용의 시커먼 잉크를 지우는 건 무리였다. 빨래비누가 등장하고, 나중에는 까끌까끌한 모래가 이용되기도 했다. 아이들은 살갗이 다 벗겨질 정도로 밀고 또 밀어댔다. 다음 날 다시 그 엄숙한 행사가 시작되고 옷을 벗은 아이들의 몸은 온통 피멍자국 투성이였다. 그래도 그게 나았다. 지워지지 않은 아이들은 인정사정 없이 내리치는 선생님의 몽둥이 세례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몸에는 다시 시커먼 잉크가 마치 저주의 낙인처럼 찍혀졌다. 한번 시작된 때 검사는 그렇게 며칠을 끊이지 않고 반복되곤 했다.

경훈은 단골이었다. 그의 몸은 일년 사시사철 내내 온통 잉크 투성이라고 할 정도였다. 나중엔 잉크와 때가 엉켜 썩는 냄새까지도 났다. 선생도 그에게 매질하는 걸 포기할 정도였으니. 몇 번 남순이 동네 한가운데 있는 우물가에 그를 데리고 와서 씻기는 걸 시도한 것은 본적이 있었으나 그 역시 원활하지 못했다. 그는 한사코 남순의 손아귀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준오는 나중에서야 그가 그렇게 씻는 걸 싫어하는 이유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바로 부끄러움이었다.

한번은 해가 소나무 숲 너머로 저만치 넘어가는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이었는데 때마침 우물가에는 저녁을 준비하려는 아낙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소동이 일어난 건 잠깐이었다. 언젠가 준오가 보았던 것처럼 남순이 경훈의 팔목을 붙잡은 채로 거의 끌다시피 우물가를 찾았고 경훈은 씻지 않겠다고 악을 버럭버럭 지르는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남순이 경훈의 바지자락을 훽, 내려버린 것이었다. 경훈의 아직 설익은 고추가 아낙들 앞에 그대로 드러난 건 당연한 일. 더욱 웃기는 것은 그 다음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허걱'하고 단말마를 내지른 경훈이 채 바지를 추스르지도 못한 알몸으로 냅다 자기네 집 쪽으로 도망을 쳐버린 것이다. 동네 아낙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이 사태에 까르르 웃음보를 터트렸다.

어렸을 적 경훈은 바로 그런 아이였다. 순진하고 말이 없고 그저 부끄러워 할 줄 만 알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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