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감방은 생각했던 것보다 춥지 않았다. 어디선가 야릇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히터를 틀어 둔 모양이었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길다란 철창으로 구분되어진 유치장은 대여섯 개는 돼 보였는데 대부분이 텅 빈 상태였다. 한 두 곳에만 사람들 몇몇이 앉아서 졸거나, 드러누워 잠을 자거나 하고 있었다. 준오가 들어가자 이들은 잠깐 시선을 돌렸을 뿐,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자신들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갔다.

경훈은 맨 끝 방에 있었다. 독방. 지은 죄를 얘기해주는 것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유난히 마르고 큰 키를 보았을 때 경훈이란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양손과 발에는 굵은 쇠사슬이 이어진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나란히 가던 간수가 무슨 얘긴가를 했고 준오 역시 그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윽고 철문이 덜커덩, 하고 열렸다. 먼저 들어간 간수의 뒤를 준오가 따랐다. 경훈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은 채였다. 그저 고개를 수그리고 무릎을 감싸 안은 자세 그대로였다.

"218번, 손님왔다. 고개들어!!"

간수의 굵직한 목소리가 유치장 안에 꽤 큰 톤으로 메아리를 치며 울려 퍼졌는데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새끼가, 고개 안들어?"

간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발길질을 하자 준오가 이를 제지했고 그제서야 경훈의 고개가 잠깐 들렸다. 준오는 왈칵, 하고 저 아래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하지만 자꾸 목이 메였다. 눈앞이 아련했다.

잠시 깊은숨을 몰아 쉰 준오는 간신히 입을 열어 간수에게 잠시만 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간수는 화들짝 뛰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을 둘이나, 그것도 자신의 부모를 난자해 죽인 희대의 살인마와 독대 하게 하다니. 하지만 준오의 간곡한 요청에 그는 조심하라는 얘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유치장 밖으로 걸음을 떼었다.

경훈의 시선은 여전히 떨궈져 있었다. 어떻게, 뭐라고 입을 떼어야 할지 잠시 갈등했던 준오는 들릴 듯 말 듯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움찔하면서 자세를 낮추고 희대의 살인마와 상면했다. 몇 년만인가. 준오가 서울로 유학을 떠나면서 헤어진 이후 첫 만남이니 족히 13-4년은 지났나보다.

이름을 불렀지만 소리가 목안에서만 맴돌 뿐. 그는 이번엔 있는 힘껏 그를 불렀다.

"경훈아, 나 준오야. 모르겠어?"

목소리가 떨렸다. 간수의 발걸음 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왔다. 답답한 상황을 지켜보며 밖에서 서성이는 모양이었다.

경훈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나마 들었던 고개를 다시 떨구었을 뿐. 준오는 손을 뻗어 족쇄가 채워져 묵직한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손에는 채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희대의 살인마의 손. 그렇지만 준오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노력했다.

다시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간신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섬뜩하리 만치 무표정한 얼굴. 눈빛도 그랬다. 철저하게 허공만을 응시할 뿐 초점이 없었다. 언젠가 어떤 영화에선가 보았던 한 정신병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배역을 맡은 연기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비디오를 통해 그를 접했으며 잠시간 몰입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가 아니었다. 준오는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애처로움의 잔재가 소리없이 사그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신 울컥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했다. 십 수년 전의 경훈이라고 보기에 그는 너무 달라져 있었지만, 어렸을 때의 그 부끄러움 많고 순진하던 구석을 읽어냈다. 아니 그대로라고 믿고 싶었다.

준오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경훈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발에 채워진 족쇄가 그의 입까지 막아버린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의 의지가 아닌지도 모른다. 경찰에서 발표했듯 그는 이미 깊은 정신이상 상태에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최소한 지금 그 역시 그걸 실감하고 있는 거였다. 준오가 아는 경훈이는 절대 이런 아이가 아니었다.

"거, 미친 놈한테 괜히 힘빼지 마슈"라는 간수의 얘기 전에 그는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남순의 죽음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 같았다. 사건의 정황상 모르는 게 분명했다. 남순의 죽음 이전에 그는 이미 살인을 저지르고 붙잡혀와 감방신세를 지고 있었던 것이니. 게다가 남순의 죽음은 준오와 일부 동네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을 뿐.

그렇다면 그에게 남순의 죽음을 얘기해주는 건. 그는 어떤 반응이라도 보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하나밖에 없는 누이의 죽음을 알리는 건 극약처방을 내리는 것이었다. 절대 안될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남순과 그 계부인 김기춘, 그리고 친모의 죽음에 대해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풀릴 줄 모르는 의혹의 덩어리들을 유일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단 한사람 경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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