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좌충우돌 인도 여행기-21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어릴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회전그네



첫 번째 여행에서 아그라에 머물던 때는 궁핍함의 절정기였다. 때문에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타지마할 내부를 끝내 들여다보지 못했다. 몇 년을 곱씹어도 희석되지 않는 커다란 아쉬움이었다.

지난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두 번째 여행에서는 아그라 방문과 타지마할 입장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한여름의 폭우처럼 땀을 쏟으며 지난해 5월 말 드디어 아그라 땅을 밟았다.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그때와 같은 길을 좇아 걸었다. 건물이며 길이며 주변의 모양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당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도무지 적응 안 되는 쓰나미급 더위뿐이었다. 추억이고 나발이고 조금만 덜 더운 동네가 있다면 그곳으로 무작정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기차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결국 행선지를 바꾸고 표를 구입했다가 취소하길 몇 차례 반복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아그라에 5일이나 머무르게 됐다.

떠나기 전날도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지독한 폭염이 계속됐다. 영상 50도에 육박하는 초강력 울트라 메가톤급 더위는 밤이 되어도 좀처럼 기세를 꺾지 않았다. 대지의 뜨거운 복사열로 땅 위의 모든 것들이 위태롭게 요동치는 숨 막히는 밤이었다. 숙소는 전기가 차단돼 에어컨 작동도 안 됐다. “숨통 조이는 방 말고 차라리 밖에 나가있자.”

정전 때문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만큼 어둑어둑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좁은 길을 벗어나니 사방이 시끌벅적 했다. 같은 물건을 파는 행상간의 요란한 호객 행위가 이어졌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행상의 커다란 목청을 좇아 행인이 이내 발길을 멈췄다. 여러 행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함박 피어올라 있었다.

 

▲ 축제 다세라를 앞두고 행상들이 장사 준비에 한창이다.



골목 입구에 서 있는 아이스크림 행상이 눈에 띄었다. 먹고는 싶은데 돈이 없어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아이스크림 통을 훔쳐봤다. 바로 옆에는 지갑을 연 엄마 덕분에 골라 먹는 재미에 흠뻑 빠진 우쭐한 동심도 있었다.

“아이스께끼∼!!” 몸채만한 아이스크림 상자를 어깨에 들춰 메고 목 놓아 외쳤던 우리네 행상처럼 그들 역시 동네 사람들에게는 꽤나 반가운 얼굴인 모양이었다.

필자 일행인 조양도 순식간에 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어들더니 맛있게 생긴 초코아이스크림 하나를 덥석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게 눈 감추듯 아이스크림을 후딱 먹어치웠다. 그것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다른 색깔 하나를 집어 우걱우걱 맛있게도 먹었다.

골목을 벗어나니 더욱 다양한 먹을거리와 놀이거리가 펼쳐졌다. 특히 이동식 목마와 회전 그네가 눈에 띄었다. 두 가지 놀이기구를 보고 있자니 80년대 가끔 집 앞을 찾아왔던 출장(?) 놀이기구가 떠올랐다. 놀이기구 아저씨의 행차는 동네 꼬마들에게는 잔치와 같았다. 비록 기구의 종류는 많지 않았으나 비용 때문에 어린이날과 같은 ‘큰 명절’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놀이동산을 대신하는 낙이었다.

어렵기만 했던 그때 그 시절, 주머니 얇은 부모님은 몇 번을 벼르고 별러 우리 남매를 놀이동산에 데리고 가셨을까. 새 옷 대신 헌 옷 몇 번 더 기워 입고, 먹고 싶은 짜장면 참으며 갔던 곳이 바로 그곳이었을 텐데…. 회전 그네와 스프링 달린 말을 타며 마냥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이 잠시나마 아련했다.

 

▲ 골목을 가득 메운 다양한 먹을거리



골목 중간에는 튀김, 과자 등을 파는 노점상이 일렬횡대로 쭉 늘어서 있었다. 엄청나게 뜨거운 기름은 혹서의 날씨를 더욱 강렬히 달구는 기폭제였다. 차마 가까이 갈 엄두가 안 났다. 필자에 비해 그다지 땀을 많이 흘리는 것 같지 않은 인도 사람들도 치솟는 불길과 뜨겁게 달궈진 기름 앞에서는 양동이를 채울 만큼의 땀을 뻘뻘 흘렸다.

먹을거리 행상 옆에는 생필품, 장난감, 문구용품, 조각품 등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했다. 그 중에 팔다리의 모양새가 의미심장한 조악한 인형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릴 적, 그렇게 갖고 싶었던 미모의 바비인형을 품에 안기 전까지 필자는 그것보다 품질이 몹시 떨어지는 인형들을 가지고 놀았다. 팔다리가 좌우로 구부러지는 유연한 바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뻣뻣한 저질의 플라스틱은 금방이라도 툭 하고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어디 그뿐이랴. 반짝반짝 윤기 흐르는 금발의 바비와는 달리 필자 인형의 머리카락은 빗질도 힘든 돼지털 같았다. 얼굴의 화장은 또 왜 그렇게 조악한지…. 그런데 기억에 남는 것은 귀공녀 바비보다, 바비를 얻기 전까지 오랜 시간 함께 소꿉놀이를 했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저품질의 인형들이었다. ‘후후후….’

추억을 더듬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좌우 앞뒤로 인파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조양과의 사이가 벌어져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등에 맨 가방 역시 인파에 밀려 저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일순간, 계속해서 인파에 쏠리다 자칫 압사당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서둘러 한쪽 귀퉁이로 몸을 숨겼다.

사람들이 적은 곳으로 몸을 돌려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었다. 진정이 되니 한쪽 벽면에 쭉 늘어선 게임장이 눈에 들어왔다. 핀을 던져 풍선을 터트리는 게임이었다. ‘어라?’ 우리네 행사장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바로 그 풍선 게임이었다. 한쪽에 작은 인형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니 게임 잘하는 사람에게 주는 증정품인 모양이었다. ‘아~우리랑 똑같다, 아하~ 이리 반가울 수가.^^’

 

▲ 다세라 축제의 풍선놀이
▲ 장난감 노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와 늦도록 먹고 즐겼다. 아이들은 놀이기구의 즐거움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했고, 아주머니들은 노점의 물건을 들춰보며 한 푼이라도 더 깎기 위해 실랑이를 벌였다. 아저씨들 역시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온 동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그렇고 숙소에서부터 행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풍경 또한 예삿일은 아닌 듯 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주민들은 힌두 페스티벌 ‘다세라’라고 일러줬다. 이틀간 열리는 축제라고 했다. 동네잔치와 같은 작은 규모였지만 이 지역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축제였다. 필자 일행 역시 분위기에 휩쓸려 한참이나 들떠 있었다. 

아그라에서 뜻하지 않게 체류 기간이 길어진 덕분에 즐기게 된 축제. 짧게나마 행사장을 휘이 돌면서 파는 물건을 감상하고 먹을거리를 즐기며 향수가 밴 놀이거리에 반색했던 유쾌한 시간이었다.

델리와 아그라에서 경험한 축제는 여행 중에 느꼈던 여러 가지 언짢은 기분을 희석시켰던 즐거운 촉매제가 됐다. 나아가 향수와 동심에 빠져들었던 추억의 시간이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