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말한다> 깊어져만 가는 세대 갈등, 왜?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지적한다. 빠르게 달려온 역사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사회변천에 세대 간의 문화와 가치의 차이가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세대 갈등은 존재해 왔으며 전통사회에서 지적의 방향성은 주로 어른들로부터 ‘젊은이’들을 향했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사회적 주도권을, 지혜를 갖춘 노인으로부터 빼앗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젊은이들에게 쥐어주는 일이 많아지자 ‘꼰대’같던 어른들에 저항하는 반항의 문화 바람이 짙어졌다. 반항 문화는 주로 권위적이고 불합리한 관료제와 기성세대를 비판하며 감성과 개개인의 개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1980년대 백인의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을 예술적으로 승화하고자 미국에서 유행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예능프로그램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역사를 계속하고 있다. 다른 예로는 1970년대 뉴욕 브롱스 빈민가의 흑인과 푸에르토리코 소년들의 낙서에서 시작돼 힙합의 한 일부인 마냥 결합된 ‘그래피티’가 있겠다. 특히 홍대 등 일상생활에서의 일탈과 자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영역에서 자주 볼 수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계기로 미국 젊은이 문화의 주축을 세웠던 히피문화도 빠질 수 없겠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한 체제에 저항하여 평화 사랑, 화합, 자유를 이념으로 주로 뮤지션, 아티스트 등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이리만큼 개성적이고 독특한 표현력으로 그들 스스로를 호소했다.

삶의 교훈을 주려고 마련한 자리, 연사로 나선 대학 부총장이 얘기한다.

“저도 40년 여 년 전에 여러분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와 제자들에게 학교를 졸업하고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의 인생을 돌아보며 얻은 교훈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성경 고린도전서의 한 구절을 읊으며 이 연사는 자신이 젊은 시절에 똑같이 느꼈던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공감했다.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젊은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환경을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를 아주 자학하는 용오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젊은 학생들은 그들의 걱정근심을 상기하며 연사님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연사의 청년시절과 좋은 연봉을 포기하면서까지 택했던 삶의 우선순위에 젊은이들은 감탄했고 조금은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에 의지를 회복한 듯 보였다. 연사는 리더십과 비전에 대한 얘기를 이었고 얼마 전에 실현시킨 비전을 자랑스레 전했다. “하나님은 제게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펼쳐주셨습니다. 바로 캠퍼스 문화를 변혁시킨 것입니다. 곧 술 없는 오티, 엠티 문화와 술 없는 축제를 바로 제가 추진하였습니다. 어느 오티 연사에서 ‘여러분은 단 한모금의 술 없이 대학의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외치니 학부모들의 박수가 우레같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에 여기저기 학생들의 눈빛이 흔들림이 보였고, 근방에서 “학부모가 좋아한 거지, 고등학생도 아니고 성인인 당사자한테 물어보기나 했나?” 학생들은 연사로부터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꺼냈다. 연사는 이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들 가운데 가정을 손꼽으며 ‘빨리 결혼할 것’과 ‘아이를 셋 이상 많이 낳을 것’을 강조했다. 아차! 훌륭한 선배라 굳게 믿었던 선배가 한낱 현실에 맞지 않는 잔소리를 늘어놓는 ‘꼰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많은 자식들과 행복할 수 있는 건 당신이 풍족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에요.”

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갈등 사례다. 10대에서 20대 젊은 사용자가 주를 이루는 페이스북에는 간간히 ‘요즘 어른들’에 대한 불만의 일기가 올라온다.

“지하철에서 내 오른쪽 자리가 났다. 왼쪽에 있는 아줌마가 갑자기 허벅지를 찌르면서 옆으로 가라고 한다. 자기 친구 분 앉아야 한단다. 기분이 더러워서 그냥 내 자리에 앉으시라고 했다. 진작 비켜주지 않았냐는 핀잔이 들린다. 하하 자리에 무슨 전세 내셨나.”

마냥 버릇없고 반항심 많은 한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글에 달린 수 개의 답글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아줌마 아저씨들 제정신이 아닌 듯, 초면에 반말인 것도 어이없다.” “나 같으면 화나서 안 바꿔줬을 지도” “그 분들 요금 더 내고 다니시나봄” 졸다가 갑자기 다리가 아파서 보니 웬 할머니가 지팡이로 자신의 다리를 꾹꾹 누르고 있었더라는 둥 방금 어떤 할아버지가 사람 많은 곳에서 지팡이를 휘저으며 비키라고 때리고 가셨다는 둥 유사한 경험을 남기는 답글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답글이 있다. “요즘 어른들이란…….”

비판의 세대가 교체된 걸까. ‘요즘’의 수식어의 대상이었던 ‘애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젊은이를 착취하는 기성세대를 비판한다. 개그맨 유병재가 사용한 어록,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가 큰 환영을 받으며 이슈화되었다.

며칠 만에 또 비슷한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분하다. 난 목소리가 크다. 그래서 배려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통화하다가 주위 배려를 못한 거 같다. 그런데 옆에서 어떤 남성 노인이 술냄새를 풍기며 “거 조용히 해”라고 했다. 반사적으로 나왔다. “존댓말 하시죠.” 지하철 임산부와 장애인을 비롯한 약자에게 함부로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쳐갔다. 할아버지는 입이 걸어지셨다. 나는 녹음을 했다. 욕은 안하시고 임마임마 이 새끼 저 새끼만 하셨다. 조용히 그러나 계속, 그러지 마시라 말씀드렸다. 이쯤되면 나도 미친놈이다. 그래도 계속했다. 약간의 사명감도 있었다. 개또라이 한번 만나면 다른 사람들한텐 아그러겠지. 할아버지는 인성을 학벌과 연결시켜 내게 인신공격을 했다. 난 관상만 봐도 양아치라며 밑바닥에서 노는 새끼라고 하셨다. 그냥 그런 표현들이 좀 혐오스러웠다. 공부 못하면 그런 취급 당해도 되는 거라 생각하시나 싶었다. 파출소 가자며 내리라길래 내렸더니 할아버지는 내리지 않았다. 내리면 골려주려고 참고 있었는데…… 내 인성도 정말 맛이 간 거 같다.”

여기에 사뭇 갈린 답변들이 달렸다.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난조 글이 달리는가 하면 ‘잘했다’며 칭찬해주는 답변들도 적지 않았다. “노인들 지하철 무료 이용, 적어도 제한은 둬야되지 않나” “우리도 노약자석에 앉자”라는 등 격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위 글의 인물은 인성이 비뚤어진 학생도, 사회 부적응자도 아니었다. 명문 대학의 유망한 학생이자 많은 지인들로부터 명철하고 인덕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위 같은 일화를 스스로 목격하고 반응한 글을 자조한 것은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이 얼마나 극심한 상태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준다. 그는 스스로 ‘옹졸한 변명’으로 이름붙인 글을 덧붙였다.

“마치 진보와 보수의 세대대결로 보이는 자유와 질서의 첨예한 갈등의 본모습은 도덕성과 고결함이 요구되는 숭고한 토론이 아니다. 단지 기성세대에 불만을 갖고 앉아 있는 반동분자 본인과 때마침 나이-권력을 부리고 싶었던 노인 사이의 보기 추한 자존심대결이다. 적어도 인간 개인에게는 감정을 받아낼 그릇이 그 무엇보다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갈수록 기성세대에 반항심을 보이는 건 사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살만한 국가임에도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실패하지 않은 삶인데도 상대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실패한 삶으로 바라보고, 변한 세상을 새롭게 읽을 줄 모르는 기성세대는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얘기만 해주고 있지 않는가. “자꾸 뭔가 곁을 내어주면 지는 거 같고 내꺼 안 지키면 다 뺏길 것 같은 사회가 되어버렸다”라고 불안한 젊은이가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반드시 기성세대가 된다. 위태로운 사회 환경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 불안한 젊은이들에게 또 유일한 선배는 결국 기성세대다. 그렇다면 이 끊이지 않는, 아니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세대갈등은 어떤 방향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대학생기자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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