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문지연의 좌충우돌 인도 유랑기-33회: 카주라호 1편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기차역이나 열차 내에서의 정거장 안내 방송이 없기 때문에 승객들은 떄를 맞춰 알아서 잘 내려야 한다. 항시 주변의 몇몇 사람들에게 목적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첫 여행 때, 아그라에서 자정이 넘을 때까지 외국인 여행객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른 아침 기상이 쉽지 않았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부수수한 몰골로 타지마할 주변을 거닐다 기차역으로 향했다. 잔시를 거쳐 카주라호에 가야했기에 시간이 빠듯했다.

기차역도 그렇고 열차 안도 그렇고 정류장 안내 방송은 없었다. 역 이름 안내판 역시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거나 아니면 힌디어여서 해석이 안됐다. 두 눈 부릅뜨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내릴 곳을 지나칠 법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사실 내릴 곳이 어딘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은 인도에서 기차를 이용할 때마다 자주 직면하는 어려움이었다.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릴 곳이 가까워지면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는 기차 안에서만큼은 필자에게 엉뚱한 곳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 헛갈려서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싶으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합심해 손사래를 치며 오류를 지적했다. “어라, 다음 역이 아니지. 그 다음다음다음 역이야. 내릴 때 얘기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사람들의 고마운 안내 덕에 내릴 곳을 지나치거나 목적지에 모자라게 닿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기차역 모습



잔시로 향하는 기차에 앉아 차창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창문의 쇠창살 사이로 가늘게 번지는 햇살이 몹시도 따사로웠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내듯, 홀가분하고 차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햇볕 한줄기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바꾸어 놓다니!’ 실로 놀라웠다. 기차 안에서 내내 끼적이던 일기장의 글귀 또한 완전히 달라졌다. 1위 삼겹살, 2위 김치찌개, 3위 짜장면…. 바로 전까지 먹고 싶은 음식 순위를 매기고 있었는데 어느새 주제는 ‘여행의 의미’라는 몹시도 심오한 것으로 바뀌었다. 내친김에 시 한편 읊조릴 태세였다. 소녀의 감성 담뿍 담아서 말이다.

 

▲ 잔시역



<내가 이 여행에 나섰던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
여행하는 목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는 쉼을 위해, 또 다른 이는 배움을 위해 각기 다른 목적을 품고 낯선 곳에 발을 디딘다.
사람마다 혹은 때마다 여행하는 목적이야 다를 수 있지만 일찍이 ‘여행’이라는 시작점에 있어 한 가지만은 꼭 해야 한다고 여겨왔다. 내가 발을 디딜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공부 말이다. 언어까지는 익히지 못하더라도 역사, 종교, 문화 등에 대해서는 몹시 간략하게나마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사물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고 문화에 쉽게 흡수될 수 있으며 최소한의 매너를 지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도에 오기 전에도 몹시 미약하게나마 전통과 문화에 관하여 훑었다. 관념에 거슬리는 행동과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그런 약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당하는 쪽은 항상 이방인인 나였지만.) 여행에 앞서 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마음을 열지 않으면 이 여행이 굉장히 피곤해지리라는 노파심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진짜 이해 안 되는 상황과 사람들을 만나도 “내가 사는 곳과 모든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성인군자 같은 마음을 집어 먹기도 했다. 물론 그게 쉽지 않아서, 불같은 성격이 툭툭 불거져 나오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잔시 기차에 오르기 하루 전, 아그라에서 만났던 숀이라는 서양 사람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참 이해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숙소 옥상에 앉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때였다. ‘까르르’ 웃고 떠들면서도 때때로 진지하게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숀이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장면들을 참 많이 봐. 꼭 애니멀(동물) 같다니까. 개고기 먹는 나라도 꽤 있잖아. 내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깔보는 소리가 점점 듣기 거북했다. 말 사이사이에서 서양?백인 우월주의가 피어올랐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배타적이며, 이질적인 행동을 폄하하는 편협한 사고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긴 왜 온 거지?’ 더욱 놀라운 것은 인도 배낭여행이 벌써 3번째란 설명이었다.
그를 보면서 느꼈다. 여행지에 대한 학습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만함과 오만함을 내려놓는 마음가짐이라는 걸. 고백컨대 나 역시 그런 인간은 못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정해야 이해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사진 속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버스를 타고 내리 7시간을 달렸다. 엉덩이가 닳아 없어지는 것 같은 진귀한 경험을 했던 그 순간, 힘들었으나 기억을 곱씹을 때마다 그렇게도 웃음이 터져나올 수가 없다.



상념들로 가득 채운 일기장을 곱게 접었다.

잔시 역에서 내렸다. 이제부터는 버스다. 일곱 시간을 쉼 없이 달리는 덜컹 거리는 버스 안에서 분 단위로 앉은 자리 높이뛰기를 해댔다. 엉덩이에 혹이 하나 둘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좀 더 과장하자면 시간이 지날수록 엉덩이가 닳고 닳아 쪼그라들다 못해 희미하게 사라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흐흐

조그만 상자 안에서 좌우 위아래로 굴리는 주사위처럼 필자의 몸은 사정없이 이리 던져지고 저리 던져졌다. 점점 힘없는 찹쌀 반죽이 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생 고문이 따로 없었다.

가는 길에 시골 마을 같은 곳에서 기상천외한 화장실 하나를 발견했다. 천장도 없고 삼면으로 둘러싸인, 다시 말해 한 면이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 변기도 없고 배수 시설도 없었다. 굴곡 없이 일직선으로 펼쳐진 평평한 땅바닥 위에 대충 자리 잡고 앉아 일을 보는 곳이었다. 남의 것이 안 묻게 조심조심 피해서 일을 보는 구조였다. 일 본 뒤에는 뒷정리 없이 조용히 빠져나오면 되었다. 필자가 당도했을 때에는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차고 넘쳤다. 바닥 곳곳에 듬성듬성 ‘묵은 변’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헉. 거, 거, 거름 때문인가 봐.’

 

▲ 기차 창문 안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자,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빛이란 내게 그런 존재이다.



그곳에 차마 엉덩이를 들이밀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 그래.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어. 그, 그럼. 난 괜찮아.’
7시간을 달려 드디어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아그라에서 만났던 한국 사람이 추천해준 숙소로 향했다. 그들이 알려준 R호텔(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별 몇 개 달린 그런 ‘호텔’이 결코 아닌)은 아그라에서 묵었던 숙소에 비해 환상적인 청결 수준을 자랑했다.

대충 짐을 풀고 저녁밥을 먹기 위해 옥상으로 향했다.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면서 찹쌀 반죽처럼 축 늘어진 몸뚱이에 뼈대를 만들고 살을 덧대며 탄력을 불어 넣었다. 그때 종업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 들었다. 인도에서 유행하는 사기수법에 관한 것이었다. 필자는 일기장에 이 부분을 ‘먹은 것이 역류할 만큼 충격적인 얘기’라고 적었다. 카주라호 여행을 하던 때는 벌써 수 년 전이었고 배낭여행의 시작 즈음이었기 때문에 몹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지금이야 그와 같은 뻔 한 사기에 속진 않겠지만 말이다.

 

▲ 무턱대고 다가와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하던 적극적인 그녀들. 환하게 웃다가도 카메라 셔터만 누르려면 어느새 `얼음`이 되던 그녀들이었다. ^^



종업원의 말에 따르면 사기꾼들은 보통 “아름답다”, “좋아 한다” 등등의 달콤한 말로 상대의 환심을 산다. 낯선 사람이 던지는 이런 말에 누가 속을까 싶지만, 분위기에 무르익다보면 저도 모르게 쉽게 빠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속이려는 꿍꿍이로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전문가들이 아니던가!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타지에서의 환대와 환심을 의심하다가도 ‘설마’ 하는 마음은 곧 ‘이 사람만은 아니다’는 확신으로 바뀌고는 한다. 정말이지 이 때문에 혼쭐난 사람들 여럿 봤다. 여행 중에도, 여행을 마친 뒤에도, 정 많고 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에 낭패를 경험했다는 이야기는 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직간접 적으로 어마어마하게 듣고는 했다. 필자도 여행 초반 “너 참 예쁘다”는 거짓말 작전에 살짝 ‘정신 줄’을 놓을 뻔 했다. “아, 내가 여기서는 진짜 괜찮은 얼굴인가 보다”는 착각을 품었던 것이다. 물론 여행 며칠 만에 이것은 ‘순 거짓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 후로는 콧방귀 뀌고 말 정도로 우스운 얘기일 뿐이었다. (카주라호 2편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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