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태국에서 살아보기, 사랑하기-10회

콰이강이 흘러가는 곳

학교에서 이번에 정년퇴임하시는 두 분의 선생님을 축하드릴 겸 여행을 가자고 했다. 물론 어머니 나이 정도의 어른들과 관광버스를 타고 떠나는 아주 전형적인 코스 여행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평소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으나 굳이 찾아온 호의를 또 거절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나를 동료로 여기고 함께 해주는 것이니까. 내가 터전으로 살아가는 곳 바깥에서, 생김새와 쓰는 말이 확연히 다른 사람들과 일자리로 하나의 소속을 느낀다는 것은 참 드문 경험임에 틀림없다.

이곳 사람들은 여행을 갈 때 자정 너머에 출발하곤 하는데, 차에서 밤새 몸을 굽히며 잠에 들었다가 숙소에 들르지도 않고 새벽부터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버스에 올라 가로등의 불을 세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을 것이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바깥은 하얗게 해가 오르고 있었고, 아침 공기가 서늘한 휴게소 한복판에 차는 멈춰 서 있었다. 그곳에서 세면을 마치고 잠깐 숨을 돌린 다음, 다시 차에 올라 한참을 이동해 원래의 목적지인 칸차나부리라는 곳으로 옮겨갔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왔던 장소가 바로 칸차나부리.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전쟁포로들을 시켜 건설한 철교가 이곳에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강가를 따라 걷다보면 영화 속에 나왔던 포로들의 휘파람 노래가 귓가를 스치는 것만 같다. 그러다가 다시 사람들이 한가득인 주변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금방 그런 상상들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버리곤 한다. 강물은 생각들을 담고 쉽고 빠르게 자리를 뜬다. 그래서 많은 미련이 없고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다볼 수 있는 것 역시 강물이기도 하다.

 

 

숙소도 콰이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땅의 모든 강이 그렇듯 흙이 가득 섞여 짙은 갈색을 띤 물줄기가 숙소를 휘감아 흐르고 있었다. 강변의 오두막처럼 지어진 숙소는 풀로 엮은 지붕을 얹고 있어, 아직 이곳에는 예전의 시간들이 흐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아직 시멘트와 마천루가 들어서지 못한 곳인 양. 하지만 바로 뒤를 돌아보면 회색의 건물들과 누군가의 손으로 가꾸어 놓은 정원들이 강물과는 정 반대로 가만히 가라앉아 있던 것이다. 강 건너 나무와 풀들은 손짓하는데, 사람이 지어놓은 그 무엇 하나도 답해줄 수 없었다.

밤이 깊어 방에 들어가려는데, 선생 한 분이 나를 붙잡는다. 남자 선생들끼리 자리를 만들었으니 나보고도 같이 가지 않겠냐는 물음이었다.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술자리를 가지는 것은 아직 이 땅에서 아무렇지 않게 허락되는 따위의 것은 아니었다. 일단 술이 있다니 좋아서 선생을 따라가 보니 벌써 맥주며 브랜디며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교감 선생이 내 술잔을 채워주면서 반겨주는데, 내가 드디어 이 사람들의 ‘무리’에 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술을 받아 넘기고 실없는 농담을 손짓발짓으로 쳐가면서, 조금 오른 취기에 카메룬에서 보낸 자신의 불행을 털어놓던 클로드 선생을 보면서, 이 땅에 비로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갑게 강물이 숙소 밑을 훑는 소리. 나는 이곳의 시간 속에 흘러가고, 사람 속에 흘러가고, 그리고 내가 멀리서 살아오던 삶이 이곳에서 하나의 시멘트로 굳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소속감과 한계 사이의 묘한 감정들이 일렁이는 강물.

 

 

밤이 더 늦어서야 자리를 파하고, 방에 들어가 눈을 붙인지 얼마 되지 않아 새벽 일찍 잠이 깨버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둠 속에 강의 소리는 짙어 온다. 숙소 뒤 쪽의 둔덕으로 올라가 해를 기다렸다. 푸른 밀림 저 편으로 해가 오르자 강물은 암흑에서 밝은 갈색으로 깨어났다. 밀림은 해를 맞이하러 바람에 몸을 움직였다. 둔덕에 앉아 있는 내 곁으로는 새벽잠 없는 개 한 마리가 따라와 앉았다. 그리고 강물 저 편에는 코끼리 세 마리가 풀숲 사이로 몸을 드러내더니 강가에서 목욕을 한다. 그림 같은 일들, 그림 같은 모습들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이 땅에서 산다. 이 땅에서 살면서도 저것들에 낯설어하는 이유는 이 땅에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오래된 유적이 말해주는 것

칸차나부리에서 한참 움직이던 버스가 한 유적지 앞에 멈춰 섰다. 커다란 들판처럼 한적한 곳이 어떤 유적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고 했다. 버스에서 당장 내리고 보니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무엇은 없어 주변 선생에게 물어보니 조금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역사가 새겨져 있기보단, 그저 잘 정리된 공원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유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의 풍채는 금방 드러났다. 오랜 역사 속에 지어진 요새와 사원, 높게 쌓아 올린 계단과 제단들. 지금은 풀로 뒤덮인 들판에 놓인 하나의 공허한 터에 불과하지만, 원래 이곳에는 큰 규모의 도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서있던 곳은 그 도시로 입장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던 것은,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종류의 문을 발견해 본 적이 없다. 무겁고 거친 돌을 투박하게 깎아 올린 건축물 하나하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돌에 난 금과 계단에 피어난 잡초까지도 이렇게 경이로울 수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어디든 유적을 돌아보는 것을 좋아했다. 낡고 허전한 그곳들은 방문한 이들에게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유적들로부터 갑작스럽게 찾아드는 이야기는, 나의 머무름이 얼마나 짧게 스쳐가고 좁은 벽면에 막혀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웅장하다는 것은 그렇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심지어 만나보지 못하는지. 그리고 나 스스로가 얼마큼 크던 작던 간에 그릴 수 있는 한계가 나를 얼마나 괴롭히고 마는지. 그래서 그 공허한 유적들로부터 장대함을 느끼고, 나는 작아진다.

 

 

그런 감정들을 좋다고 느끼는 것은 결국 내가 방향하고 있던 지점이 그릇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지만 결코 나의 그림이 가소로울 수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되는 것이다. 낡은 시간들 속에서 강물 같은 풍파를 겪어가면서도 버텨가는 웅장함이 있어서 나는 다시 이겨낼 힘을 얻는 것이다. 물살을 거스르는 것만큼 스릴 있는 것도 없다. 결국 그 정점에 서서 나의 유적이 또 낡은 시간을 견뎌낼 때, 나는 거센 물살을 가만히 내려다볼 여유도 내 안에 두게 된다.

이것들은 꽤나 어려운 가르침이다. 유적 안으로 들어서자 금칠이 벗겨진 동상 하나가 잘린 팔로 나를 맞이한다. 이제야 왔냐는 듯이. 이제야 조금씩 어려운 생각들을 받아들이려 하냐는 듯이. <대학생>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