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록 여행스케치> 동화 같은 임실의 늦겨울 풍경화

 

긴긴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새해 첫날을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소식을 알리는 입춘이 지났다. 시간은 이렇게 빨리 흘러간다. 막바지 겨울, 2월에 찾아가는 전북 임실은 전라도 내륙의 중심지로 이웃한 전주와 함께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동화 같은 강, 산, 들이 손짓하는 임실로 가족여행을 떠나보자.

 

▲ 운무에 휩싸인 옥정호

철따라 모습을 바꾸는 그림 같은 호수

첫 순례지는 섬진강의 젖줄인 옥정호(玉井湖). 운암저수지, 섬진저수지, 산내저수지로도 불리는 옥정호는 철따라 그 모습을 바꾼다.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섬진강 다목적 댐을 만들면서 생긴 거대한 인공호수는 마치 바다처럼 광활하고 환상적이다. 군데군데 얼어붙은 모습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길손을 어루만진다. 이른 아침, 호수에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는 날이면 선경(仙境)을 연출한다니 작심하고 한번쯤 가볼 일이다.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운암면 운암리와 마암리를 연결하는 749번 지방도로는 옥정호를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는 드라이브코스 1번지다. 호수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그 멋이 다른데 순환도로 중간쯤에 솟은 국사봉(475m)에 오르면 호수 한가운데에 홀로 떠 있는 붕어섬을 비롯해 옥정호의 다양한 비경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몽환적 풍경에 마음이 울렁거린다.

 

▲ 구담마을 앞으로 흘러가는 섬진강

 

‘외앗날’로도 불리는 붕어섬은 이름 그대로 붕어가 누워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섬마을로 현재 서너 가구가 남아 농사를 짓고 있다. 이 섬으로 가려면 순환도로 아래쪽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옥정호는 사진작가들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특히 호수를 자욱이 덮은 물안개는 그 어떤 비경에 뒤지지 않는다. 아쉽다면 그런 신비함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국사봉 산행 기점은 운암면 입안리의 국사봉휴게소. 휴게소 위쪽 길로 들어서면 시멘트와 나무로 된 약 230여 개의 계단을 오르게 되는데, 왼쪽으로 송신탑이 보이고 그 아래 오른쪽으로 구절양장으로 뻗은 호반도로가 손짓한다. 여기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국사봉 정상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쾌한 호수는 힘들게 올라온 이들의 몸과 마음을 후련하게 씻어준다.

국사봉에서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30여 분 걸어 올라가면 오봉산(513.2m) 정상. 여기서 보는 옥정호는 백두산의 천지를 연상케 한다. 오봉산은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 운암면 용운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오봉산과 국사봉은 일출이 아름다운 산으로도 손꼽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 사선대 공원을 굽어보는 운서정

네 신선이 놀았다는 사선대

옥정호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인 섬진강 상류 오원천변(임실군 덕천리)에는 네 신선이 놀았다는 사선대가 있다. 옥정호와 함께 임실을 대표하는 명승지이다. 여기서 사선대에 얽힌 유래를 잠깐 살펴보자.

옛날 진안땅 마이산의 두 신선과 임실땅 운수산의 두 신선이 이곳의 경치에 반해 함께 모여 놀았다. 그때 주위에서 맴돌던 까마귀떼도 날아와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기를 며칠째, 하늘에서 느닷없이 네 선녀가 내려와 까마귀떼와 놀던 네 신선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사선대’는 여기서 비롯된 이름이며 그 앞으로 흐르는 강도 오원강(烏院江)으로 부르고 있다.

 

▲ 사선대 조각공원

 

사선대 주변은 기암절벽이 에워싸고 있고 사선대 위쪽에는 운서정(雲棲亭)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서 있다. 운서정은 1928년 일제시대 대부호였던 김양근의 아들이 부친을 기리기 위해 6년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일제 때 각지의 우국지사들이 모여 망국의 한을 달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던 곳이라고도 한다. 운서정과 성미산성을 잇는 등산로는 호젓해서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사선대와 아득한 겨울 평야가 고즈넉하게 다가온다. 국내외 조각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조각공원도 볼만하다.

 

▲ 성수산자연휴양림의 숲길

왕건의 자취가 어린 명산

임실엔 몇몇 산이 어우러져 있지만 성수산은 고려와 조선조의 건국 설화가 서린 명산이다. 성수산(聖壽山)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산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임실군지와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풍수지리에 밝은 도선국사가 성수산을 둘러보고 천자봉조지상(天子奉朝地像), 즉 임금을 맞이할 성지로 이보다 좋을 수 없음을 알고 왕건에게 보고하니, 이 말을 들은 왕건이 이 산에 파묻혀 고려 건국의 큰뜻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권고로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섬멸하고 돌아오던 길에 성수산에 들러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 성수산휴양림의 편백나무숲

 

산 입구에는 거봉 김한태 옹이 가꾼, 편백나무와 낙엽송 등이 우거진 성수산자연휴양림( www.sungsusan.co.kr)이 있다. 나무 할아버지로 유명한 김한태 옹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 휴양림을 끼고 있는 계곡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아 원시 상태를 보존하고 있다. 콘도 형식의 통나무집과 편백나무들이 우거진 삼림욕장을 갖추고 있어 조용히 머리를 식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 오수의견공원에 있는 의견 조각상

목숨을 구한 의견(義犬)

오수천을 끼고 있는 오수면은 술 취한 주인을 불 속에서 구했다는 의견(義犬)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다. 먼 옛날 임실에 살던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개 한 마리를 길렀다. 총명한 개는 주인을 늘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다 산불이 난 것도 모른 채 풀밭에서 그만 잠이 들었다. 맹렬히 타오르던 불은 김씨 주변을 활활 태우며 계속 번져나갔다. 주인의 위기를 직감한 개는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에 물을 적셔 주인 곁으로 점점 다가오는 불길을 막았다. 그렇게 하기를 수십 차례, 불길은 점차 사그라졌고 개는 그만 기진맥진해 죽고 말았다. 술에서 깨어난 주인은 자초지종을 알고 개를 땅에 묻고 지팡이를 꽂아 놓았는데 오수(獒樹)라는 지명은 죽은 개(獒)의 무덤에 꽂은 지팡이가 큰 나무(樹)로 자란 데서 비롯되었다. 이 이야기는 1230년 고려시대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 실려 있다.

 

▲ 오수마을에 있는 의견상

 

아쉽게도 지금 오수개는 없다. 이 설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으며 오수개의 무덤 옆에 세워진 오수의견비만이 그 때의 상황을 전해줄 뿐이다. 오수개를 기리기 위해 만든 오수의견공원에는 세계 각국의 의견 동상, 의견비 등 오수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시설을 꾸며놓았다.

 

 

▲ 치즈테마파크에 펼쳐진 초지
▲ 치즈테마파크에 있는 치즈관

가족과 함께 즐기는 치즈 체험

임실은 치즈의 고장이다. 크고 작은 치즈농장들이 있는 치즈마을과 유럽풍으로 지은 치즈테마파크(성수면 도인리)는 임실치즈를 알리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임실치즈는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가 국내 최초로 개발 보급하면서 한국 치즈의 원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선한 원유로 만든 임실치즈는 맛이 고소해 어린이와 노약자의 영양 간식으로 아주 좋다. 요구르트, 피자치즈, 슬라이스치즈, 포션치즈 등을 선보이고 있다. 치즈마을과 치즈테마파크에서는 치즈(피자) 만들기를 비롯해 젖소 우유주기, 산양유 짜기, 산양 먹이주기, 경운기 타기, 초지 썰매타기, 천연비누 만들기, 향초 만들기, 새끼 꼬기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 치즈마을 목장에서 자라는 산양
▲ 치즈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치즈테마파크

 

치즈테마파크에 마련된 치즈캐슬에서는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치즈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치즈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치즈마을에 마련된 홍보관에 가면 임실치즈 역사와 변천사 등을 자세하게 훑어볼 수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당일 또는 1박2일로 진행되며 치즈마을에서 운영하는 펜션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체험 스케줄은 오전(10시30분부터), 오후(13시30분부터) 정규체험 시간 이외에 사전협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다. 임실치즈테마파크: www.cheesepark.kr, 063-643-2300, 3400

 

 

▲ 섬진강을 앞에 둔 구담마을
▲ 천담마을에 춘설이 내려앉았다.

하늘이 내린 아름다운 마을

임실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려면 717번 지방도를 타게 되는데 순창땅 직전에 천담교라는 작은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T자로 길이 갈리는데 강을 끼고 왼편으로 가면 구담마을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가면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나고 자란 진뫼마을에 닿는다. 두 마을 모두 덕치면 천담마을에 속하지만 중간에 야트막한 산이 있어 둘로 나뉘었다.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뫼마을과 천담분교를 잇는 4㎞ 거리는 주말이면 알음알음 찾아온 여행객들로 제법 붐빈다. 덕치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김용택 선생은 몇 년 전 정년퇴직해 지금은 강연과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다.

 

▲ 김용택 시인 생가
▲ 천담마을에 서 있는 김용택 시비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배경이 되었던 구담마을에도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고요한 산 속 마을 앞으로는 섬진강이 도란도란 흘러가는데 사철 마르지 않는 이 강은 지리산의 맑은 물과 보성강을 휘감고 하동포구를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간다. 섬진강 줄기가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마을회관 오른쪽 당숲 언덕은 전망대 구실을 톡톡히 한다. 커다란 느티나무 몇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고 저녁 무렵이면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가 그리움을 자아낸다. 구담마을: http://www.gudam.kr

▲ 진뫼마을 앞의 섬진강
▲ 김용택 시인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덕치초등학교

 

 

여행 팁(지역번호 063)

◆가는 길=옥정호는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이나 서전주 나들목으로 나와 국도 27호선을 타고 간다. 전주에서 구이를 거쳐 옥정호까지 가는 노선버스 운행, 30분 간격. 임실이나 강진, 관촌터미널에서 용운, 운암행 버스를 타면 국사봉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사선대는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전주시내에서 남원 방면 17번 국도를 타고 직진-오원교 건너면 오른쪽으로 사선대 가는 샛길이 나온다. 전주에서 관촌행 시내버스 이용, 종점에서 하차/ 15분 간격 운행/30분 소요. 임실에서 관촌행 군내버스 이용/ 하루 41회 운행. 임실에서 717번 지방도를 타고 순창 방향으로 가면 천담마을에 닿는다. 호남고속도로 전주 나들목-남원 방면 26번국도-17번국도-임실읍-치즈마을.

◆맛집=사선대, 옥정호(섬진강댐) 주변에 음식점들이 더러 있다. 사선대가든(644-9070), 강나루횟집(221-6274), 옥정호산장(222-6170), 섬진강가든(224-6534) 등. 임실시장 부근의 도봉집(643-2980)은 순대국밥이 유명하다. 임실치즈테마파크 내 레스토랑에서 치즈와 신선한 야채로 맛을 낸 다양한 음식(스파게티, 수제돈가스, 피자 등)을 맛볼 수 있다.

◆숙박=임실읍내에 임실힐링펜션(643-5987), 귀빈모텔(644-2277) 등이 있으며 옥정호 주변에 있는 국사봉모텔(643-0440), 리베라모텔(222-5023), 허니문모텔(221-8892), 달빛머문펜션(222-6276) 등도 괜찮다. 성수산자연휴양림(642-9456)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 예약 필수. 임실군 관광안내 (063)640-2341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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