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현명한 사람은 밤하늘의 별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예감한다지만, 나는 국가와 민족은커녕 나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채로 그저 밤마다 벌거벗은 마음으로 별빛이 쏟아지는 마당을 서성거리며 미친 듯이 중얼거리기나 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실제로 미쳐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가 들어봐도 나는 확실히 미친 것 같았다. 이를테면 이런 소리들이다.

얼마나 더 못된 짓을 해야만 너희들의 양심에 숭숭 돋아난 시커먼 털이 빠져나갈 수 있겠느냐. 얼마나 더 악귀 짓을 해야만 너희들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겠느냐. 양파는 벗기면 벗길수록 아담하고 매끈하게 보석처럼 빛을 내더라만 너희들은 벗기면 벗길수록 십 년 전의 아니 백 년 전의 똥찌꺼기까지 죄다 드러나는 참으로 희귀한 똥자루로구나. 얼마나 허겁지겁 처먹어댔으면 소화도 못 시킨 것들이 그렇게도 많이 드러날까. 그렇게 살아야만 쓰겠느냐?

 

▲ 눈 내리던 날의 마당

 

너희들의 머리통은 육천만 년 전의 삼엽충이나 아메바처럼 구조가 지극히 단순해서 아니다, 모른다, 딱 이 두 마디만 내뱉을 수 있나 보구나. 아니다, 모른다가 아니면 말을 못하는 너희들의 간을 꺼내서 배가 고파 이리로 저리로 몰려다니는 겨울 한철 까치와 까마귀들에게 먹이로 던져주고 싶다만 까치와 까마귀들이 너희들의 그 추접한 간을 먹어주기나 하려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야만 쓰겠느냐?

이런 미치광이 같은 소리나 중얼거리는 나는 대체 누구인가. 어디에 서 있는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인가. 예전에는 제법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었지만,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슴에 울화나 가득 키우고 있으니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꽉 막힌 세월을 건너던 어느 하루 그만 탁 걸려들고 말았다. 허리가 작신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런 수준으로 망가진 탓에 걸을 수도 없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서서 걸을 수도 없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신세가 되고 보니 그 악귀 같은 인간들에 대한 욕지거리가 뚝 끊어졌다. 너 자신을 돌아보라 하는, 이른바 반성의 시간이 온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좋은 생각만 하며 산다 해도 실제로 사는 날수는 사십 년이 채 안 된다고 충고하는 ‘세월가’ 노래도 있건만은, 그런데 나는 그렇게도 지저분한 욕지거리만 입에 올리고 있었으니 허리가 작신 부러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업보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입은 아직 살아 있어서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나는 가끔 알몸으로 마당에 나가 있는 짓을 즐긴다. 깜빡이는 별들을 보면서, 구름 사이로 얼핏 보였다가 사라지고 또 보이는 달을 보면서 심호흡을 하고 있노라면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이랄까 착각이랄까 하여튼 그런 어떤 신선한 감각 같은 것을 즐긴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도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취미이고, 시골에서도 암막커튼 같은 것이 이웃의 시선을 차단해주지 않으면 함부로 즐기기 어려운 취미이다.

암막커튼 효과를 내는 것으로는 콘크리트 담장을 우선 꼽아야겠지만, 그것은 너무 위압적이면서 갑갑하고 이웃과의 단절감 또한 깊어서 곤란하다. 반면 살아 있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생울타리는 나와 이웃의 경계를 확실하게 해주면서도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개나 고양이들은 아무 데로나 구멍을 내놓고 마음껏 왕래할 수 있고, 사람 또한 언제라도 필요하다면 두 팔을 쭉 뻗어 나무들을 젖히고 얼굴을 내밀어보는 게 가능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냥 지나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약간의 수고를 거치면 적어도 한 뼘 정도는 마당을 내다볼 수 있는 것이 생울타리의 좋은 점이라는 것이다.

 

▲ 벌거벗고 산책하게 딱 좋은 마당

 

우리 집의 생울타리는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시누대와 노간주나무와 동백 그리고 무궁화, 산목련, 장미, 단풍 등등으로 구성되었고, 그 아래쪽의 작은 틈에서는 더덕이며 도라지, 하수오 같은 뿌리식물들이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사철 푸른 나무와 가을이면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관목들이 뒤섞인 것은 물론이고, 꽃이 있는 나무와 없는 나무가 또한 뒤섞여 있는 까닭에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지럽다고 흉을 보기도 하지만, 잡동사니농법을 창안했다고 큰소리 땅땅 치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워낙 다양한 품종들이 빽빽하게 늘어서서 경쟁을 하다 보니 울타리 자체가 매우 뚱뚱해졌다. 이 뚱뚱한 생울타리가 못마땅해서 틈만 나면 전지가위를 들고 잘라대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집 뒤에 새로 생긴 교회의 목사님으로, 이 양반은 잡풀이 귀찮다고 교회 주변 땅을 죄다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등 가능한 한 모든 사물을 매끈하고 반듯하게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각종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즐기는 나와 반듯하고 매끈한 풍경을 좋아하는 목사님이 아래윗집에 살다 보니 이웃사촌으로서의 정감 같은 것은 당연하게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쩌다 마주치면 그저 가볍게 목례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문제는 마을에서 교회로 이어지는 도로 옆에 우리 집의 생울타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교회로 들어갈 때도 우리 집의 생울타리를 거쳐야 하고, 교회에서 나갈 때도 우리 집의 생울타리를 지나야 한다.

멋대로 자라나 있는 우리 집의 생울타리가 못마땅해서 틈만 나면 전지가위를 들고 내려오던 목사님이 어느 하루 전격적인 제안을 해 왔다. 모든 비용은 교회 경비로 처리한다고, 정원사를 불러다가 생울타리를 한일자로 반듯하게 정리하자는 것이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나는 즉각 고개를 흔들었지만,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혼자 나름의 연구를 꾸준히 해 오고 있었던 것인지 일 년쯤 지난 뒤의 어느 하루 갑자기 지적도를 들고 와서 흔들어대었다.

너희 집의 생울타리가 최소한 삼십 센티미터 이상 공용도로를 침범해 있다,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이냐, 하고 일단 문제제기를 한 목사님께서는 미리 준비한 해법까지 내놓고 있었다. 생나무를 모두 뽑아내고 그 자리에 최신 유행의 깔끔한 펜스를 설치하자. 그러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가 보기에 좋지 않겠는가. 그 모든 비용을 교회의 이름으로 교회에서 부담하겠다.

 

▲ 8년생 주목들

 

목사님의 그런 일방적인 제안이 내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어서, 나는 당연히 거부를 했지만, 그 뒤로도 계속되는 목사님의 집요한 회유 공략에 지친 나는 이 년여 만에 그만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목사님은 신의 이름으로, 그러니까 종교라고 하는 공익적인 함의가 다분한 것으로 여겨지는 명분을 내세워서 집요하게 공략을 하는 반면 나는 다만 개인의 취미 차원에서 생울타리를 고집하는 것이고 보니 결론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던 셈이다.

울며 겨자 먹기라고 했던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생울타리를 걷어내고 펜스라는 것을 설치해놓고 보니 펜스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하나까지도 다 보인다. 밖에서는 물론 내가 움직이는 발걸음 하나까지도 다 보일 것이다. 초목이 무성한 여름에는 그나마 각종 나뭇잎들이 가려주기라도 하지만, 가을 이후부터는 완전히 허허벌판 꼴이 돼버리는 것이어서, 달밤에 알몸으로 마당을 산책하기는커녕 대낮에 빨래거리 하나를 들고 나오는데도 옷을 갖춰 입어야 하는 등 이만저만한 불편이 아니었다.

고민에 궁리를 거듭하던 끝에 펜스 안쪽으로 새로운 나무를 심어서 새로운 생울타리를 조성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마침 집안에 생울타리 용으로 적합한 나무도 사십여 그루쯤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던 해에 기념으로 사다가 심은 주목이었다. 키가 채 이십 센티미터도 안 되는 주목을 더도 덜도 아닌 딱 오십 그루 사다가 심었는데 팔 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죽은 것은 죽고 산 것은 어느새 이 미터가 넘게 자라나 있었다.

키가 이 미터도 넘는 주목을 옮겨 심자고 하니 생각으로는 간단했지만 실제 작업은 당연히 중노동이었다. 하루에 두 그루씩만 옮겨심기로 하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첫날은 그런 대로 잘되었다. 그리고 둘째 날, 그날이 하필이면 탐욕의 화신 최순실의 삐끼 노릇을 그동안 충실하고 왕성하게 잘도 해치워 왔던 대통령 박근혜가 사드 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등 미국 국방장관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는 뉴스가 떴던 날이었다.

자진해서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했던 사람이 특검은 싹 무시하면서 사드가 어쩌고 등등 미국의 강아지 노릇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그 속내는 무엇인가. 미국이 자기를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최후의 발악인가. 아니면 국가 정책 모두를 자신의 사적 이익과 연동시켜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최순실이가 사드와도 관련이 있는 까닭에 마지막으로 그 일을 성사시켜주자는 것인가.

그런저런 추리를 해보고 있자니 그렇게도 나 자신이 비참하고 초라할 수가 없었다. 슬픔과 분통이 뒤섞여서 마구 터지는 그런 날에는 일을 해야 한다. 온 몸의 근육이 펄쩍펄쩍 뛸 때까지, 땀으로 목욕을 할 때까지 노동을 하다 보면 잠시나마 그런 비참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날은 두 그루가 아니라 열 그루, 아니 스무 그루쯤 나무를 옮겨심기로 작정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 정말 재미없는 현대식 펜스

 

키가 이 미터도 넘는 주목의 뿌리를 모두 캐낼 수는 없어서 잔뿌리만 살리고 아주 굵은 뿌리는 잘라내기로 했다. 그렇다고 흙 속에서 톱질을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삽날로 콱콱 찍어서 잘라내고자 콱콱 찍어대고 있는데 문득, 불현 듯이, 뉴스 화면에서 지겹도록 보아온 낯익은 얼굴 둘이 나란히 서서 킥킥거리고 웃어댄다. 웃어대면서 비아냥대는 소리로 나를 비웃기까지 한다.

“겨우 삽질밖에 못하는 짜식이, 삽질밖에는 할 줄 하는 게 없는 놈이 감히 우리를 능멸해?”

그 순간 나는 긴 칼로 대나무를 일격에 쪼개듯이, 도끼를 휘둘러서 참나무 장작을 뽀개듯이 그야말로 있는 힘껏 삽날을 휘둘렀다. 내 키보다도 높이 삽자루를 쳐들었다가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처박았다. 죽어라, 죽어라, 아마도 그런 심사였을 것이다. 죽어서 다시는 태어나지 마라. 풀로도 태어나지 말고 나무로도 태어나지 말고 바퀴벌레로도 태어나지 마라. 그렇게 잇달라 연거푸 찍어대다가 어느 순간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서서 걷기도 어렵고 반듯한 자세로는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신세가 돼 있었다. 모로 누운 채 한나절을 좋게 보내고 안 되겠다 싶어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면소재지에 있는 의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의사 선생님 왈 별 것 아니란다. 허리가 잠시 놀란 것일 뿐이라고, 주사 한 대 맞고 물리치료 며칠 받고 나면 거뜬해진다는 것이다. 헛 참 내 이게 무슨 꼴이람, 속으로 투덜거리며 물리치료실로 들어서는데 누군가 꽥꽥 소리를 질러댄다.

“아이 염병할 놈의 것, 내가 총이 있으면 말이여. 그냥 당장 올라가서 타당, 해버리겠는디 말이여 잉?”

 

▲ 시골 의원의 접수창구
▲ 시골 의원의 물리치료실

 

그 남자도 아마 허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납작 엎드린 채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 그 남자의 허리를 물리치료사가 지압을 하듯이 만져주며 그래요, 그래요, 하고 있었다. 총으로 누군가를 쏴 죽이고 싶다는 그의 말이 흥미로워서 나는 허리의 아픔조차도 잊고 그와 말을 섞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는 고추농사를 굉장히 많이 짓는 사람이었다. 봄이 오면 밭에 옮겨 심을 예정인 고추 모종이 지금 한참 비닐하우서 안에서 자라고 있는데 요 며칠 거센 바람 때문에 비닐 일부가 찢어져 버렸단다. 그래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하우스 위로 올라갔는데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작업이 거의 불가능했다. 손도 시리고 귀도 시리고 온 몸이 금방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서 비닐을 붙잡고 있자니 짜증이 와락 나고, 짜증이 나서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어느 순간 문득 대통령 그 인간의 얼굴이 떠올라 오더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쩔 겨를도 없이 에라잇 썅,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를 걷어찬 것 같은데 그의 몸뚱이는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서 아이고, 아이고,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미치고 환장하겠네. 앞으로 우리 길에서라도 마주치면 아는 체는 절대로 하지 맙시다.”

웃으면 안 될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웃은 죄를 짓고 나니 뭐라고든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기왕 얘기를 하자면 웃기는 얘기를 해야 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생면부지의 그와 나는 그날 한 시간 가까이나 눈물이 쏙 빠지도록 웃어버렸다. 웃고 나서 생각해보니 슬프다. 아이 썅, 이게 대체 뭔 꼴이란 말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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