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구혜리의 ‘생생 인턴 체험기’-6회

 

신입 인턴으로 입사 첫 날 ‘위클리서울’ 편집장님께 인턴기를 연재하겠노라 언약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지킬 수 없었다. 6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스쳐갔다. 그러나 결코 필자는 이 시간들이 짧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찰나의 그 나날 속에서조차 내 영혼의 일부 역시 동일한 속도로 육체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6개월가량의 긴 노고를 마쳤고, 사회를 배웠다. 사람을 배웠다. 돌이켜 인턴 여섯 달의 날들을 되짚고자 하면 당시의 부분적인 기쁨이나 부분적인 서러움들이 희석되어 버렸으나 이제와 그곳에서 나의, 수많은 현재 속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 속에 함께였던 나의 이야기를 써본다. 이번 이야기는 인턴 동료로 만나 친구가 된 수연이와 떠난 일본 여행기다.

 

 

인턴 동료로 만난 수연은 어느새 회사 밖에서도 반갑게 맞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이나마 낯선 환경과 새로운 경험에서 한 번의 다툼도 없이 다녀온 친구와의 첫 여행에 무척 자부심을 느끼며… 그녀의 첫 월급날 우리는 함께 오키나와로 가는 항공권을 샀다.

친구 수연은 이 여행을 위해 무려 한 달을 운전면허 시험에 매달렸지만, 안타깝게도 도로주행에서 두 차례 낙방하여 필자 홀로 3일간의 운전수를 자처하여 좌충우돌 오키나와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시련 닥쳐오다

여행지 오키나와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내던 날, 우리는 생전 처음 에어비앤비를 썼다. 에어비앤비는 비교적 전문 숙박업체가 아닌 일반 가정집을 저렴한 가격에 렌트할 수 있는 새로운 숙박 공유 서비스다. 수연도 나도 친구와 해외여행은 물론 에어비앤비 사용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트콤이나 홈파티같은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집을 찾는 것부터 문제가 있었다. 만좌모에 츄라우미 수족관까지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이미 해는 저물어있었다. 날은 컴컴해졌는데 운전이 서툰 (하나는 아예 못하는) 두 학생이 탄 차에는 적막함이 흘렀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해준 대로 갔을 뿐인데, 이게 웬걸! 허허벌판 갈대밭 시골똥밭 한가운데 우리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비까지 내렸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후방에서 비치는 새빨간 불빛조차 너무 무서운데 호스트(집주인)는 연락조차 불통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지만 어렵사리 연결된 호스트의 도움으로 체크인을 마쳤다.

 

 

이 서러움은 도무지 배를 채우지 않고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었다. 수연과 나는 가디건 하나 걸친 채 빗속을 뚫고 나섰다. 마침 호스트가 3분 거리에 있는 이자카야를 추천해주었고 부푼 기대를 안고 바에 착석했다. 띄엄띄엄 메뉴를 읽어가며 스시 하나랑 돼지고기류 하나를 시켰는데 오징어 스시 8점이랑 삼겹살 4점이 나왔다. 이렇게 4만 원이 긁혔다.

맥주를 마시던 수연이 또로록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는데 미안하고 같이 속상한 기분이라 웃음을 참으며 같이 울었다. 수연은 파파고(통역 어플리케이션)를 거쳐 “편의점이 어디 있나요?”라고 울면서 일어를 말했는데 그 모습을 본 옆자리 일본인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인사했다. 그가 편의점을 알려주진 않았다. 우리는 다시 호스트의 도움을 얻어 편의점으로 달려갔고 만 원의 행복으로 주전부리를 양팔 가득 안고서야 배불리 평안한 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시 오키나와 사랑에 빠지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오키나와의 해변을 마주하고 있는 이 집은 전날 해프닝이 잊힐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생각해보면 수건이나 세면도구도 무한으로 제공해주고, 비오는 야밤에 픽업 서비스며 편의점도 데려다주고, 뜬금없지만 커다란 조개껍질로 장식된 바다색 욕조도 마음에 들었다. 몸을 담그고 생각하니 벌써 오키나와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옆방에는 한국인이 머물러 있었다는데, 홈파티는커녕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얼굴도 못보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선 모양이다. 우리도 하루밖에 남지 않은 오키나와를 좀 더 만끽해야지 싶어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늦은 시간까지 귀찮게 굴어 퉁명스러워진 호스트 부인에게도 미안하단 말 대신 집이 참 예쁘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한 곳은 아메리칸 빌리지로, 이름처럼 광활한 주차시설과 갖가지 쇼핑몰, 음식점, 놀이시설이 하나의 마을처럼 자리 잡은 곳이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아름다운 석양으로 유명한 선셋 비치와 붙어있는데 운이 좋으면 물고기 모양 구름과, 힙합을 틀어놓고 건물을 수리 중인 주인 곁에서 리듬을 타는 힙독(hip-dop)을 만날 수도 있겠다. 각지에서 놀러온 아이들이 파도결을 따라 뛰어노는 것을 보면서 혹은 그 아이들 중에 하나가 되어 뛰어 놀다보면 어느새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플 것이다. 그럼 다시 쇼핑몰로 돌아와 오직 오키나와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물인 자색고구마 타르트와 오키나와 소금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Blue seal’을 맛보라.

 

 

선셋 비치에서의 석양은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아메리칸 빌리지 내에 관람차를 타며 오키나와의 마지막 날 밤을 마무리하기엔 너무 서운할 것 같았다. 우린 아직 많이 젊고 앞으로 오키나와에 다시 올 기회도 많기에 그날을 위해 이거 하나쯤 남겨둬야지, 하고 말이다. 그땐 쓸쓸함보다 추억과 황홀한 마음이 가득하길 바라며.

렌터카 반납소로 돌아오자마자 긴장했던 마음이 덜컹 풀린 건지 드라이브 상태로 브레이크를 놓아 하마터면 자동차 앞코가 찌그러질 뻔 했다. 첫 해외 드라이브도, 친구와의 첫 해외여행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사실을 내심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돌아온 인천공항에서 수연을 부둥켜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는 아직 한참 어른아이인가보다.

 

 

누가 그랬던가, 진짜 친구는 여행을 다녀와 봐야 안다고. 루틴을 벗어난 여행 속에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는 피로감은 때로 무력감을 주기도 한다. 또 일상 속에서 가슴을 뚫고 사무치는 무력감을, 눈과 머리를 쿡쿡 찌르며 나를 흔드는 우울함의 무게란 어떠한가. 그럴 때면 주위를 돌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누군가의 한숨소리, 고요한 찡그림에 주목하여 ‘결국 저들도 나와 다르지 않지’ 위로해보지만 그것이 내 결핍을 해소해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금세 깨달아 버리고 만다. 하지만 또 그러다보면 고요를 깨뜨리는 웃음소리 사이로 나를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를 발견할 것이다. 기억하고 추억하며 어떻게든 헤쳐 나갈 길을 찾을 것이다. 우리가 여행 속에서 그러하였듯.

어른아이 성장기를 함께해준 수연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도 역시 흔들리고 부딪치는 ‘웃픈’해프닝을 공유할 친구로 함께할 수 있길. 또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애정하는 마음을 잘 알아주길. 또 어서 면허를 따서 네가 끄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떠날 수 있길! 당신과 함께여서 2016년이 또 2017년의 시작이 즐거웠다. 이미 너는 내게 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행의 끝은 어쩔 수 없이 늘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론 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어 설레기도 한다. 복귀한 일상에서도 다가올 새 여행의 계획도 내겐 늘 새 이야기의 지평이고 출발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인연을 맞이해 어떤 이야기를 쌓게 될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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