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수 에세이>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고

 

▲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스틸컷


1부. 혼자가 돼야만 할 필요성에 대해

혼자가 병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요즘,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남기는 감수성은 그런 혼자에 대한 고찰을 담아내고 있다. 고찰, 고민, 또는 고독이라는 것이 혼자가 향유하는 것이라면, 홍상수표 혼자는 어떤 식으로 영화에서 나타나고 있을까. 홍상수표 혼자는 영화 속에서 어떤 고찰과 고민, 그리고 고독을 향유하고 있을까.

먼저 그 배경은 왜 해변이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우리는 바라볼 수 있다. 밤에 치는 파도 소리. 그리고 모래사장과 그 위로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 주인공의 시선은 어디로까지 닿을까. 혼자인 그녀가 해변을 거니는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빈자리 때문이다. 혼자는 늘 빈자리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공허한 빈자리를 채우는 장소로서는 해변이 가장 적격이다. 밤의 해변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파도는 끊임없이 빈자리를 채운다. 그 소리는 주인공인 그녀를 채우고, 공허한 것을 더욱 공허하게, 짙어온 것을 더욱 짙고 바래가는 것을 더욱 바래지게 만든다.

왜 혼자여야만 하는가, 라니 그런 허무하고도 엉뚱한 질문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만약에 그 혼자여야 하는 이유가 우리 시대를 덮는 질병에 있다면. 한병철 교수가 쓴 ‘피로사회’라는 책이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살아가는 이 시대를 정신적 질병의 시대로 진단했듯이, 그 정신적 피로함과 막연한 불안함으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붙잡기 어려워하듯이. 혼자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일종의 파도처럼, 철썩철썩 세상을 채워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는 더 이상 흔하지 않은 상태가 아닌 것이다.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흔하고, 파도의 거품처럼 뚜렷하다. 현대를 진단하는 것에 있어서 혼자라는 키워드는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여야만 한다. 신경증적인 삶 속에서 혼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 없게끔 사람들의 삶은 변해버린 것이다. 결국 아주 독한 처방을 우리 사회의 진단은 견뎌내고 있다. 여럿이서는 도저히 안정을 취할 수 없는,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간의 가중, 그래서 혼자의 상태는 더욱 편안한 것처럼 되고, 나 스스로를 침착하고 가라앉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하나의 해방구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사랑이란 얼마나 신경질적인 것이던가. 영화 전체에서 그녀는 치열하게 사랑에 대한 갈등과 애증, 들끓는 분노와 격정으로 가득하다. 그런 신경질적인 그녀를 해방시켜주는 시간은 오직 혼자인 시간이다. 그 누구와 함께 있더라도 가라앉을 수 없는 그녀의 상태에서 혼자의 시간은 밤의 해변처럼, 그녀를 침잠시키는 어떤 힘이 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계속되는 혼자의 시간은, 또 다른 사랑을 갈증하게 되니. 사랑은 혼자 있길 바라게끔 하고, 혼자 있을 때면 다시 사랑을 갈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누군가 그녀 자신을 납치해 가줬으면 하는 무의식이 스크린에 담긴다. 얼굴도 모르는, 모자를 눌러 쓰고, 카메라에는 멀리서 또는 뒷모습만 잡히곤 했던 그 누군가,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누군가, 주인공과 그 친한 언니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얼른 도망가자고 하던 그 누군가에 의해, 모순적이게도 그런 사람에 의해서 그녀는 혼자의 시간을 종말하고 싶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여야 하지만 혼자일 수만은 없다. 지독한 모순인데도, 이런 모순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혼자서는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는 한 혼자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2부. 사랑할 자격에 관해서

▲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포스터

혼자서 여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밤의 해변은 끝나지 않는다. 두 시퀀스로 나뉜 플롯에서도 밤의 해변은 아주 길게 늘여져 놓여 있다. 꼭 하루 종일 밤인 것처럼. 결코 밤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모든 시퀀스에는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거품이 일고, 밤이 내리고, 모닥불이 피워지고, 누군가 모래사장에 눕고, 그림을 그리고, 막대를 꽂아두고, 사랑을 하다가 지친다. 지쳐서 다른 누구에게 스러져 울고 만다. 소리 지르고 만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키스하고 만다. 그리고 다시 밤의 해변에서.

여자가 술을 먹고 취해서 가장 크게 소리 지르는 대사가 있다. 사랑할 자격, 아무도 그런 자격이 없다는 말. 아무도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것만큼 절망적인 상태가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누구도 사랑을 시작할 수 없고, 사랑을 끌어 나갈 수 없으며, 사랑을 끝낼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그런데 여자의 맞은편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여자가 이렇게 묻는다. 사랑할 자격이 뭔데요. 사랑할 자격은 누가 정하는데요.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주인공의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우린 아무도 그 자격을 눈으로 지켜볼 수도,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다. 그래서 그런 자격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알지 못하고 사랑한다.

그러고선 나오는 것은 분노에 젖은 목소리뿐이다. 꿈속에서 여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를 만난다. 남자는 그녀에게 책을 건넨다. 그녀가 생각나서 책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녀는 또 그 책을 받아든다. 고맙다고 까지 한다. 자격도 없는 사랑을 해놓고선, 아니 자신이 자격이 없어서 그런 걸까. 그녀는 남자를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소리는 분노에 젖어 있다. 책의 구절을 읽어주는 남자를 보면서 그녀는 아주 고맙다고 말한다. 여전히 분노에 젖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랑마저도 그것은 꿈이었을까, 그녀가 축축한 모래바닥에서 몸을 일으킬 때, 그녀는 자신의 자격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격이라면 모를까, 사랑할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은 절대로 없을 것만 같다. 누가 그 가능성에 대해서 논할 수 있을까.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조차 아무도 알지 못하는데 누가 그것을 정하고 그것에 자격을 덧붙일 수 있을까. 꿈에서 깨버리자 여자는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다. 모닥불을 피워주는 사람도 더 이상 없다. 그녀를 업고 도망쳐줄 사람도 역시 더 이상 없다. 모든 것은 그녀의 꿈, 또는 그녀의 무의식과도 같아서 공허하다. 빈자리에는 파도만이 철썩철썩 치고 있다. 거품이 인다. 그녀는 혼자이고 싶다. 혼자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 그대로 혼자, 더 사랑을 하기에는 여자는 너무 지쳤다.

혼자가 되어야 할 필요에 대해 우리는 일말의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지쳤기 때문이다. 사랑이든 삶이든 뭐든, 우리는 금방 지쳐버렸으니까, 더 나아갈 수가 없을 것만 같으니까. 혼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잠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아무 것도 아니다. 애초에 아무 것일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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