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우리 옛돌 박물관-2회 / 김혜영

 

환수유물관을 지나, 박물관의 2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돌로 만든 부처가 보였다. 부처가 6년의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짤막한 설명과 함께, 큰 부처 바위 하나만 외롭게 있었다. 다른 조형물이 없어서 하나의 바위만 찬찬히 들여다보고, 곱씹어 생각했다. 2층은 철학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공간임이 틀림없었다.

부처를 지나가면 전시관은 두 갈래로 나뉘고, 그 가운데에는 작은 동굴이 하나 있다. 동굴의 이름은 ‘돌과의 대화’이고,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다. 안에 들어가면 너무 어두워서 사람의 형상을 한 돌과 촛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외부와 연결된 것은 작은 문뿐이고, 오로지 혼자서 돌과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살면서 돌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낯설고 어색했다. 그래서 대화를 하기보다 머리를 비우는 데에 집중했다. 고민과 잡생각을 내려놓고,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혼자가 되면 외롭고 무서울 줄 알았는데, 내 안에 내가 가득하니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 환수유물관에서는 인생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존재를 느꼈다면, 작은 방에서는 생각보다 강하고 외롭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박물관 밖에서 잔뜩 가져왔던 현실의 고민과 고통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와 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값진 깨달음이었다.

 

 

‘돌과의 대화’방을 나오니, 알록달록한 자연과 함께 미소를 짓는 제주 동자 돌들이 있었다. 눈은 화난 것처럼 보여도 어쩐지 웃고 있는 인상이었다. 투박하고, 서민적인 제주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설명이 옆에 있었다. 동자는 연꽃이나 제기를 들고 있는데, 어쩐지 2016년 겨울의 광화문과 촛불이 생각났다. 사실 처음에는 촛불시위가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월호, 위안부, 백남기 등 촛불이 일어났어야 하는 사건은 무수히 많았다. 그럼에도 끝내 광장으로 나오지 않던 사람들이 한 여학생의 입학 비리를 계기로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가하는 일에만 분노한 것이라는 배신감이 들었다. 백남기 열사 때도 이미 민주주의는 죽었는데, 이제야 민주주의를 찾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한 제주 동자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꼈던 차가운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모두 다른 동기를 갖고 광화문에 모였지만, 목적과 목표는 같았다. 나라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하고, 당연한 소망. 앞날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함께 뭉치고 행동했던 이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 더 소중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자관에 앞서, 소원을 비는 코너가 있었다. 종이에 소원을 적고, 전시관에서 소원의 메신저가 되어줄 동자를 찾으면 됐다.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다가, 어머니와 함께 ‘수복강녕’을 적었다. 그리고 동자 하나를 고르기보다, 이곳에 있는 모든 동자를 생각하며 소원을 빌었다. 우리 모두에게 소망을 걸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음은 벅수관이었다. 동자나 문인석보다 작고 귀여운 돌들이 모여 있었다. 벅수는 ‘돌 같은데 돌도 아니고 사람 같은데 사람이 아닌’이라는 이상한 설명이 있었다. 한참을 고민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벅수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읽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류층은 불교나 의약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서민들은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마을 입구나 길가에 역신이나 잡귀를 물리치는 벅수를 세웠다. 그제야 벅수의 크기가 작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큰 돌을 조각할 만큼의 자본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벅수는 결국 그들을 조각하고 세운 서민들 자체였다. 자신이 돌이 되어 마을을 지키고, 가족을 지켰다. 작지만 굳건하게 서 있는 벅수를 보며 마음이 아렸다. 돌도, 사람도 될 수 없는 존재가 더 이상 없었으면 했다.

마지막으로 3층에 위치한 ‘추상. 구상. 사이’ 전시관에 들렀다. 다른 곳들과 달리, 현대적 색채가 강한 공간이었다. 돌은 사람의 손을 거쳐 추상에서 구상이 되고, 사람들의 심상 자체가 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담은 돌은 자연의 영향으로 다시 구상에서 추상으로 돌아가고, 돌이 된다. 이 전시는 추상과 구상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즉 심상에 관해 생각하는 곳이었다. 그중, 김환기의 ‘비가 온다’라는 작품은 종이에 낙서를 한 것 같은 그림이었다. 아이가 비가 내리는 다양한 풍경을 그린 느낌이었는데, 비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닿으면서 추상과 구상의 과정을 거치는 것 같았다. 자연과 교감하는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느꼈다. 또, 제주김창열미술관에서 본 물방울 작품도 있었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여러 글자 위로 흩날린 물방울을 보며, 사람의 언어와 자연이 생각났다. 사람에게 언어는 사고를 관장하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다. 그렇다면 자연의 언어는 무엇일까. 사람은 언어를 필요로 하지만, 자연은 곧 그 자체가 언어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고, 우리는 소통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자연물을 추상에서 구상으로 만들면서 일방향의 인위적인 소통을 하지만, 자연은 스스로 추상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의 언어를 가득 머금는다. 물방울을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방울이 머금은 내 마음은 ‘나’와 ‘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층의 전시관은 1층까지 야외 공원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석비부터 불을 밝히는 관솔대, 제주의 동자 등 다양한 돌이 모여 있었다. 너무 많은 종류의 돌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그저 천천히 걸으면서 바람과 나무, 흙과 돌을 느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해는 내가 내려놓고 싶었던 것들을 머금고 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어머니와 함께 박물관을 나왔다. 오늘은 충만하게 행복했다. 너에게도 그런 하루가 되기를 온 마음으로 빌었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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