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장터의 겨울-겨울 장터의 베스트셀러는 동태
“냉장고 속이 더 따숩겄당께.”
웃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이 ‘냉동실 추위’는 실화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것은 속담일 뿐.
“얼음옷을 몇 불로 입어불었어.”
영하 몇 도의 한파 속에 어물전의 모든 생선은 종류에 상관없이 다 한몸으로 꽝꽝 얼어붙었다.
“한 마리썩 일일이 뜯을랑께 어깨심이 겁나 필요해. 어쩌겄어, 심써야 묵고살제. 심 안 쓰고 되는 일이 있가디.”
나주 다시장 어물전 할매. 사는 것은 ‘심 쓰는 것’이라고, 내내 그렇게 살아온 이의 말씀이다.
“시한에는 동태가 질로 잘 폴리제. 추울수록 잘 나가.”
어물전 주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겨울 장터의 베스트셀러는 동태.
“녹아야 헌디 내논께 더 얼어부네.”
임실 오수장 강송자(78) 할매는 애가 탄다. 할매는 꽝꽝 얼어서 어찌 해볼 수 없는 동태를 난롯불 가까이 대고 좀이라도 녹여보려 애를 쓴다.
“인자 며칠만 건너가문 되야. 인자 추우(추위) 다 지나갔어. 소한 대한 다 넘어갔어.”
단골 할매가 지나가다 “며칠만 더 건너가자”고 짐짓 응원의 말씀을 건네신다.
‘얼었다 녹았다’ 하는 것이 삶이라지 않는가. 시방은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시절을 지나는 중이려니.
포 뜨기의 달인들도 꽝꽝 언 동태 앞에서는 애를 먹는다.
“한번 붙든 것이라 변동을 못하고 이날평상 이것만 한다”는 어물전 40년 경력의 할매한테도 난제.
“뜨기가 겁나 사나와. 얼어분께 칼이 안 들어가.”
이윽고 포를 뜬다.
“행님, 얼었어도 포는 좋게 떠졌어.”
설 명절 앞두고 큰 놈 두 마리를 전감으로 떠가는데 한 마리가 덤으로 딸려간다.
“저닉에 국 낄여드시라고.”
할매는 받은 돈 만원짜리를 머리에 갖다대고 한번 쓱 문댄 다음 전대에 넣는다. 마수했다는 의미다.
“인자 마수했네.”
새벽 6시에 나와 10시에 첫 거래가 이뤄졌다.
“아무리 추워도 열어야죠. 생업이잖아요.”
영광 법성포 선창 어물전의 김미성(47) 아짐. 진열대 위 어물들엔 눈이 반나마 덮여 모두 정체불명이다.
“이건 달고기. 몸뚱아리에 보름달마냥 동그란 무늬가 있어서 달 떴다고.”
달돔, 달병어라고도 하는 달고기는 겨울철 조깃배 그물에 같이 올라온단다. 빨간 신대도 눈을 한껏 뒤집어쓰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맵찬 바닷바람을 견디며 스스로 속이 깊어지는 중이다.
〈익을 대로 익은 홍시 한 알의 밝기는/ 오 촉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런데,/ 내 담장을 넘어와 바라볼 때마다/ 침을 삼키게 하는, 그러나 남의 것이어서/ 따 먹지 못하는 홍시는/ 십오 촉은 될 것이다〉(최종천, ‘십오 촉’ 중)
그렇다면 쨍하니 시린 겨울 하늘 아래 꽃등처럼 걸린 이 곶감의 촉수는 얼마일까. 남원 인월장 김장환(67)씨는 마천에서 감 400 그루 농사를 지어 겨울이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들며 함양장 운봉장 산청장 인월장 네 장에 곶감을 내어 걸고 있다.
“곶감은 겨울 장사라예. 곶감은 추버야 됩니다. 이리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당도가 높아지고 더 잘긋잘긋해지는 기라. 추버야 지 몸에서 허옇게 분이 나는 기라. 가마이 보소. 얼매나 이삡니까.”
장에 내건 물견들이 자식처럼 어여쁘다는 김장환 아재.
“이 시래기 보소. 키도 크고 포름하니 색도 좋고 처억 봐도 차암 좋다 아입니까. 보기만 존 게 아니고 맛도 참 좋아예. 우리 시래기는 밭에서 무서리 세 번은 맞추고 캐서 말린거라예.”
‘반드시 무서리 세 번’을 견뎌야 그 맛이 보드랍게 되는 것이라는 ‘작품 설명’.
장터에는 그 자태 알아보는 고수가 있기 마련. 김서임(88) 할매가 무려 열여섯 묶음을 사겠노라고 값을 치른다.
“두고 먹고 나눠 먹고. 너물도 하고 국도 낄이고. 봄에도 꽷가리 좀 넣고 조물조물해서 참지름 쳐서 볶아노문 되아지 고기보담 맛나. 괴기 묵을래 시래기 묵을래 하문 우리는 괴기 안 묵지, 시래기 묵지.”
겨울의 복판에서 봄까지 두고 먹을 든든한 찬거리를 득템한 할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환하다.
무안장 어물전 감태 다라이 위로 허연 김이 폴폴 날린다.
뜨끈한 물을 방방하게 담은 비닐봉지를 꽁꽁 언 감태 위에 얹어 두었다. 어떻게든 녹여 보려는 비상대책이다.
“오늘이 최고 추와. 감태가 다 얼었그만.”
인호어매(77)한테 강추위란 한강물도 어는 날씨가 아니라 ‘감태도 어는 날씨’.
“잠꽌이여. 또 그새 봄이 돌아와.”장터 어매들이 노상 기대어 사는 ‘도란장’의 희망은 오늘 같은 추위에는 ‘도라오는 봄’의 희망으로 바뀌는 것이다.
글 남인희·남신희 기자 사진 박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