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는 이념이 아니라 정치의 기본이다”
“복지는 이념이 아니라 정치의 기본이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9.07.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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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위클리서울=이석원 기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다. 가난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난제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지난 수 백 년 간 이 말을 전가의 보도로 여기며 살아왔다. 나라님도 구제 못하는 것이니 스스로 구제하든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든지.

그런데 스웨덴 사람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면 고개를 갸웃 거린다. ‘가난을 나라님이 구제 못하면 누가해? 다른 건 몰라도 가난은 나라가 구제해주는 것 아냐?’라며.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가난해질 수 있는데 그 가난을 아무도 구제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 또는 국가는 고장난 것이라는 게 스웨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개념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나 이념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반의 정치 이념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개념은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나 이념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반의 정치 이념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석원

분명한 것은 1930년대 이후 스웨덴 시민들의 가난은 나라가 구제해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스웨덴에서는 일상적인 가난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가 구제해주는 가난’은 우리가 흔하게 쓰는 용어로 ‘복지’다. 한 국가는 복지 시스템을 통해 시민들의 가난을 구제한다. 복지 시스템은 그 국가의 경제력이 뒷받침한다. 경제가 엉망인 나라에서 제대로 된 복지가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에서 그 예를 본 바 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는 국가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올바른 복지가 이뤄진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올바른 복지가 국가의 경제력을 만들어 낸다고도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 문제가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그래서 복지의 문제는 보다 더 복잡하고 이해타산에 치우친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복지는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점이 되지 못한다.

스웨덴 정치는 현재 진보와 보수, 그리고 극우로 나뉜다. 원내를 구성하는 8개 정당 중 사회민주노동당(이하 사민당)과 녹색당(환경당), 좌파당이 진보연합을, 보수당과 중앙당, 자유당과 기독교민주당이 보수연합을 구성한다. 여기에 2010년에 들어와서 원내에 진입한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하 SD당)이 그것이다.

이 중 원내 1당이자 진보의 중심인 사민당과 원내 2당이자 보수의 중심인 보수당은 지난 80년간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하며 스웨덴의 현재를 만든 중심 정당이다. SD당은 지난 2014년 총선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 3당으로 급부상했다. 지난 해 총선에서는 의석수를 두 배 가까이 늘리면서 62석의 원내 3당일 뿐 아니라 스웨덴의 대안 정당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이념적으로 판이한 차이를 보이는 세 정당이지만, 복지에 대해서만은 거의 차이가 없다. 세 정당 모두 ‘가난은 나라가 구제해야 한다’는 데는 전혀 이견이 없는 것이다. 다만 복지를 어떻게 운용하고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

 

스웨덴의 원내 다수 3개 정당인 사민당과 보수당 SD당은 모두 스웨덴 모든 시민들은 똑같은 복지를 누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의 원내 다수 3개 정당인 사민당과 보수당 SD당은 모두 스웨덴 모든 시민들은 똑같은 복지를 누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석원

스웨덴 복지의 시작은 1928년 당시 사민당의 당수였던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의 의회 연설이다. 한손은 이 날 의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인민의 집(Folkhemmet)’을 언급했다. 그는 “국가는 모든 인민의 좋은 집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의 집’ 개념은 이른바 ‘스웨덴식 사회주의’의 시작이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 평안하려면 그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고, 그런 다음 모든 가족은 그 가정, 즉 집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인민의 집’이야말로 스웨덴이 추구하는 진정한 계급투쟁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한손은 “스웨덴의 모든 아이들은 모두의 아이들”이라고도 말했다. 1932년 사민당이 집권을 한 후 ‘인민의 집’은 타게 에를란데르(Tage Erlander) 총리와 올로프 팔메(Olof Palme) 총리에 의해 구체적으로 발전했고, 결국 정파의 이해관계나 정당의 이념과는 상관없는 ‘스웨덴의 기본 이념’이 된 것이다.

이런 기조 속에 사민당은 ‘모두가 함께 부담하고, 모두가 함께 누리는 복지’를 80년간 주창하고 있다. 즉 높은 세금을 통해 스웨덴 시민 뿐 아니라 스웨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가능하면 최대치의 복지를 누리는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사민당과 집권을 놓고 경쟁하는 보수당도 ‘인민의 집’ 가치는 그대로 계승해나갔다. 다만 보다 효율성을 강조한다. 많은 세금을 통해 최대치의 복지를 남발하는 것 보다는 복지의 양과 질을 조절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편적 복지에 회의적인 것은 아니다. 보수당도 복지에는 차별과 선별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정 정도의 선별을 주장하는 것은 SD당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이미 스웨덴 사람이 된 이들에 대한 복지를 줄이는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웨덴의 복지도 임계점이 있을 수 있으니 복지 혜택을 받을 사람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민자 유입이나 난민을 반대하고 있다. 현재의 스웨덴 사람들이 스웨덴의 복지 가치를 향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시민들의 복지를 위해서는 경제 발전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는 정치 세력은 없다. 1991년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 총리였던 칼 빌트(Nils Daniel Carl Bildt)도 “스웨덴의 복지는 스웨덴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말했다.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는 SD당의 임미 오케손 당수도 2019년 1월 의회 연설에서 “스웨덴 경제를 위해서도 스웨덴의 복지는 지속돼야 한다”고 강변했다.

‘복지가 경제의 기둥’이라는 이론은 간단하다. 실업자가 기업이나 국가로부터 내팽개쳐지고, 아픈 시민을 사회가 보호하고 치료해주지 않으면 그 국가나 사회의 경제는 선순환의 구조로 돌아오지 못하고 악순환 속에서 허덕인다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어쩔 수 없는 이치’가 아니라, 가난을 구제할 수 없는 무능이나 가난을 구제하고 싶지 않은 무책임의 자기 합리화라는 게 스웨덴 사회 복지 시스템의 생각이다.

복지는 정당이나 정치의 이념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에 당연히 짊어져야 할 책무이고 정치의 기본이라는 것, 이것이 사민당이든 보수당이든 심지어는 극우 정당이든 정치를 하는 스웨덴의 모든 집단의 가치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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