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전수해준 피서방식
고양이가 전수해준 피서방식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9.08.01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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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날아가는 녀석을 다시 잽사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날아가는 녀석을 다시 잽사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여름날이 깊어지면서 내 몸은 점점 무거워져 간다. 이것도 흥미가 없고 저것도 흥미가 없다. 세상천지 그 어디에도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느낌이니 이게 대체 뭔가.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죽은 듯이 그냥 누워 있자니 내가 이렇게도 한심한 고깃덩어리였나 싶기도 하다.

이런 날에는 백일몽이 제일이다. 내가 있는 듯이 없는 듯이, 자는 듯이 깨어 있는 듯이 눈을 감은 채로 땀이야 흐르거나 말거나 그냥 가만히 자빠져 있노라면 각종 진귀한 것들이 휙휙 지나간다. 새 소리도 있고 개구리 소리도 있고, 신경을 아주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있노라면 멀리서 앵앵대는 꿀벌 소리도 들린다. 그밖에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소리가 있으니, 나는 그 소리가 어쩌면 개미나 바퀴벌레 혹은 쥐며느리 같은 작은 곤충들이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일단 시작된 상상 아니 백일몽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쭉쭉 뻗어 나간다. 중에서도 으뜸은 ‘톰 소여의 모험’이다. 개구쟁이 악동으로 유명한 소년 톰 소여가 이모의 비위를 크게 상하게 해서 벌을 받는다. 여기서 저기까지, 삼복염천 무더위 속에서 백 미터도 넘는 담벼락에 페인트를 칠하라는 벌을 받고 의기가 잔뜩 소침해 있는데 친구들이 낄낄거리며 지나간다.

얼라리꼴라리, 놀리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친구들을 쳐다보며 입술을 삐죽거리던 톰 소여가 느닷없이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너희들은 이게 뭔지 모르지?”한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뭐야, 뭔데? 하고 다가온 친구들에게 톰은 페인트질 속에 굉장한 것이 들어 있다고,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모른다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고녀석 참 귀엽기도 하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고녀석 참 귀엽기도 하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파닥파닥 달아나 보지만
파닥파닥 달아나 보지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러자 친구들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도 한 번 해보자고 달려든다. 그러자 톰은 어림도 없다고, 이런 고귀한 일을 아무나 하게 할 수는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다. 그리고는 럴럴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활기차게 신나게 페인트칠을 한다.

이제는 도저히 그냥 가버릴 수 없게 된 친구들은 애가 달아서 보채다가 뇌물을 들이밀기 시작하는데, 어떤 친구는 사탕을 내놓고, 어떤 친구는 보물처럼 아끼는 딱지를, 구슬을, 이것도 저것도 없이 돈만 있는 친구는 있는 돈을 죄다 꺼내서 내놓고 페인트칠 한 번만 하게 해 달라고 조른다. 이에 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친구들이니까 봐준다는 투로 사탕이며 딱지며 현금 같은 것들을 잔뜩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페인트 붓을 내준다. 그리하여 그날 톰은 아주 쉽게 페인트질 다 끝내고, 주머니를 그득 채우는 부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추종자들까지 거느리게 되었다는 게 소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오는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이다.

톰의 이런 행각은 영악한 속임수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친구들은 속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생 처음 해보는 페인트질이 엄청나게 힘들긴 했지만,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즐거웠다. 즐거웠을 뿐만 아니라 그 어렵고 힘든 페인트질을 해 보았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자긍심을 보물처럼 갖게 되었으니, 톰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만약에 어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톰을 사기꾼이라고, 도둑놈이라고 맹렬하게 나무라며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는 등 심하게 요란을 떨었겠지만, 톰을 이미 숭앙하게 돼버린 아이들은 결코 그 사실을 부모님께 일러바치지 않을 것이다.

세상사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던 원효대사의 말씀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어떤 눈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것의 가치와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이 혹독한 찜통더위를 사우나라 여기고 가만히 자빠져서 눈이나 떴다가 감았다가 해보는 것도 썩 괜찮은 피서방식이라고 주장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자가당착이요, 아전인수일 수도 있는 그런 백일몽에 빠져 있는 내 귓속으로 맹렬하게 짖어대는 새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발레라도 하듯이 우아하게
발레라도 하듯이 우아하게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렇다. 새들은 짝을 찾아서 우는 것도 아니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노래하는 것도 아닌, 그냥 들어도 적개심이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악악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어쩌면 수십 마리, 적어도 열 마리 이상의 큰 새들이 맹렬하게 공격적인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날개를 퍼덕거린다. 고양이가 또 새끼 새를 잡았나 보다. 이렇게 되면 그냥 누워나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신나는 구경거리를 어찌 놓치고 말 것인가.

혹독한 무더위에 학학거리기는 고양이도 사람 못지않지만, 녀석들은 새만 보면 아드레날린이 분출하는 것인지, 잠자던 힘이 깨어나는 것인지 하여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날뛴다. 물론 하늘을 높이 나는 새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지저귀는 새도 역시 관심 밖이다. 사정거리에 들어온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명사수처럼, 고양이는 자기가 잡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새를 향해서만 몸을 날린다.

온갖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먹는 7월과 8월, 이 계절은 각종 새들이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혼자서도 잘해요 연습을 시킨다. 어미는 벌레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새끼들을 부른다. 새끼들은 아직 솜털마저 보송보송한 날개를 필사적으로 파닥거리며 어미를 따라간다. 날개를 운용하는 방식이 서툰 새끼 새는 가끔 나뭇가지에 부딪혀서 추락하기도 하고, 내공이 부족해서 갑자기 툭 떨어지기도 한다. 떨어지자마자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는 하지만, 이때 만일 고양이가 근처에 있다면 그 새끼 새는 순식간에 포로가 되고 만다.

고양이가 새 고기를 좋아해서 새끼 새를 잡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가끔 쥐를 잡아다 놓고 마당에서 고문이라도 하듯이 오랜 시간 온갖 방식으로 골리다가 죽으면 가끔 뜯어먹기도 하지만, 새를 잡아다가 먹는 꼴을 본 적은 아직 없다. 새를 산 채로 잡아다 놓고 발바닥으로 탁탁 치는 놀이를 벌이고, 새가 애처로운 소리와 함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면 즉시 날렵하게 점프를 해서 다시 잡아놓고 장난질을 하고, 그러다가 새가 기진맥진해서 늘어지면 언제 새를 잡아 왔더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요녀석이 지금 뭐라는 거냐
요녀석이 지금 뭐라는 거냐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포장 속에 숨어든 새를 다시 꺼내놓고
포장 속에 숨어든 새를 다시 꺼내놓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것들 중에 새끼 키우기를 가장 먼저 끝내는 녀석은 아마 꿩일 것이다. 곡물이 주요 식량인 꿩들은 뱀이 아직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기 전인 3,4월에 알을 낳아서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하는 5월 무렵이면 부화를 시키고, 그리고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보리 이삭을 어떻게 까서 먹으면 효과적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가 하는 이를테면 ‘먹고사니즘’ 교육을 시키는 한편 빨리 달리기 훈련을 맹렬하게 시킨다.

날개가 있지만 제대로 멀리 날지는 못하고, 높은 나무에 앉는 취미도 없는 꿩은 빨리 달리기로 세상과 맞서야만 한다. 그래서 새끼 꿩은 알을 깨고 나온 지 한 시간이 채 안 돼서부터 마치 골프공이 굴러가는 것처럼 빨리 달리기를 할 수 있고, 자기 입으로 먹이를 쪼아 먹을 수도 있지만, 날기도 잘하고 높은 나무에 앉기도 잘하는 까치나 어치, 참새 같은 녀석들은 빨리 달리기는커녕 자기 뱃속 하나 자기 입으로는 채울 수가 없다. 어미가 벌레를 잡아다가 목구멍 깊은 곳까지 넣어주어야만 하니, 아주 어렸을 때는 뱀들의 먹잇감 1순위가 되고, 어지간히 다 자라서는 고양이나 족제비들의 표적이 된다.

나는 아직 고양이가 꿩을 잡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꿩을 잡겠다고 한 시간도 넘게 납작 엎드린 자세로 살금살금 다가서다가 위험을 감지한 꿩이 푸득 날아버리는 바람에 허망해서 하늘이나 쳐다보는 꼴은 숱하게 보았지만, 꿩을 잡았다고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까치나 어치, 참새 같은 종류는 7,8월 무더위 속에서 하루가 멀다고 잡아대지만 말이다.

고양이가 새끼 새를 잡아 왔을 때의 내 마음은 다소 복잡하다. 쥐를 잡아 왔을 때는 그저 시원하다, 고소하다, 잘했다 하는 마음뿐이지만, 새를 잡아오면 어쩌란 말이냐, 하고 잠시나마 인상을 찡그리는 둥 어쩔 줄을 몰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한순간뿐이다. 그 한순간이 지나면 내 마음은 벌써 정리가 돼서 구경꾼 모드를 취하게 된다.

 

아이고 좋아 죽겠네
아이고 좋아 죽겠네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왜 아니 그러겠는가. 요즘은 시골 생활을 하자면 너나없이 새들과의 한판 전쟁을 각오해야만 한다. 농사를 직업적으로 짓는 사람이야 두 말할 나위가 없고, 나처럼 과일나무 몇 그루에 고추다 옥수수다 뭐다 몇 포기씩 마당에 심어놓은 얼치기 농사꾼도 새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는 느낌부터 든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옥수수 몇 개 얻어먹겠다고 심어놓으면 열매가 생기자마자부터 이런 새 저런 새 온갖 잡새가 날아와서 죄다 쪼아버린다. 앵두가 빨갛게 익으면 그 모양이 너무 예뻐서 익는 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열매에 붉은 물이 들기가 무섭게 죄다 쪼아서 땅으로 떨어트려 버리고, 과일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단내가 조금이라도 풍기기 시작한다 싶으면 떼거지로 몰려와서 콕콕 쪼아버린다. 자기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골라서 먹을 만큼 처먹고 간다면야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지만, 처먹지도 못할 것을 이것도 쪼아보고 저것도 쪼아보는 방식으로 모조리 망쳐놓고 자빠졌으니 이해도 양해도 아무것도 안 된다. 그저 다만 밉상일 뿐이고, 그저 다만 패죽이고 싶을 따름이다.

깊은 산속 마을도 아니련만, 새들은 어느새 이렇게 산을 내려와서 마을을 점령해 버렸다. 돌아보면 내가 도시 생활 걷어치우고 시골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새가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다. 그저 듣기에 좋을 정도의 새 소리가 있었고, 보기에 좋을 정도의 새들이 허공을 날고 있었으며, 밤이면 대숲에 들어와서 자는 새들이 가끔 잠꼬대처럼 내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기도 했다.

하긴 내가 시골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뒷산이건 앞산이건 오늘날처럼 이렇게까지 울울창창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여름에서 가을 즈음이면 버섯을 따겠다고 산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른 봄날에 고사리를 꺾는다고 잠깐 들어갈 수 있을 뿐이고,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멀리서 그냥 저기 산이 있다 할 뿐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맹감이며 칡 같은 각종 넝쿨식물과 가시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서 사람의 출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 피곤하다 이제 한숨 자야지
어 피곤하다 이제 한숨 자야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산이 지나치게 울울창창하다 보니 작은 식물들은 기를 펼 수가 없어서 거의 멸종이 되고 말았다. 작은 식물들은 보리나 기장 혹은 좁쌀 수준의 곡물을 키우고, 새들은 그것을 따먹는 재미로 산에서 살았던 것을,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으니 어쩔 것인가. 새들이 산을 포기하고 마을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은 새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쪽인 것이니, 사실을 말하자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고양이는 살판이 났다. 산에서는 면적이 하도 넓어서 새를 잡는 재미를 누리기 어렵지만, 마을에서는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새들이니, 부지런한 고양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를 잡아다놓고 별별 기괴한 재주를 다 부려댄다. 그 모양은 흡사 그 옛날 광대가 부리던 물구나무 같은 것을 연상케 하기도 하고, 호두까기인형 같은 데 출연한 발레리나 같아 보이기도 하고, 수영에서의 뭐냐 그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이라든가 하는 그런 어떤 동작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것은 물론 새의 호응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날개를 파닥이며 달아나는 자세를 취한다든가, 입이 찢어져도 좋다는 듯이 큰소리로 앙알대지 않으면 고양이의 신명은 떨어져 간다.

마침내 새가 자력으로는 날지도 못하고 짹짹거리지도 못할 지경이 되면, 고양이는 이제 자기가 새를 앞발로 들어서 높이 던진다. 그리고는 자기도 힘껏 점프를 해서 새를 낚아챈다. 마치 새가 스스로 도망치다가 잡히는 포즈를 취하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새가 완전히 빈사상태에 이르면, 그러면 고양이는 이제 됐다 하는 투로 돌아서서 하늘을 몇 번 쳐다보고, 그리고는 아무 데나 되는대로 자빠져서 잠이 들어간다.

그렇게도 정열적으로, 그렇게도 열성적으로 온 몸의 근육을, 관절을, 신경세포를 죽일 듯이 담금질하고 났으니 아닌 게 아니라 한 서너 시간쯤은 더위도 뭣도 아무것도 의식함이 없이 푹 잠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찜통더위를 이겨낼 목적으로 새를 잡았다는 것인가? 글쎄, 거기까지는 뭐라고 장담을 못하겠다. 나도 한 번 그렇게 열정적으로 온 몸을 던지는 무슨 짓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그런 뒤에 피곤해서 더위도 뭣도 다 잊은 채로 한숨 푹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그저 어렴풋이 해볼 따름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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