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전 경기대교수 / 소설가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 교수

[위클리서울=이재인] 지난여름에 발생한 태풍 피해가 본인한테는 매우 컸다. 필자가 운영하는 문학관 비탈 산에 자생하던 홍송(紅松) 두 그루가 허리를 꺾여 말라 죽어갔다.

안타까이 지켜만 보던 내게 여러 사람이 염려했다. "아 저런 게 문학관에 가까이 있으면 숭허닝께 잘라 버려". 이는 말하는 쪽의 주장이다. 60도 각도의 비탈진 산에 올라 내 나이만큼 먹은 아름드리나무를 무슨 재주를 보낸담…….

속으로 배앓이를 하던 중 젊잖은 시인이 자기가 이걸 베어내겠다고 전기톱에 엔진을 켜고 조심조심 게걸음으로 올라갔다.

필자는 기도하면서 죽은 나무가 무사히 베어 넘어가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귀향 전에 나는 시골에서 산 이력이 20년은 다 되어 비탈에서 나무 베는 일은 권력에서 경제적 유혹을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

이런 염려와 기도 덕분에 내 친구 벽공이 무사히 죽은 나무 엿가락처럼 댕강댕강 잘라내는 데 성공했다. 비탈에서 아름드리나무를 뉘는 일도 매우 어렵지만 이를 나르는 일 또한 펄펄 끓는 굴을 잔치마당에 나르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독자들한테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이 아름드리나무를 마당으로 옮기고 보니 옛 추억이 새실 새실 떠올랐다. “아하, 이놈을 장작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벼락같이 떠올랐다.

  “으쌰!” 나는 혼잣말을 뇌까리면서 이웃집 형님한테 도끼를 빌리러 갔다. "뭐 하려고 도낄?" 형님은 호기로운 도끼를 들고나와 그라인더에 전원을 넣었다 금세 하얗게 날이 섰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리움은 오래되면서 부풀려진다고…….

장작을 보니 옛날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무쇠 난로에 장작 몇 개비에 무연탄을 주워 넣고 변또들을 아파트처럼 쌓아 올리던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다. 아하, 시골은 구차하지만 이처럼 낭만적 추억이 소생하고 또한 부활하여 나이든 우리를 행복으로 부풀린다.

  장작을 패기 시작했지만 어떤 놈은 날 선 도끼날 앞에서도 빠개지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필자 고집 또한 황소고집이라서 요놈들과 실랑이로 한겨울 땀방울을 흘렸다. 이런 내 마당에 신기한 장작 패기에 구경나선 동네 어르신이 참견했다.

  "이러니께 선무당이 사람 잡능겨……. 나무라고 막 다루면 이눔이 절대 저항혀……." "그게 무슨 말씀인겨?" "허허 뒤진 나무라구 막 도끼날 휘두르면 빠개지기 전에 자네가 쓰러져…. 세상 이치가 다 순리가 있어서…. 나무도 결이 있어야 된다말여……."

  나는 구십 노인한테 지청구를 들으면서 이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 세상에 소소로운 것, 즉 미물에게도 순서 겸 생리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나름대로 생각하고 번민하면서 주어진 일을 60년간 진행해왔다.

그러나 오늘 장작을 패면서 나는 생나무를 어거지로 도끼날에 들이 밀은 일은 없지 않은가 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교단에서 정부 부처에서 대학 강단에서 작가로서 우격다짐으로 살아온 것 같아 두렵고 또 무섭다.

  나무에도 결이 있듯이 모든 사물에게도 결이 있다. 그게 순리이고 정의이고 평등이란 것을 필자는 장작을 패면서 새삼 깨달았다. 우리 사회가 오늘도 결을 따라 길을 가고 있는가 한번 되돌아보는 것 또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 일게다.

으흐 추위가 오는 데 어서 아궁이에 고마운 불씨를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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