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려선 안되는 것에 대하여”
“새만금, 잃어버린 것과 잃어버려선 안되는 것에 대하여”
  • 우정호 기자
  • 승인 2020.11.16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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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잃어버린 갯벌, 새만금’ 저자 최영진 사진가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새만금 개발사업.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알지 못해도 들어본 적은 있을 단어겠다. 노태우 정권부터 현 문재인 정권까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 범죄자와 비 범죄자 출신 대통령을 전부 아우르며 언급돼왔기 때문이다. 22조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감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막대한 재산을 안겨준 ‘4대강 정비 사업’만큼 유명하진 않겠지만…

 

최영진 사진가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1991년 11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간척 사업이 전라북도 군산시와 부안군에서 시작됐다. 전라북도의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를 총 길이 33.9㎞의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강하구를 통째로 틀어막는 일이었다. 방조제로 인해 해수유통이 막히자 새만금 지역 호수의 수질은 최소 농업용수로 쓰일 수 있는 3, 4등급에도 미치지 못하게 변했고, 수중 내 산소부족으로 수중생물들이 전멸해버려 생태계가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시작부터가 노태우 정권의 호남 민심 포섭을 위한 목적의 개발이었고, 역대 정부는 간척 사업 이후의 보장되지 않은 영광을 주장해왔다. 방조제가 완성단계에 가까워질수록 생태계는 절망에 가까워졌고, 거주민들은 떠났다. 관광객도, 환경단체도 발길을 끊었다. ‘사업 설명회’를 열기 위해 꾸준히 찾아오던 정치인들도….

지난 10월, 북한산 입구, 정릉동에 있는 갤러리 아트세빈에서는 사진가 최영진 초대전 ‘거울 같은 바다에서 숭어가 뛰어놀았네’가 열렸다. 20년 넘게 서해안을 찍은 그의 사진들에는 자식의 성장기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때때로 애절하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자연을 향한 그의 마음이 담겼다.

한 달 만에 만난 최영진 작가는 특유의 선하고 강단 있는 미소를 띠고 갤러리에 들어왔다. 민속박물관 기록사업 프로젝트로 제주도에서 작업하다 막 돌아왔다고 했다. “학예사 하도겸 씨와 함께 전국의 한약방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지난주 내내 제주도에 있다 얼마 전 돌아왔어요. 내일 새벽엔 또 강원도로 떠납니다. 촬영하러.”

고단하지만 기대 넘친 목소리. 그를 그토록 움직이게 하는 건 뭘까? 홀로 드러낼 수 있을 자연이 가진 숨은 조형미? 자연의 일부로서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감춰진 얼굴? 혹은 ‘기록’에 대한 모종의 긍정적 강박? 궁금했다. 새만금을 20년 동안 오가며 기록할 수 있었던 연료가….

 

뻘-해안선-섬, 그리고 새만금 까지…20년 대장정 ‘서해안 프로젝트’

최영진 작가는 20년 전 기획한 ‘서해안 프로젝트’를 통해 넓고 검은 새만금 지역에 자연스럽게 닫게 됐다. “‘서해안’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최소 20년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고, 2000년 시작한 ‘뻘’작업을 4년 동안 찍었어요. 물이 들어오면 바다 밑이고, 물이 빠지면 땅이 되고. 뻘이 가진 조형성이나 질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생명의 본질이자 바다의 어머니인 뻘의 얼굴을.”

최 작가는 서해안 프로젝트의 시작인 ‘뻘’ 작업을 하면서 개발되고 있는 서해안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 작업은 2008년 시작한 ‘해안선’이었어요. 서해안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현대까지 대규모 간척 사업들이 이뤄져 왔고, 서해안의 약 60% 정도 해안선을 다 막아서 간척을 했죠. 살아있는 해안선도 있고 보존되고 있는 해안선도 있습니다. 인간은 간척 사업으로 해안선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해안선을 통해 유희를 즐기기도 해요. 피서라는 행위는 인간이 자연을 만끽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행위죠.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자연에서 다양한 표정과 얼굴들을 포착해내는 최영진을 보며, 높은 건물들, 도시 야경의 노란빛들, 넓은 도시 대로에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며 비(非) 자연주의적 태도를 내놓던 나조차 동요하게 됐다. 산은 그냥 산이 아니고 물은 그냥 물이 아닌데.

그는 다음은 ‘섬’ 작업이라고 했다. “아직 스케치 단계지만. 일반적으로 섬을 고독, 고립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섬은 탄생과 소멸이라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섬은 없어졌는데 그 자리에 가보면 바위 덩어리들이 쌓여있죠. 여기서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게 되고. 또 어떤 섬들은 수천 수 만년이 걸려 생겨났다 없어지기도 하고.”

 

 새만금 ⓒ위클리서울/ 최영진
 새만금 ⓒ위클리서울/ 최영진
 Buan ⓒ위클리서울/ 최영진

새만금 개발 사업의 그늘 기록한 사진집 ‘잃어버린 갯벌 새만금’

서해안을 20여 년 간 누리며 바다를 중심으로 자연의 안과 겉을 담아온 최영진 작가를 강하게 끌어당긴 건 새만금 지역이었다. 지난 2008년 ‘서쪽 바다 새만금 The west sea Saemangeum’, 그리고 2017년, ‘잃어버린 갯벌, 새만금’ 등 새만금 관련 사진집을 발표한 바 있다. 사진에 담긴 새만금은 처참한 아름다움을 가졌다. 방파제가 점점 완성돼 갈수록 갯벌은 말라가고 물고기와 새들 역시 죽은 채로 말라간다. 갯벌이 죽어가며 인간도 멀어지고. 그러면서도 그의 사진은 풍경화보단 조형적인 추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찍은 건 2004년 정도일 거에요. 제 작업 스타일 상 찍기 전에 스케치만 하는 기간이 있는데 2년 정도 걸렸죠. 여의도 140배 크기의 어마어마한 면적을 가보니 처음엔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지형을 전혀 모르는 채로 사진에 담는다는 게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년 동안 그 지역 상세지도를 사서 지형과 지역을 체계적으로 파악했죠. 어촌 마을과 바다의 생태 현상들도 숙지하고 사람들이랑 대화도 해보고."

처음 그가 갔을 시기에 정부와 언론은 주민들에게 개발계획에 대한 환상만을 심어주며 그들을 자극했다. 정부와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도 있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민 해결책은 돈이었다.

“정부는 처음에 어민들에게 보상을 해줬어요. 어업장이 당장 없어지는 게 아니라 20년 뒤에 없어지니까 그때까지 하시던 대로 어업도 활발하게 일하고 보상금도 받으시라면서.” 돈도 받으면서 영업도 해라? 이보다 더 달콤한 말이 있나? “그렇죠. 그것보다 좋은 게 더 있어요. 그러니 어민들이 제대로 판단하기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20년이 걸린다는데. 그동안 어업활동 충분히 하면 먹고사는데 문제없지 않냐’고 회유를 받는데.”

최 작가에 따르면 처음 새만금에 갔던 2002년 정도엔 방조제가 4~5킬로 정도밖에 지어지지 않아 생태계가 거의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어민들도 어업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았고, 서울과 경기권에서도 갯벌 체험이나 여행을 오고. 신포항 같은 작은 항구들은 차 델 데 없이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최 작가의 목소리가 조금 어두워졌다. “지금은 모두 떠났죠.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물을 급격하게 막았더니. 적응 못한 물고기와 새들이 몸부림치다 죽었어요. 그 모습들을 보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웠죠. 먹이사슬 관계에 따라 그런 물고기를 먹은 다른 동물들도 죽어있고. 청설모, 너구리, 할 것 없이 전부. 더 잔인한 건, 새만금 사업단에서는 그러고 나자 동네 주민들을 돈 주고 시켜 온갖 죽은 것들을 빨리빨리 수거해 없애도록 했어요. 얼마나 죽어갔는지 사진으로는 다 담지 못할 정도였죠.”

그는 해탈한 듯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언론에 얘기를 했는데도 ‘뭐 죽어야 될 거 죽은 거 아닙니까’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게다가 정부가 방조제로 바다를 막는 단계가 사실상 결정이 된 시점에는 어떤 언론도 비판적으로 보도하지 않았고요. 환경운동 단체도 전부 떠나고.”

그럼 환경단체는 왜 떠났을까? 실망감이 너무 커서? 최 작가가 대답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죠. 제 생각에는 어떤 사람들은 그게 직업인 거 같아요.” 그 말이 맞다. 어떤 ‘운동’들은 직업이 되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된 ‘운동’들도 취재 현장에서 많이 봤다.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뭔가 먹을 게 없으면, 기대가 없으면 떠나는 것이죠. 전부 그렇다고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그런 리더들도 존재하겠죠.”

고백하건대 그의 사진에서 고개를 돌린 적이 있다. 죽어있는 물고기, 죽어있는 새들은 조형을 이루고 있지만 죽어있는 눈조차 마주하기 힘든 나의 약한 비위를 원망하며. 그런 대상들에 그는 어떤 감정으로 셔터를 누를까? 보는 이들에게 어떤 것들이 전해지길 바랄까?

“굉장히 가슴 아프죠. 눈물도 많이 나고 그래요. 저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담담해지지 않으면 셔터를 누를 수 없어요. 기록한다는 행위가 큰 힘을 가진다는 걸 알기에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강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굉장히 힘든. 저 개인은 힘이 없지만 기록은 굉장히 큰 힘을 가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요.”

그의 사명감이 기록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옳고 그렇다고 말하거나 규정을 내린다기보다 자연의 순환에 대한 요소들이 파괴되고 마치 그런 것들이 인간의 정의인양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생각했어요.”

최 작가가 말을 이어갔다. “역사는 잘못 써질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건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개선하는 방법은 증거가 있어야 하고요. 새만금에 대한 기록들을 통해 노태우 정권부터 보수든 진보든 다 거쳐 간 현대사 정치의 단면을 볼 수도 있겠죠. 죄다 정치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했지 그 사람들이 정말 우리들의 미래를 얘기했을까요? 그 바다를 잃어버렸다는 건 어마어마한 자원을 잃어버린 거에요. 사실 우리들은 잃어버린 걸 그냥 잊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살곤 하죠. 잃어버린 것들을 잃어버려선 안됐다는 걸 저는 제 사진이 증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해안 새만금,2004
서해안 새만금,2004~2008 ⓒ위클리서울/ 최영진

“지금이라도 새만금 해수유통 필요…생태계 파괴 심각해”

한편,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환경부는 새만금 해수유통을 지금처럼 차단하고 새만금호를 담수화할 때는 2030년까지 해수 오염이 더 늘 것이며 농업용수라도 가능한 최소 수질등급인 3, 4등급 달성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해수유통에 힘을 싣자는 얘기가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전라북도는 “해수유통할 경우 비용을 들여 새만금 개발 계획 대폭 수정해야 한다”며 사실상 반발하고 나섰다.

최 작가는 20년간 가까이 새만금 개발사업을 목도해오며 개발사업에 대해 비판했다. “새만금 개발사업은 애초부터 잘못된 발상이며 강하구를 막는다는 건 인간에게 있어 항문을 막은 것과 같아요. 그래놓고 건강해지길 바란다면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새만금 수질 관리 비용으로만 10여 년 동안 연간 3천억 원이 넘게 들어 결과적으로 3조 천 억 원 정도를 썼다고 들었어요. 제가 2008년 경 확인했던 서울시 오폐수 처리비용이 3천억 원이었거든요. 그런 비용들을 쓰면서 수질은 하나도 개선하지 못했어요. 제가 현장 취재를 많이 다녀 눈으로 확인했지만 새만금 뻘에 직접 들어가 보면 완전 다 썩어있고 냄새가 장난이 아니에요. 뻘을 보면 산소가 거의 하나도 없고 어디 달나라나 화성 같이 생물이 살 수가 없을 지경이죠.”

최 작가는 비판을 이어갔다. “농지 용도가 됐든, 산업용지 용도가 됐든, 관광지 용도가 됐든 굉장히 많은 토사를 새만금에 쌓아야 땅으로 만들 수 있어요. 앞으로도 어머어마한 면적이 남았지만 이미 주변 토사들을 다 쓰고, 금강하구에 있는 것들까지 퍼다 썼죠. 이제 훨씬 멀리서 토사를 가져오는 방법 밖에 없는데. 그러면 산을 없애거나, 운반비를 엄청나게 더 쓰거나 제2 의 환경파괴와 낭비가 되는 거죠.”

의문이 들었다. 20여 년을 넘게 걸린 사업이 아직 어떤 긍정적 효과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 이 시점에 이미 사업이 실패에 가까운 게 아닌가? 최 작가가 대답했다. “진즉 실패했죠. 전 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홍보비 들여 기업들 유치하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기업들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일본 섬유회사 두 개 정도 온 걸로 알고 있어요. 2023년에는 잼버리 대회를 유치했다고 하고, 새만금 국제공항도 계획이 확정돼 9천몇백억 원이 집행된 걸로 알고 있어요. 미안하지만 거기서 한 시간 즈음 거리에 무안국제공항이 있는데, 국제선이 하나도 취항하지 않아요. 명목은 국토 균형발전이라고 하죠. 전북엔 국제공항 있고 전남엔 없다니까.”

그는 ‘개발’이 가진 문제를 짚었다. “‘개발’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거에요. 실패가 됐든 예산이 날아갔던 다 훈장 받고 진급하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무원들이 진급하고 기업들도 거기서 국가의 돈을 받아 기업을 유지하고 하잖아요.” 사업이 실패했는데 훈장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그에게 맞장구쳤다. “사대강도 그랬잖아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포상을 받았다. 새만금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그게 소위 ‘개발’이라는 겁니다.”

그는 새만금의 목도자로서 대안도 제시했다. “지금 상태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지금까지 만든 땅만 쓰고, 그 지역들 해수유통을 원활하게 해서 수질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이 있겠죠. 그럼 아주 기형적인 바다가 만들어지겠지만 지금 단계에선 그거라도 최선책이라고 봅니다. 내 생각엔 그럼 현재 수문, 배수관문이라는 걸 동진강, 만경강 하구 쪽에 두 개 더 만들어 해수유통을 원활하게 해야겠고. 전문가들이 그걸 연구하겠지만 분명 방조제 뚝은 더 터야할 거에요. 그래야 수질 개선여지가 생길 만큼 해수유통이 가능해지고 퇴적물들이 살아날 수 있을 가능성도 있어요. 만약 그러면 생태계가 회복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게 하려면 또 어마어마하게 많은 예산이 필요하겠고. 우리가 열심히 채워야 하겠지만.”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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