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를 기다리지 않는다. 찰나를 담아내는 게 중요”
“이벤트를 기다리지 않는다. 찰나를 담아내는 게 중요”
  • 우정호 기자
  • 승인 2020.11.19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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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잃어버린 갯벌, 새만금’ 저자 최영진 사진가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1부에서 이어집니다.>

최영진 사진가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그의 ‘서해 프로젝트’ 사진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자연의 소재들이 물감이 되고 붓터치가 되는 순수미술 같았다. ‘다큐사진’이라는 액자를 입고 있음에도. 다만 궁금했다. 죽은 것들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 건가? ‘죽은 것들의 조형미’ 같은 불편한 뉘앙스의 단어들이 스쳤다.

“사실 죽은 물고기든 새든 찍은 형태의 종류는 굉장히 많아요. 그중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진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더 두는 것뿐이죠. 처음부터 징그러운 사진에 거부감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새를 찍은 사진 하나를 예를 들었을 때, 새가 날아가는 건지, 죽어가는 건지 모르겠는 형태를 찍으면 사람들이 어느 쪽인지 궁금해서 더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겠죠. 그러다 보면 생각해야 될 지점들이 생길 수도 있겠고. 그렇게 사람들이 스며들 여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가 답을 준다기보단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인물, 인간 보단 자연의 피조물, 자연 풍경이 많다. 그가 샌프란시스코나 파리 같이 인간군상들의 집합체 같은 도시들에서조차 자연과 풍경을 찍은 사진을 봤다. 물론 그의 훌륭한 사진집 ‘네 여자’가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도. 현대 철학의 어느 파편에는 인간 중심주의와 자연주의라는 이분법도 존재하던데, 이 경우라면 최 작가는 철저한 자연주의자에 가깝지 않을까?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그를 만든 가장 큰 축인가? 나 같은 ‘인간 중심주의자’들은 사실 풍경, 건축물들 보다 인간의 사진들에서 더 매력을 느끼기도 하니까.

“인간도 자연이라고 봐요. 비록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려는 속성을 가졌대도 인간의 본질은 자연입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돌아가셨다’는 표현도 있잖아요. 어디로 돌아간다는 건가요? 자연이겠죠. 인간은 자연에서 와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요. 다만 인간들은 욕망을 가졌죠. 라캉도 ‘욕망 이론’에서 많은 얘길 했지만, 현대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서로 지나치게 경쟁하도록 자극하는 측면이 있어요. 인간은 욕망의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에 저 바다도 막고 온갖 짓을 하는 거겠죠.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 순환을 파괴하는 인간들은 큰 문제고 오히려 자연을 통해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인간이 자연을 통해 배울 것들이 당연히 있고, 스스로 자연과 일체감을 느껴야 우리가 행복해지고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대답에서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인간의 만행을 자연을 통해 전달 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인간이냐 자연이냐 그것이 문제’ 같은 이분법이 무슨 소용 있나? 그가 기록하는 약방 기록 프로젝트나 경동시장 프로젝트도 사실 ‘인간’을 찍는 것 아닌가? 아니, 자연을.

“민속박물관 기록사업의 일환인 ‘약방 프로젝트’는 언젠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전국에 서른 여 군데만 남아있는 약방들을 찍는 거예요. 좋은 취지라고 생각하셔 오케이 하시는 주인 분들도 찍고.”

대답하는 말의 속도마저 적절해 핵물리학 이론이라도 수월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 작가는 지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경동시장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경동시장을 10여 년 다녔지만 사진 찍은 건 햇수로 6년이 됐어요. 5년 전보다 손님이 반이 줄었고, 같은 점포라도 업종이 바뀌거나, 사람이 바뀌거나 물건 종류가 바뀌기도 하고. 온전히 기록하는 중이에요. 사람들은 ‘경동시장’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막연하게 ‘그대로 있는 것’, ‘바뀌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거전하늘
거전하늘 ⓒ위클리서울/ 최영진

그가 여기서 보고 싶은 건 뭘까. 뭘 전달하고 싶은가. 자연에 관한 어떤 걸 전달하고 싶을까. 경동시장에서? 물론 약초나 재료라는 소재들은 매우 ‘자연적’이긴 하다.

“동물이나 야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사냥하는 게 나오죠. 치열한 사냥터의 섭리 상 공격자들은 사냥감을 잡아야만 살 수 있는데, 반대로 사냥 당하는 존재들은 잡히지 않아야만 그게 사는 거죠. 굉장히 아이러니한 세상의 공식이잖아요. 인간의 사회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원시적 삶조차 사냥이라는 측면에서 그들과 같고. 사냥하고 잡아서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시장이라는 공간에 기호적으로 남아있다고 봤어요. 경동시장 프로젝트는 그런 관점에서 시작해보게 됐죠.”

최 작가가 육안으로, 몸으로, 렌즈 안으로 느낀 경동시장은 따뜻하고, 절박하고, 간절했다. “자주 가니까 식구처럼 대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이 사진 찍어서 뭐하는 거야?’ 하고 묻는 어르신들도 계세요. 오랜만에 가면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 묻고. 얼굴 안다고 조금만 사려고 해도 몇 배씩 퍼주시니까 오히려 제가 ‘그만 좀 주시라’고 하기도 하고. 그런 수많은 따뜻함들을 사진 안에 다 담아낼 수 없을 거예요.”

“반면, 시장에는 어떤 절박함, 간절함도 있죠. 판매와 구매행위 이전에 재배, 채취, 도매 같은 과정들이 시각적으로 숨겨져 있고. 어떤 분들은 지팡이 짚고 제대로 걷기 힘든 데도 꼬박꼬박 사기 위해 시장에 나오고, 중풍에 걸려 몸을 덜덜 떨면서도 팔기 위해 자리를 지키는 분도 있고. 사야만 사는 쪽과 팔아야만 사는 쪽. 이런 것들이 원시적인 샤냥터의 모습이라고 보는 거죠.”

최 작가는 시장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그게 민중들의 역사고 굉장히 절박한 사람들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기록물의 가치가 충분하죠. 잘 찍고 싶어요. 생동감 있게, 치열하게, 다 들어있게.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특유의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바다 찍는 분이 그런 걸 왜 찍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난 약자들, 약한 자연, 무차별 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대상들 찍어왔는데 뭐가 달라?’ 그렇게 얘기했죠. 왜 다르죠?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들이 비슷한데.”

 

Gunsan
Gunsan ⓒ위클리서울/ 최영진
ⓒ위클리서울/ 최영진
새만금 ⓒ위클리서울/ 최영진

“이벤트를 기다리지 않는다. 찰나를 담아내는 게 중요”

지난 10월, 갤러리 아트세빈에서 열린 최영진 초대전 ‘거울 같은 바다에서 숭어가 뛰어 놀았네’ 전시 작가와의 대담 중 “어떤 것을 찍기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는 대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순간순간 충실하려고 하는데 어떤 이벤트적 요소를 기다리지 않고 순간순간 셔터를 누른다. 내 생각을 지나치게 가미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환되는, 자연이 순환되는 찰나를 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포착을 위해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의 ‘자연주의’ 혹은 ‘자연의 순환’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사진은 연출이 가능한 장르지만 저는 그런 게 좀 없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어떤 장면을 위해 며칠씩 기다리고, 어떤 상황이 펼쳐질 거 같으니까 막 달려가고 그러지 않아요. 성형하듯, 화장하듯 덧 씌워지는 부분이 있는 사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죠. 인물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어떤 포즈나 표정을 요구하지 않아요. 누가 카메라를 인위적으로 쳐다보는 순간에 찍지도 않고. 그게 어떤 면에서는 무심하게 보일 수도 있겠죠. 사진가와 찍는 대상의 눈빛이 마주쳐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 그렇지 않아요. 그저 대상의 성실한 모습을 저도 성실하게 찍을 뿐이라는 거죠. 그게 자연스러우니까. 인위적으로는 할 수 없어요. 가령 태양을 움직일 수 있나요? 내가 움직일 수는 있어도.”

이토록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자연의 목도자이자 관찰자라니. 몇몇 이름들이 머리를 스쳤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사진집 ‘뉴욕’ 시리즈에 거침없고 강렬한 이미지를 사진에 담은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클라인’. 혹은 1956년부터 전 미국을 두루 다니며 사진을 찍어 ‘미국인들(The Americans)’이라는 이름의 사진집으로 묶어서 출간한 로버트 프랭크라든가. 관찰자로서 대상을 포착한다는 점, 기록의 가치를 중요시 하는 점에서 그들과 같은 공기를 일부 느낄 수 있었다. 상업적 성공에서는 조금 다른 방향이겠지만.

“상업사진이라는 건 간단히 말해 ‘이렇게 원하는 바대로 찍어주면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개념입니다. 홍보의 목적이 강하고요. 지금 제가 하는 작업들은 누가 의뢰하지 않았고 제가 자발적으로 생각해 해내는 것이니 순수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상업사진과 서양의 상업사진은 조금 다르다는 점이에요. 서양의 상업사진은 좀 더 사진가들의 의도나 의중이 많이 존중되는 반면, 국내의 상황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맞춰 작업해야 하는 케이스가 훨씬 많죠. 심지어 서양의 사진들을 레퍼런스로 가져와 노골적으로 비슷하게 해달라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 보니 한국에 비해 외국은 ‘상업사진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좋은 예술작품들을 많이 내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순수예술을 향한 의지는 종종 ‘보답’에 가까운 형태로 이뤄지기도 한다. 지난 2009년, 그의 ‘한국서해-새만금(The West Sea of Korea-SAEMANGEUM)’시리즈는 세계적 권위의 국제 환경 사진상인 프릭스 픽테<The Prix Pictet(Pictet prize)> 사진상에 추천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최영진 작가는 “상업예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이 갖고 만들어주는 사진예술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영화 간판들을 전부 직접 그렸잖아요. 그걸 그렸던 예술가들은 분명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은 상업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근데 시간이 지나 이런 것들을 누가 기록하고 콜렉션 했다면 기록물로서 예술적 가치가 굉장히 크겠죠. 그런 경우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업사진과 순수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해요. 실제로 외국에 그런 케이스들이 많이 있어요. 처음엔 요구에 의해 돈 받고 찍었지만 아카이브 돼 좋은 예술작품이 되고, 상업사진 작가들의 예술성을 높게 쳐주는 경우가.”

사실, 최영진 작가는 반대로 순수예술을 추구했지만 그의 사진의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세계적 명성을 지닌 런던 버나드 제이콥슨 갤러리에서 Andreas Gursky, Gerhard Richter, Olafur Eliasson 등 거장 아티스트들과 전시에 참여했을 때, 전시에서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Tom Stoppard) 경에게 팔려 한바탕 이슈를 만들었다. 톰 스토파드 경은 영국 최고의 극작가로,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바 있다. 또, 콸라 룸프르 타워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을 건축했고, 911 테러로 무너진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다시 세우고 있는 세계적 건설회사 보비스 랜드 리스(Bovis Land Lease) 창업자 일가도 그의 사진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의도를 가득 섞은 상투적 질문을 잽 날리듯 던졌다. ‘어떤 사진가로 정의되고 싶은가?’ 혹은 어떤 ‘인간’으로. 그는 자유로운 숭어처럼 빠져나갔다. “제 이름은 저희 부모님이 정해주신 거고, 그렇게 불러지길 원하셨겠죠? 최영진이라는 이름으로. 약한 생명들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거기서 오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을 뿐인데, 그걸 보시는 분들이 알아서 불러야죠. 그게 좋을 거 같아요. 내가 어떻게 불러달라기보다.”

언젠가 그가 맛을 보여줬던 삼국시대 백제의 왕족들이나 맛봤을 법한 담금주들도, 삭힌 홍어들도 모두 최영진 같았다. ‘자연스러움’이라는 치명적 무기를 가진 그의 한결 같음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주상복합오피스텔의 수익률에 대해 말하거나, 4차 산업 혁명에 설파하는 그를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목도자로서 보여줄 자연의 ‘결정적 순간’들 만을 기다릴 뿐.

 

최영진 작가 프로필
<저서>
2017. 잃어버린 갯벌, 새만금
2013. West sea of Korea
2011. 돌, 생명을 담다 Stone, full of life
2009. 네 여자 Four Women
2008. 서쪽바다 새만금 The west sea 'Saemangeum'
2006. 야 Night shadows '夜'
2005. 막내 The Lastborn
2004. 슬픈열대, 그리고 회상 Trites Tropiques, Memoirs and
2004. 살아있는 갯벌 ‘라마르’ Living Tidal Flat 'La mar'
2003. 라마르 La mar

- 영국의 Benard Jacobson space gallery, Crane Kalman Brighton gallery에서 전시 작가로 활동 중이다.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갤러리 아트 세빈, 고창 고인돌 박물관 및 국내외 여러 갤러리에서 30회에 가까운 개인전을 열었다.
- Andreas Gursky, Gerhard Richter, Olafur Eliasson등과 런던 Jacobson gallery 전시 외에 다수의 그룹전을 하였다.
- 2010년 주영 한국문화원과 Royal British Legion이 주관하고 소더비 경매소와 British Korean Veterans Association이 후원하는 ‘한국 현대 작가 특별전’ 행사에서 작품 ‘새’로 최고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 2009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The prix pictet (Pictet prize) 사진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주요 소장처>
- 한국 신영그룹
-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Tom Stoppard) 경 
- 세계적 건설회사 보비스 랜드 리스(Bovis Land Lease) 창업자 일가 
- Crane Kalman Brighton 갤러리
- 런던 소아 아동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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