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 나이·외모…스캔들도 無
패션·자동차·금융 등 광고 종횡무진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가 소셜 미디어를 넘어 TV 광고와 라디오, 라이브커머스까지 출연하며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외모뿐 아니라 동작과 목소리까지 진짜 사람처럼 고도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현재 높은 인지도 대비 낮은 모델료 등을 이유로 가상 인간을 모델로 기용하고 있다. 사건 사고나 악성 소문에 휘말려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일이 없다는 것 역시 가상 인간을 선택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추후 가상 인간을 모델로 기용하는 사례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목소리를 탑재하게 되면 단순 사진이나 영상을 넘어 사람과 소통하는 ‘방송’까지 출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

1호 가상인간…영원히 22살 ‘로지’

로지는 국내 1호 버추얼 인플루언서다.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전문기업 싸이더스 스튜디오엑스가 개발해 2020년 8월 공개됐다.

외모는 M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3D 합성 기술을 적용해 만들어졌으며 나이는 22살로 설정됐다. 현재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2만명이다.

처음에는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여행이나 스포츠를 즐기를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인플루언서로 자리 잡았다. 2021년 신한라이프 광고에 출연한 후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로지가 등장한 신한라이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뮤직비디오는 공개 일주일 만에 조회수 300만회를 넘어서는 등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로지가 모델로 활약한 브랜드는 신한금융투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신한알파’, 준 명품 브랜드인 ‘질바이질스튜어트’, 뷰티브랜드 ‘헤라’, 정관장 ‘화애락’ 등이 있다.

로지는 올해들어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지엠의 글로벌 브랜드 쉐보레 ‘2022년형 볼트 EV’와 ‘볼트 EUV’ 광고에 출연했으며, GS리테일은 로지를 2022년 전속 모델로 내세웠다. 가장 최근에는 종합식품기업 팔도의 매운라면 ‘틈새라면’ 광고와 수출용 제품 패키지에 등장했다.

 

팔도 틈새라면 광고 속 '로지' ⓒ위클리서울/ 팔도 제공

팔도 마케팅 담당자는 “새로운 경험과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신규 브랜드 모델로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를 발탁했다”고 밝혔다.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앨범도 출시했다. 지난 2월 발매한 첫 싱글 앨범 'Who Am I'는 버추얼 휴먼으로서 느끼는 로지의 고민으로 시작해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진정한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당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수익금 전액을 글로벌 아동 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다.

로지는 지난 5월 8일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로지의 목소리는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와 네이버가 힘을 합쳐 만들었다. 네이버는 로지의 목소리를 ‘클로바 AI’ 음성합성 기술로 만들어 선보였다.

싸이더스 측은 로지에 어울리는 MZ세대 이미지에 적합한 목소리를 선택하고, 네이버는 네이버 클로바가 자체 개발한 NES(Natural End-to-end Speech Synthesis) 기술로 로지의 인공지능(AI) 목소리를 만들었다.

목소리까지 생긴 만큼 로지를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로지가 별도의 녹음 없이도 AI 보이스를 통해 음성으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그간 광고와 소셜미디어에 주력했던 활동 영역도 한층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승엽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 대표는 “로지는 수익성 창출보다는 앞선 기술력과 콘텐츠 역량을 바탕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영역으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버추얼 휴먼의 방향성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홈쇼핑 가상인간 루시
롯데홈쇼핑 가상인간 '루시' ⓒ위클리서울/ 롯데홈쇼핑 제공

루시·한유아 등…TV 등장

로지의 활약에 질세라 더욱 고도화된 가상 인플루언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2020년 9월 가상 모델 ‘루시’를 개발한 후 2021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소셜미디어 등에 공개했다.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29세 모델이자, 디자인 연구원으로 설정됐다.

루시는 실제 촬영한 이미지에 가상의 얼굴을 합성하는 ‘3D 애셋’ 기술을 적용했다. 피부 솜털까지 구현해 실제 사람과 유사한 모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롯데홈쇼핑 대표 쇼핑 행사인 ‘대한민국 광클절’ 홍보 모델로 선정돼 출연한 홍보 영상은 220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12월 22일 TV 홈쇼핑을 통해 루시의 목소리를 공개했다. 크리스마스 특집전 행사 중 방송 예고 영상에 루시가 출연해 다음 판매 상품을 안내했다. 회사 측은 루시의 외모, 직업 등 특징을 다각도로 고려해 최적의 목소리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입 모양이 발음대로 움직이도록 고도화된 기술을 적용해 사실감을 더했다. 이를 위해 롯데홈쇼핑은 실감형 영상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포바이포’와 협업해 모델링 정교화 작업, 모션 캡처, 영상 합성 등 VFX(시각 특수효과)를 활용한 최첨단 기술을 도입했다.

루시는 주얼리 브랜드 ‘O.S.T’, 외식 브랜드 ‘쉐이크쉑’ 등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영화 ‘수퍼소닉2’ 홍보에 나서는 등 유통업계를 넘어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온라인 게임 개발업체 스마일게이트는 콘텐츠 솔루션 기업 자이언트스텝과 버추얼 아티스트 ‘한유아’를 공동 제작했다. 한유아는 스마일게이트가 자체 개발한 VR(가상현실) 게임 ‘포커스온유(FOCUS on YOU)의 주인공으로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재탄생했다.

특히 인기 버추얼 셀럽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연기, 음반 발매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데뷔곡 ‘I Like That’을 발매하고 가수로 데뷔했다. 활동명은 YuA다. 회사 측은 신비로운 감성을 지닌 YuA 고유의 목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연령대 수백 명의 보이스 데이터를 취합한 뒤 인공지능(AI)으로 합성해서 최적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광동 옥수수수염차 모델 발탁된 '한유아' ⓒ위클리서울/ 광동제약 제공

음원 제작 총괄은 CJ ENM과 협업했다. 마마무의 ‘HIP’, ‘너나잘해’를 비롯해 화사의 ‘마리아’, ‘멍청이’, 청하의 ‘SNAPPING’ 등의 K-POP 히트곡과 ‘사랑의 불시착’,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등 다수의 드라마 OST를 작곡한 박우상 프로듀서가 작사, 작곡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국내 최고 댄스팀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의 댄서 도희킴이 안무를 총괄하며 YuA의 춤 동작을 만들었다. 아울러 뮤직비디오는 최근 ‘레드벨벳’, ‘하이라이트’, ‘아이즈원’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바이킹스리그(Vikings League)에서 연출을 맡았다.

한유아는 최근 광동제약의 ‘옥수수수염차’ 광고모델로 발탁돼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다. 옥수수수염차는 다이어트와 몸매에 관심이 많은 MZ세대 여성 소비자층에 인기 있는 제품으로, 그동안 배우 김태희, 전지현, 조보아, 선미 등이 모델로 활동했다.

‘옥쓔로 너만의 리듬을 만들어봐’를 슬로건으로 제작된 이번 광고는 기상·식사·퇴근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이 시간대별로 그려진다. 한유아는 댄스와 함께 MZ세대의 언어유희를 반영한 ‘옥쓔(옥수수수염차의 축약)’ 구호를 반복한다.

본편 광고 온에어에 앞서 지난 4월 공개된 티저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00만 회를 상회하는 등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제품에 관한 정보 없이 ‘옥쓔’를 반복하는 CF에 대한 궁금증과 버추얼 휴먼 모델에 대한 호기심이 반응의 주를 이루고 있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한유아는 가수로 데뷔했다는 점에서 다른 버추얼 인플루언서들과 차별화된다”며 “대중과 더욱 가까이 소통하겠다는 한유아의 도전과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MZ세대에 맞춘 새로운 방식으로 캠페인을 전개하는 광동 옥수수수염차의 도전이 시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만든 가상인간 '이솔'이 라이브커머스에 출연했다. ⓒ위클리서울/ 네이버 제공

사람 뛰어넘는 ‘가상인간’ 규모

네이버가 만든 첫 가상인간 이솔도 라이브커머스 쇼호스트로 데뷔했다. 네이버는 시각특수효과 전문기업 자이언트스텝과 공동개발한 이솔을 쇼라이브에 출연시켰다. 지난 3일 저녁 진행된 화장품 브랜드 나스 신상품 판매에 나선 것.

이솔은 리얼타임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된 풀(Full) 3D 가상인간이다. 네이버는 컴퓨터 그래픽 및 딥페이크 기술로 실제 사람 모델에 얼굴을 합성하는 일반적인 가상 인간보다 표현력이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모션 연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향후 네이버는 TTS(Text to Speech) 데이터를 연동하고 인공지능(AI) 보이스 기술을 결합하는 작업을 거쳐 더욱 고도화된 버추얼 휴먼을 구현해낼 계획이다.

네이버 측은 “성우나 시연자 없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사람과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완전 자동화된 버추얼 휴먼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며 “이솔 역시 쇼핑라이브를 시작으로 네이버의 다양한 콘텐츠 영역에서 활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실제 인간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마케팅 분석회사 하이프오디터는 버추얼 인플루언서 시장은 2022년까지 약 16조7820억원(150억 달러)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부터 매년 32.5%씩 성장해 2025년에는 버추얼 인플루언서 비중이 50% 이상 차지하면서 인간 인플루언서를 넘어설 것이라고 봤다.

수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블룸버그통신 역시 가상 인플루언서 시장 규모가 오는 2025년 1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견했다. 이는 같은 해 실제 인플루언서 시장(13조원) 전망치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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