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한국 사회에서 공권력의 폭력을 대표하는 것이 밀양과 청도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의 폭력입니다. 경찰은 밀양과 청도 할매들을 고립하고 에워싸며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가했습니다. 이들의 폭력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폭력뿐만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더 심각했던 심리적 폭력도 함께 했습니다. 송전탑 건설이 진행되던 마을들은 혈연과 지연으로 형성됐던 농촌공동체였습니다. 농촌공동체의 중심은 따뜻한 인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한국전력은 ‘돈’을 미끼로 마을공동체를 분열시켰습니다. 10년의 전쟁과 전쟁 후의 10년이 흐르면서도 분열의 생채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했던 주민들을 마을 안에서도 ‘타자화’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9일 제주 구좌읍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진입로에서 정치·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월정리 해녀들과 연대한다는 결의를 담은 문화제를 연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영식

제주도 월정리에서는 지난 5년간 하수처리장 증축공사 문제로 해녀‘삼춘’(성별과 관계없이 어른을 부르는 제주식 호칭)들이 기나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월정리 해녀삼춘들의 싸움은 월정리 해녀삼춘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제주도 현재의 모습이며,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을 거스르는 난개발의 모순들이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고 있는 싸움입니다.

 

해녀삼춘이 속이 빈 소라 껍데기를 들고 월정리 바다 오염 상태를 말해 주고 있다. 해녀삼춘은 하수처리장이 생긴 후 바다가 변했다고 말한다. 그 흔한 우뭇가사리가 보이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해녀삼춘이 "우리도 빈 소라 껍데기처럼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왔다. ⓒ장영식

제주도는 2005년 500만이던 관광객이 2013년 1000만 명, 2019년 15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의 역사는 이와 똑같습니다. 2007년 6000톤으로 운영을 시작한 동부하수처리장은 2014년 1만 2000톤으로 증설됐고, 2017년 2만 4000톤으로 증설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어느새 아름다운 섬이 아니라 관광객들의 오물과 하수를 처리하는 쓰레기 섬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제주를 제주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할 것인지 돌이킬 수 없는 훼손으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와 국토부는 제2공항을 건설해서 관광객 수를 더 늘리겠다고 합니다.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 역시 2만 4000톤 증설에 이어 3만 톤의 증설이 추가로 계획돼 있습니다.

 

월정리 해녀삼춘들의 외로운 싸움은 현재 세대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싸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장영식

동부하수처리장 2차 증설 계획이 발표된 2017년 전후로 제주 해녀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제주 해녀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주도는 해녀 박물관을 만들고 해녀 축제를 진행하는 데 많은 예산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를 지키며, 평생 물질을 해온 해녀삼춘들이 바다를 버리고 왜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농성을 벌이는지는 질문하고 있지 않습니다. 월정리에는 제주도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된 결정적 계기가 되어 준 용천동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7년 세계 자연유산 등재 과정에서 하수처리장이 있는 용천동굴 하류 구간을 누락시켰으며, 동부하수처리장 부지가 일부 포함된 문화재 보존 지역 내에 증설 허가를 위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도 않았습니다. 증설 면적이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대상이었지만 이를 실시하지 않고, 1997년 진행한 환경영향평가로 갈음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이처럼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을 강행하기 위해 정당한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윤여옥 해녀삼춘은 "우리 월정 해녀들을 지켜 주십시오. 세계 유산 용천동굴을 지켜 주십시오. 꼭 지켜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장영식

하수처리장이 세워지고 증설되면서 월정리 바다는 눈에 띄게 죽어갔습니다. 예전에 딱딱했던 바닷속 돌이 힘없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바다 생태계는 변해 가고 있습니다. 오분자기(떡조개)와 소라, 전복과 우뭇가사리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제주도민 전체를 위한다는 선의로 동의해 주었던 결과는 월정리 바다의 죽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민 약 750명이 사는 월정리 마을에 6만 명 규모의 하수처리 부담을 던지면서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제주도청은 바다 오염에 대한 직접 이해당사자인 해녀삼춘들의 만남과 대화를 거부하며 일방적인 공사 강행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폭력입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폭력적 정책을 폐기해야 합니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대화해야 하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정책을 진행하기 전에 반드시 우리가 결정한 정책이 앞으로 일곱 세대 이후의 미래 세대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대상이 아닙니다.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잠시 빌린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빌린 것을 되돌려 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빌린 것은 본래의 모습으로 훼손 없이 그대로 돌려줘야 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끊임없이 응답해야 합니다. 밀양과 청도 할매들과 월정리 해녀삼춘들의 싸움은 미래 세대를 위한 정의로운 싸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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