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수족관 물을 손으로 연거푸 떠 마신 국회의원 이야기가 우리 동네 바닷가 마을을 한동안 뒤집어놓았다. 최소한 백 년은 잊히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계속 전해질 것 같다는 전망도 나왔다. 물고기의 배설물과 각종 항생제 찌꺼기로 완전 더럽혀진 물을 사람이 마시기도 한다는 건 진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자기 철학 없는 사람이 정치판을 기웃거리다 보명 일정 부분 환장한 상태로 접어들기도 한다지만, 저렇게까지 인사불성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새삼스런 발견으로 사람들은 한편 놀라고 한편 어이없어 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IAEA 사무총장 ⓒ위클리서울/ 국제원자력기구, 도쿄전력 홈피, 디자인=이주리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직 라파엘 그로시라는 아르헨티나 출신 국제기구 수장이 일본의 핵물질 오염수 방출을 적극 응원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유엔으로 상징되는 국제기구의 위상은 사실 우리들 마음에 종교와도 같았다. 신뢰도 또한 100점 만점에 최소한 팔십 점 이상은 점하고 있어서 부정부패와 곧장 연결 짓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물론 스포츠 관련 국제기구에서 불편부당한 판정 시비와 뒷돈 거래 의혹이 계속돼 오긴 했지만, 스포츠란 아무래도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와는 그리 큰 관계가 없기에 이를테면 적당히 그냥 눈 감고 넘어갈 수도 있다는 마음들이었다.

하지만 핵물질을 규제 내지 관리 감독하는 국제기구라면 성질이 완전 달랐다. 같을 수가 없었다. 차마, 감히, 설마 뇌물 따위가 오갈 수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이 우선 강했고, 가능한 한 믿지 않고자 하는 마음자세도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런데 이게 뭐냐. 긁어 부스럼이라고나 할까. 흠칫 놀라는 순간이 왔다. 일본의 한 어촌 앞바다에 작은 어선을 띄워놓고, 어선 위에 작은 수족관을 얹어놓고, 수족관 속에 물고기 몇 마리를 넣어놓고 라파엘 그로시 그 양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바다를 가리키며 물고기는 아무 이상이 없고, 바다도 역시 이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열심하고 있는 그 모습은, 그것은 보고 또 보아도, 생각을 하고 또 해보아도 핵폭탄 제조를 규제할 목적으로 결성된 국제기구 수장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것은 뭐랄까. 생선 몇 마리 팔려고 나온 상인의 열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고, 생선의 특징과 영양성분 그리고 조리법을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나온 광고회사 직원의 모습을 닮아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위험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야 할 이유를 우리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인류를 멸절할 수도 있는 핵폭탄을 더 이상은 만들지 못 하게 해야 한다는 세계 각국의 공동인식 아래 만들어진 국제기구의 수장이지 보건 전문가는 아니고, 환경운동가도 아니며, 생태학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권한 밖의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와서 핵 오염수는 위험하지 않다는 내용의 설명회를 갖는다는 뉴스가 나왔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비밀을 용인하지 않는 인터넷 시대의 특징이라고나 할까. 날짜와 시간, 장소는 물론이요 어느 국적 어느 항공사의 몇 호기라는 정보까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서 유포되기 시작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이 정보의 신뢰성은 아직 반신반의였지만, 인터넷 기반의 개인방송들이 너도나도 생중계를 예고했고, 열렬한 박수와 고함으로 그로시 그 남자의 입국을 환영해 주자는 의견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갯마을에서도 환영 행사에 참석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금방 취소되었다.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는 비용으로 차라리 개인방송을 응원하고 후원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고 실용적이지 않겠느냐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었다.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에 따르면 그로시는 저녁 10시 20분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걸로 돼 있었다. 일부 개인방송은 8시부터 김포공항 내부와 주변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비치는 풍경은 안이나 밖이나 모두 불빛은 환하고,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적시고 있을 뿐, 너무도 한산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것이 국제기구 수장이 도착할 예정인 공항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거 혹시 가짜 정보에 속은 거 아냐? 차마 그런 얘기를 입 밖으로 내놓지는 못 하고, 그래서 더욱 긴장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 때 홀연 경찰 기동대 지휘차량이 들어서는가 싶더니 뒤를 이어 수송버스가 속속 들어왔다. 때를 같이 해서 방송 차량과 통신사 차량이 보이기 시작했고, 공항 내부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로시 고홈’을 목청껏 외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았다고 걱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 사람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들었던 피켓을 들고 나오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빈손이어서 아이고 이런, 하는 것이었다. 이런 걱정을 한 방에 해결해준 청년이 나타났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하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하는 남학생이 공항 내의 음식점이라든가 편의점 등등을 돌아다니며 골판지 상자를 얻어다가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바닥에 깔아놓고 ‘그로시는 회개하라’ 등의 표어를 쓰고 있을 때, 이것을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바닥에 엎드려 앉아 즉석 피켓을 만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6월15일 수협, 우리 수산물 지키기 운동본부 발대식
지난 6월 15일 수협은 우리 수산물 지키기 운동본부 발대식을 가졌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다음 날 새벽 일부 언론에서는 시민단체의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된 김포공항이라는 요지의 희한한 글을 쓰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로시는 도착 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서 11시, 12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아직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고, 경찰 병력만 계속 증원되고 있었다. 처음 50여 명쯤으로 보이던 경찰은 어느새 여기저기 도처에 쫙 깔려 있었고, 비가 추적거리는 깊은 밤에 이중 삼중으로 도열한 그 모습은 복장마저 진한 초록빛이어서 독일 병정을 연상케 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경찰은 어느 한 곳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귀빈 입국장 앞에 도열해 있다가 일반 입국장 앞으로 자리를 옮기고, 다시 귀빈 출구 앞으로 갔다가 다시 저벅저벅 일제히 움직여서 공항 전체를 포위하는가 하면, 다시 또 일반실 앞으로 갔다가 귀빈실 앞으로 이동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어서, 보는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판단을 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었다. 경찰의 눈속임 작전이라는 것을 간파한 몇몇 개인방송이 있어서, 그들은 재빠르게 공식 통로가 아닌 이른바 ‘개구멍’을 찾아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는 것을 시청자들은 나중에 알았다. 어쨌든 시간은 12시도 넘어서 새로운 날 1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때 어느 순간 마치 모래성이라도 무너지듯이 경찰 병력이 저벅저벅 우르르 공항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일부 언론은 그로시가 귀빈 출구도 일반인 출구도 다 포기하고 화물이 드나드는 화물 터미널을 통해서 빠져나갔다는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로시는 그날 밤 최소한 두 시간 가까이를 공항 내 귀빈실에 갇혀 있다가 겨우 탈출한 셈이었다.

개인방송 시청자들은 물론 그런 기사가 나오기 훨씬 전에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개인방송 중에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온 사람도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온 사람도 있어서, 화물터미널을 빠져나오는 그로시 일행으로 추정되는 고급 차량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다른 쪽에 있던 개인방송들이 또한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아직 베일에 가려 있었던 그로시 일행의 숙소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개인방송 운영자는 호텔 앞에서 밤샘 방송을 예고했고, 외교부 청사가 한눈에 보이는 광화문 근처 한 호텔에 투숙한 그로시 일행을 ‘환영’ 내지 꾸짖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새롭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싹 다 잊고 잠이나 자려고 했지만 울화가 치밀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고, 그래서 개인방송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허둥지둥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고 하는 칠십대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우선 관심을 끌었다. 미래는 살만큼 살아온 우리 어른들의 것이 아니라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이들의 것인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것을 짓밟으려 하느냐고, 그녀는 호텔을 향해 연거푸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이때 또 한 명의 강력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오십대의 남성으로, 경기도 시흥에서 새벽 2시에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고 하는 그는 십오 년 전에 결혼을 했고, 아이가 안 생겨서 내내 우울했는데 인공수정으로 간신히 삼 개월 전에 딸아이를 보았다고 했다. 딸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고 피가 막 솟아나는 느낌이어서 잠이고 뭐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어서 뛰쳐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변 건물이 흔들린다는 느낌이었고,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욕지거리는 또 얼마나 적나라한지 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무슨 판결문을 낭독한다는 느낌이어서 숙연하기조차 했다.

어쨌든 경찰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지휘부의 지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애당초 십여 명 정도였던 경찰은 어느새 백여 명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고, 그 중에 다섯 명 한 팀이 저벅저벅 다가와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운운하며 오십대 남성의 입을 틀어막고자 했지만, 오십대 남성은 이게 무슨 집시법 위반이냐, 나는 지금 혼자 나와서 혼자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합법을 주장했고, 이에 경찰은 일단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다가와서 고성방가로 범칙금을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는가 싶더니 정말로 범칙금 통지서를 뽑아서 내밀었다.

이것을 본 옆에 사람들이 그놈의 범칙금 내가 내주겠다고 삿대질을 하며 나섰고, 경찰은 한 시간 단위로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위협했고, 사람들은 좋다고, 얼마든지 해보라고 외치는 동안 날이 밝았다.

시간은 쏜살같이 잘도 흘러서 낮 12시가 지나고 오후도 한참 기울었지만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라파엘 그로시 그 사람을 정면에 세워놓고 따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공 남자는 그림자는 물론 뒷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김포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찰은 이중 삼중의 철통 경비로 시민들의 눈을 가렸다. 게다가 이쪽으로 가는 듯이, 저쪽으로 가는 듯이, 속임수를 몇 차례나 반복하다가 슬쩍 빠져나가는 매우 영악한 전술로 라파엘 그로시를 외교부 청사로 모셔다 주었다. 저녁에는 똑같은 방식으로 역시 그림자조차 안 보이게 호텔로 모셔다 주었고, 다음날 오전 민주당 의원들과의 면담을 위해 국회로 갈 때도 역시 그렇게 속임수 전략을 썼고, 국회에서 인천공항으로 모셔다줄 때도 역시 변함없는 그런 방식으로 뒷모습조차 드러나지 않게 해주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강력한 의문이 생긴다.

라파엘 그로시는 왜 그렇게도 시민들과의 직접 대면을 피하고자 한 것일까. 라파엘 그로시의 최대 특징은 아무래도 기자회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을 우선 꼽아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의 그는 기자회견을 한다고 식장에 나타났지만 자기 말만 하고 끝냈고, 한국에서의 그는 기자회견을 예고하긴 했지만 특정 방송과 통신사만을 골라서 그것도 시차를 두고 한 팀씩 차례로 불러서 이십여 분 내지 삼십 분 이내에서 단독 면담을 하는 매우 독특한 방식을 구사했다.

라파엘 그로시는 자신의 그런 밀행성이 더 큰 의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훨씬 큰 뭔가 다른 이익이 있었던 걸까? 도대체 그는 왜 한국 땅을 밟았던 거야?

어쨌든 그는 매우 큰 의혹만 남겨놓고 뉴질랜드로 떠났다. 그의 그런 완벽한 밀행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한국 정부의 극소수 관계자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하는 새로운 의문을 붙잡고 낑낑거리게 되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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