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얼론(Alone, 2020)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뤘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 늦잠을 자고 일어나 천천히 세면을 하고 거실로 나와 TV를 튼 에이든. 하지만 TV를 켜자마자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재난방송이 흘러나온다. “비상 상황, 훈련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이라는 자막과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얼론(Alone, 2020)은 바이러스 팬데믹을 묘사하듯 바이러스 감염자들로 가득 찬 세상을 구현했다. 영화는 제목처럼 바이러스 감염자들 사이에서 홀로(alone) 남겨진 한 남자가 또 다른 생존자인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나만 빼고 다 감염된 도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세계에 홀로 남겨진 남자의 이름은 에이든. 그는 재난방송과 함께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도대체 감을 잡을 수 없다. 테라스로 나간 에이든은 공중에서 휘청거리며 곡예를 하듯 빙글빙글 돌다 화염에 불타 추락하는 헬기를 보고 몸을 낮춘다. 살고 있는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수의 사람들이 밑으로 뛰어서 내려가고 있다. 어디를 가는 건가 보고 있는 찰나 한 노파를 쓰러뜨리고 사람들이 그 위로 달려든다. 안돼,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거실로 들어오자 웬 남자가 침입해 더 놀라게 한다. 당신은 누구지? 옆집에 사는 ‘브랜든’이라는 이 남자. 이 남자도 갑자기 자신의 룸메이트가 공격해 놀라 이곳으로 왔다고 설명한다. 아까 켜둔 뉴스에서는 방송국이 잠시나마 정상 복귀된 듯 앵커가 현재 팬데믹 상황을 설명해 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발생했으며 바이러스는 빠르게 사람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감염 경로는 주로 감염자에게 물려서 상처가 나는 경우다. 물리거나 긁힌 자국으로 혈액을 통해 전염되고 감염이 되면 사망할 수도 있지만 감염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 증세는 눈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다.

 

영화 '얼론' 포스터ⓒ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에이든은 방금 들어온 옆 집 남자를 살펴봤다. 그는 귀 뒤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칼을 들고 남자를 위협하는 에이든. 남자는 나가고 싶지 않아, 라며 애원했지만 이미 그의 두 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 옆집 남자는 복도에 있던 감염자들에게 물어뜯겨 사망한다. 뉴스는 계속 흘러나온다. 중요한 것은 숨을 곳을 찾아서 숨고 감염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말이 스스로 보호하는 것이지 사실 무정부 상태를 선언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각자도생이라는 건가. 술에 빠져 실의에 잠겨있던 에이든에게 부모님의 문자가 도착하고 부모님은 자신들은 잘 있으니 몸을 잘 챙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깜짝 놀라 급히 전화를 해보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바이러스 팬데믹이 발발한 지 7일째.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 제대로 먹지 못해 목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는 주인공이다. 에이든은 뭐라도 해야 했다. 아무하고도 대화를 하지 못한 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자신과의 대화라도 해야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에이든은 노트북을 켜고 자신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음성 녹화를 하며 기록해 보기로 한다.
 

팬데믹 발생 42일째, 끝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 사랑

힘겹게 버티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린다. 에이든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라며 아들을 달랜다. 하지만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다음은 비명소리였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살 희망도, 의지도 없다. 물리적으로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뉴스도 끊겼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환풍구로 여자 감염자가 침입해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으니 집도 더이상 안전하지도 않다. 살아야 할 의지가 꺾인 에이든은 천장에 줄을 매달고 목에 건다. 의자를 쓰러뜨리기 전, 그는 건너편 건물에서 어떤 여자를 발견한다. 금발에 아름다운 젊은 여성이다. 에이든은 얼른 줄을 치우고 얼굴을 매만진 후 여자를 살핀다. 이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가 이성이라니 사실 좀 놀랍기도 하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자가 맘에 든 에이든은 대화를 시도하며 여성과 친해진다. 필요한 물품도 줄을 이용해 건네주고 연습장에 글을 써서 창문에 기대 대화를 하며 생존을 이어간다. 건너편 건물에 살고 있는 여성의 이름은 에바. 에이든은 둘이 같이 살기 위해서는 식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밖으로 나온다. 빈 집인 줄 알고 들어온 집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다. 하지만 주인은 살아있다. 집주인인 노인은 에이든에게 친절하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며 술까지 가져가라고 한다. 하지만 꿍꿍이는 따로 있었다. 노인은 에이든을 안심시킨 후에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내리쳐 침대 기둥에 묶었다. 침대에는 한 노파가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노인은 이미 감염자가 된 부인에게 에이든을 먹이로 주려고 한 것이다. 노인이 한 눈 팔고 있는 사이에 도망친 에이든. 이번에는 에바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다. 집에 감염자들이 대거 쳐들어온 것이다. 에이든은 그 어떤 것도 계산하지 않고 에바에게 달려간다.

 

영화 '얼론'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바이러스 감염자들의 특징은 말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벽을 타고 빠르게 움직인다. 보통 인간과 같으면서도 또 다른 특성을 가졌다. 에이든은 벽을 타고 올라와 공격하는 감염자의 머리를 내리치고 소리로 유인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등 맹활약을 벌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 명의 남자가 다수의 감염자들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결국 에이든도 감염자에게 물리게 된다. 그는 마지막으로 에바의 얼굴을 보고 난간에 떨어져 죽기로 결심한다. 붉게 물든 피가 에이든의 티셔츠를 물들인다. 에바의 얼굴도 눈물로 얼룩진다. 티셔츠를 벗고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에바는 에이든의 몸에 상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떨어지는 에이든을 저지한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두 사람. 사랑이다. 그런데 이처럼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사랑이 이런식으로도 싹틀 수 있는 것일까? 하긴 사랑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빠질 수 있다. 사실 젊고 건강한 두 미혼 남녀가 앞뒷집에 살아서 세상이 멸망되기 직전 서로 사랑을 빠지는 스토리는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지긴 한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 험난한 세상에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희망적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희망을 꿈꾸며 하루를 사는 존재 아닌가. 바이러스든 전쟁이든 인간을 모두 멸망시키는 그 무엇들이 두렵다. 하지만 홀로 생존해서 남는다는 것도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아주 실낱같은 작은 희망이라도, 그런 사랑이라도 있기를 항상 꿈꾸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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