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상철거논란, 1930~1940년대 국제정세와 소련 상황에 대한 무지의 소산”
“흉상철거논란, 1930~1940년대 국제정세와 소련 상황에 대한 무지의 소산”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3.09.26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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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홍범도 장군 전문가’ 장세윤 교수-1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홍범도 장군은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소위 ‘의병대장’으로 왜적과 여러번 싸워 대승을 거두어 상대할 적이 없었고, 왜인들이 ‘날으는 장군 홍범도’라고 부르며 감히 접근이나 저항하지도 못했습니다. 또 우리의 이번 독립전쟁의 제1회전이라고 할 수 있는 ‘봉오동 전승’ 역시 홍범도의 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홍범도의 일편단심으로 인한 것이며, 홍범도의 마음속에는 오직 나라가 있을 뿐이고, 자기 몸과 가정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하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독립운동에 열성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칠 정도로 헌신하고 있으니, 우리 동포 모두가 숭배하고 믿지 않는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을 후원한 간도 국민회장 구춘선이 봉오동전투 직후, 그의 인품과 헌신, 나라사랑에 대해 남긴 찬사다. 홍범도 장군은 가족까지 희생시키면서 민족해방운동과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죽음을 각오하고 헌신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평가에는 이견이 없지만, 최근 흉상 이전 문제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 전문가’ 장세윤 교수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홍범도 장군 등 5명의 무장투쟁 지도자들의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흉상 철거에 대해 독립운동가 단체와 역사학계 등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방부가 홍범도의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을 문제 삼았으며, 독립운동에 대한 색깔론 제기가 윤석열 정부와 공감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지적에서다.

육사와 국방부는“홍 장군은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역사학계는 “다양한 자료를 비교 분석해 자유시 참변의 기본 성격이 통합 방법을 둘러싼 독립군 부대들의 내분이었음을 밝혀냈다”며 “사망자를 낳은 무장해제의 책임은 고려혁명군 지휘부에 있었으며 홍범도는 유혈 사태를 우려했고 무장해제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홍범도 장군 연구 권위자인 장세윤 교수(‘홍범도-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영웅’의 저자, 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사회나 국가에서는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희생 헌신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하다”며 “홍범도처럼 190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줄기차게 죽음을 각오하고 독립운동, 민족해방운동에 혼신의 정열과 노력을 기울인 인물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설령 열성 당원이라고 해도 그의 입당은 해방 이후 북한정권의 수립에 기여하거나,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 사실이 전혀 없다. 따라서 별 문제 될 것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양심과 학문, 예술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특정 개인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특정 행위로 결과하지 않는 한 처벌이나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장 교수는 “근래 특정 인물의 기념물 이전 설치 문제를 두고 이런 치졸한 논란이 벌어진 적은 없다” “최근 인천시 중구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원수 동상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성립 이후 과거 문재인 정부의 ‘흔적 지우기’로 비쳐질 수 있는 일련의 흐름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육사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이전 설치 문제도 충분히 윤석열 정부의 전 정권 ‘흔적지우기’로 인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련 공산당원’이라서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1930년대~1940년대 전반기 국제정세와 당시 소련 상황, 국제관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이번 논란은 철지난 반공 냉전논리, ‘수구꼴통’의 낡은 억지논리에서 비롯되었다”며 “대한민국은 과거 적성국으로 분류되었던 소련(러시아)과는 1990년에, 6.25전쟁 당시 적대국이었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도 1992년 수교한 UN회원국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이런 논리라면 러시아, 중국과도 단교하고, 일체 교류・교역하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설립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2005년 12월부터 2년간(비상임) 활동했고, 2019년 9월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로구 자문위원을 맡아 남북통일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몇해 전 개봉된 영화 ‘봉오동 전투’ 자문을 맡기도 했다. 다음은 장세윤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장세윤 교수의 저서 '홍범도(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영웅)' ⓒ위클리서울/ 역사공간

- ‘홍범도(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영웅)’의 저자이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등 5위의 흉상 철거·이전을 결정했는데,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 이왕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장군 등 5위의 흉상을 설치했으면, 잘 관리하고 잘 활용해 육사 생도들이 늘 가까이서 오고 가면서 보고, 그 분들의 애국애족 사상과 구국 결단의 살신성인의 실천, 희생과 봉사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굳이 구차하고 철지난 냉전논리와 편협한 반공논리로 홍범도 장군 흉상만 육사 밖으로 옮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우리 군과 육사의 설립, 운영 방침이나 이념에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적혀있다.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임시정부는 좌우파 통합 정부였고, 홍범도의 독립군은 임시정부의 방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현재 대한민국 정부(국가보훈부)는 일제강점기(대일항쟁기)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였다 하더라도, 해방 이후 북한정권의 성립과 무관하다면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나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육사는 홍범도가 단지 과거 소련공산당 당원이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는데, 누구의 발상인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치졸한 발상이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홍범도 장군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결코 용인할 수 없다.
 

- 5인 독립운동가 흉상을 철거하고, 그 대신에 ‘6.25전쟁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이나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미국의 맥아더 장군 흉상 설치를 검토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 이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백선엽은 일찍이 정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인물이며, 6.25전쟁 당시 공적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또 과거 인천 선인학원 운영 등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맥아더 원수 역시 논란이 많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육사 구내 동상 설치 문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 좌우 문제를 막론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논란은 늘 벌어졌다. 피곤한 논쟁이라는 지적도 있다.

▲ 근래 특정 인물의 기념물 이전 설치 문제를 두고 이런 치졸한 논란이 벌어진 적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인천시 중구 자유공원에 있는 맥아더 원수 동상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성립 이후 과거 문재인 정부의 ‘흔적 지우기’로 비쳐질 수 있는 일련의 흐름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육사 독립운동가 5인 흉상 이전 설치 문제도 충분히 윤석열 정부의 전 정권 ‘흔적지우기’로 인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련 공산당원’이라서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1930년대~1940년대 전반기 국제정세와 당시 소련 상황, 국제관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다. 철지난 반공 냉전논리, ‘수구꼴통’의 낡은 억지논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과거 적성국으로 분류되었던 소련(러시아)과는 1990년에, 6.25전쟁 당시 적대국이었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도 1992년 수교한 UN회원국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이런 논리라면 러시아, 중국과도 단교하고, 일체 교류・교역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논리라면 9월 23일 개막한 중국 항저우(杭州) 아시안게임에는 왜 참가해야 하는가?
 

- 홍범도 장군에 대한 논란의 중심은 자유시 사변(일명 자유시참변, 흑하사변) 가담설에 있다. 논란이 될 만한 타당성이 있는지.

▲ 글자 그대로 논리적 타당성이 전혀 없다. 특히 근래 일부 언론이나 특정 인사들이 제기한 홍범도의 ‘자유시사변(1921년 6월 28일)’ 가담설이나 ‘자유시 학살' 개입설, ‘한국독립군 대학살’, ‘독립군 학살 공모’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허재욱(許在旭, 흔히 허영장[許營長]으로 불림) 휘하 부대 등 홍범도 관련 독립군부대가 이 사변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허재욱의 의군부(義軍府, 무장 해제 당시에는 ‘총군부’소속) 독립군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홍범도 부대와 함께 독립전쟁에 참가한 부대였기 때문이다. 자유시사변 당시 홍범도는 장교들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중에 홍범도가 자유시사변 관련 고려혁명군사법원 재판관의 한사람으로 참석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판 대상자 50명 가운데 실형(징역형 2년, 1년)을 받은 독립군은 8명 뿐이었다. 이들도 얼마 뒤에 곧 풀려났다. 자유시사변 직후부터 상해파 등의 반발과 상해파 대표단의 외교적 노력, 코민테른 한국위원회의 ‘한국문제 결정서(1921.11.15.)’ 등으로 이 재판의 결과가 사실상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 홍 장군의 봉오동 전투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봉오동 전투, 청산리독립전쟁 등의 활약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을 후원한 간도 국민회장 구춘선은 봉오동전투 직후, 그의 인품과 헌신, 나라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최고의 찬사를 남겼다. “홍범도 장군은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소위 ‘의병대장’으로 왜적과 여러번 싸워 대승을 거두어 상대할 적이 없었고, 왜인들이 ‘날으는 장군 홍범도’라고 부르며 감히 접근이나 저항하지도 못했습니다. 또 우리의 이번 독립전쟁의 제1회전이라고 할 수 있는 ‘봉오동 전승’ 역시 홍범도의 공입니다. 이 모든 것이 홍범도의 일편단심으로 인한 것이며, 홍범도의 마음속에는 오직 나라가 있을 뿐이고, 자기 몸과 가정은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하고 마음과 몸을 다하여 독립운동에 열성을 다하여 죽은 후에야 그칠 정도로 헌신하고 있으니, 우리 동포 모두가 숭배하고 믿지 않는 자가 없을 지경입니다.”
 

- 홍 장군은 민족의 영웅에서 북한 정권과 관련된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히는 분위기다. 조율이 필요할 것 같은데.

▲ 홍 장군이 1927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했으니, 겉으로 보면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가 공산주의 이념을 철저히 신봉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전파, 실천하려 했는지는 의문이다. 1927년 입당 당시 그는 나이가 만 59세, 우리 나이로 60세 환갑일 때였다. 100년전 당시에는 나이 40이 넘으면 ‘노인’으로 취급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는 이미 군에서 예편해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콤비나트(집단농장) 지도자로 나이 많은 동지들과 함께 농업에 종사하며 항일투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1922년 말 소비에트러시아(소련)가 성립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농업에 종사하는 동지들의 생계를 책임진 위치에서 소련 지방정부 당국의 지원을 받고, 개인적으로는 연금을 받기 위해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것으로 보인다. 입당 전후시기에 그는 한인 부대의 ‘명예군인’으로 3.1절이나 8월 29일 국치일이 되면 한인 동포사회의 기념행사에 나가 과거 항일투쟁 당시 회상담을 즐겨하며, 동포들의 항일투쟁 분위기를 돋구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소련공산당에 입당한 것을 그렇게 문제시해야 할까? 설령 열성 당원이라고 해도 그의 입당은 해방 이후 북한정권의 수립에 기여하거나,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 사실이 전혀 없다. 따라서 별 문제 될 것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양심과 학문, 예술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특정 개인이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특정 행위로 결과하지 않는 한 처벌이나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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