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한반도 전문가’ 조성렬 교수-2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조성렬 교수 ⓒ위클리서울/ 조성렬 교수 제공

- 다소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북한과 어떤 조건에서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현재 윤석열 정부가 내걸고 있는 담대한 구상의 비전은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이다. 정부는 ‘조건 없는 대화’를 제시하면서, 남북대화의 장이 만들어져 북측이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그에 상응해 남북관계 정상화와 인도적 협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해, 북한이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를 취한다고 명확히 하지 않으면 평화‧번영을 위한 남북관계의 추진도 없다는 의미이다. 북한 김여정 당 부부장이 ‘담대한 구상’을 가리켜 ‘비핵‧개방‧3000구상의 판박이’라고 비난한 데서 보듯이, 북한의 이른바 ‘합리적 안보 우려’를 고려하지 않은 담대한 구상은 남북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그러니까 남북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와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맞교환할 수 있는 대안의 토대 위에서 인도적 협력과 인적, 경제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남북한의 이해를 조정한 합의사항들은 ‘4.29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서’에 기본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에 북한이 핵무력을 한층 고도화하고 한미가 연합군사훈련을 고강도로 재개하는 등 안보상황도 변했기 때문에, 기존 남북 합의문의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는 정권을 초월해 남북 합의사항들을 재확인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현재의 남북상황을 고려했을 때, 남북한은 ‘9.19군사합의서’ 준수를 재확인하고 더 나아가 북한은 한국에 대한 ‘선제 핵불사용 원칙’을 공언해야 한다. 이처럼 최소한도 남북한이 상대를 선제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점이 확인되었을 때 남북대화의 재개가 가능할 것이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전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모호해진 듯한 느낌이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러시아는 한국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작년부터 경고해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작년 10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발다이 회의 연설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나 포탄을 제공할 경우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지원하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반문했다. 지난 4월 19일에는 러시아 대통령을 역임했던 메드베데프 연방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이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면, 러시아 무기를 북한에 공급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게 인도적 지원, 군수물자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확대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을 때 구체적인 면담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살상무기 지원 문제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까지만 해도 한‧러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 얼마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우리 정부 입장에선 ‘대 러시아-대 북한’ 정책에 있어 난감해진 상황일 수 있겠다.

▲ 2023년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면담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러시아는 북한의 ‘7.27 전승절’ 행사에 7월 25~27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보내고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또한 7월 26일 평양에서 열린 ‘무장장비 전시회 2023’에 쇼이구 국방장관이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관람했다. 이 무렵 북한산 포탄의 러시아 제공에 합의했고 실제로 러시아로 수송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은 9월 10일 인도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내년도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이후 20억 달러를 유상으로 제공한다고 발표하면서다. 공교롭게도 한국정부의 우크라이나 대규모 원조가 발표된 직후인 9월 10~19일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 극동지역을 방문하고 9월 13일에는 푸틴 대통령과 북‧러 정상회담을 가졌다. 최근 북‧러 관계가 급격히 가까와 진 것은 러시아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발해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로켓포탄 등 군수물자의 공급을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북한과 접근했고, 국제적으로 고립무원 상태에 있던 북한은 한‧러 관계 악화를 틈타 첨단군사기술과 식량 등의 지원을 받기 위해 러시아에 접근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북‧러 접근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전망하자면.

▲ 그동안 러시아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유엔 결의에 따라 북한에 대한 무기 제공을 자제해 왔지만,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한다면 공언한 대로 북한의 재래식무기 현대화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그밖에도 대규모 식량 원조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북한은 어느 나라보다도 역공학 방식의 무기 제조에 능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 속에서도 북한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핵탄두는 물론 각종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초음속미사일, 심지어 군사정찰 위성까지도 역공학 방식으로 제조해 왔다. 지금 북한은 두 차례의 우주로켓 발사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군 당국의 평가대로 제대로 된 군사정찰 위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가 공공연하게 북한군의 현대화를 지원한다면 북한의 첨단군사력은 한층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 분명하며, 이는 우리나라의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럴 경우 북한은 더더욱 남북관계의 개선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 국제정세가 복잡하다. 한-러 관계, 현재는 어떻게 평가하고 앞으로는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지 조언하자면.

▲ 미-소가 중심이 됐던 강대국-강대국 간의 냉전이 종식된 이후, 오히려 강대국-약소국 간의 전쟁이 증가하고 있다. 2001~2021년 사이에 있었던 미국이 관여된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과 2022년부터 전개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2022년 10월 제20차 중국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타이완 무력통일’ 시사 발언 등은 모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가 직접 관여된 전쟁이고 및 중국이 관여된 전쟁 가능성이다. 이런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1945년 창설 이래 국제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유엔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금년 4월 1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의 조건으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민간인 대량학살, 전쟁법규에 대한 심각한 위반’을 이유 삼았다. 그런데,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서는 “민간인과 핵심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러시아의 행위를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하며 “러시아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에 단호히 대응”한다고 밝혀 이미 위의 조건을 충족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만약 윤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면 설사 우르라이나 전쟁이 끝난다 하더라도 양국관계는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전 끝난 북‧러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한국 측의 태도에 따라 러시아의 대북 지원의 범위와 수준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한다면 러시아는 대규모 식량지원을 포함해 첨단 군사기술과 최신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경제 지원에 그친다면 러시아의 대북 지원도 대규모 식량 지원이나 몇 가지 군사기술의 지원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향후 한‧러 관계의 개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 등 직접 전쟁에 개입하는 모양새는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떤 식으로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나치세력들의 러시아계 및 친러시아 우크라이나인들의 학살을 막기 위해 벌인 ‘특별군사작전’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침략행위이기 때문에 이미 점령한 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2년 이전의 우크라이나 영토를 기준으로 러시아군대가 철수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정을 조속히 체결해야 한다. 다만 2014년에 합병한 크림반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국가수립 이전에 러시아 영토였다는 점, 러시아의 군사적 요충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평화협정에 포함시키지 말고 양국 간의 장기 해결과제로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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