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한국이라는 섬

긴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한국은 정말 이제 섬과 같은 나라구나, 비행기가 아니고서는 돌아올 방법이 없구나 생각하며 왜인지 늘 밤 풍경으로 기억되는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며 피곤한 얼굴을 비추어 본다. 이 나라에서는 직접 북쪽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된지 거의 70년, 북쪽으로 올라가 망원경으로 비추어 본 풍경은 황량하고 거대한 유사 사회주의 선전문구들. 한국이 점점 더 섬나라 특유의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그 특징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섬은 바다가 아니고서는 직접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땅을 빙빙도는 지역이고,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경계를 분명하게 아는 땅이고, 자칫하면 쉽게 폐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곳이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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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서야 내가 한국에서 어떤 답답함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른 나라에서 만날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가득 담아 사랑햇지만 종종 답답하기도 했던 ‘한국적인 것’의 바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 다른 것도 있는 건데, 다르게 살아갈 수도 있는 건데. 평소에 서울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으면서 반도 남쪽에 고립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는 게 때로 웃기지만,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어떤 분명한 영향이 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한국도 다른 나라와 직접 맞대고 사람들이 걸어 이동하는 국경을 가졌다면, 한국은 지금과 같았을까? 무엇이 어떻게 달랐을지는 모르겠으나, 또 그 하나로 한국적인 무엇을 규명하기는 한참 부족하겠지만, 나는 국경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고 어렴풋하게 생각한다. 나와 다른 삶이 직접 걸어들어오는 통로가 바로 국경이니까 말이다.

그냥 좀 ‘다른 것들’을 보고 싶었다는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 갑자기 무 자르듯 마주치는 모르는 시간과 낯선 공기도 좋지만, 이왕이면 그 변화를 조금씩 느끼고 싶었다. 여행하며 비행기보다는 주로 육로를 선택했던 이유였다. 옛날 보부상들처럼 봇짐 메고 걸어다닐 수는 없었으므로, 또 자전거만을 타고 다닐 체력과 용기는 없었으므로, 차나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다니다보면 풍경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진다. 사람들의 표정과 문화와 말투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단절되다가, 갑자기 이어진다. 참 제각각으로 생긴 것들이 이상하게도 이어져있구나. 나는 그 ‘제각각’과 ‘이어짐’을 느끼고 싶어 여행을 했고,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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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 정해진 여행을 끝마치면 한국이라는 섬으로 다시 돌아왔다. 비행기가 아니면 돌아오기 힘든 나의 한국. 배로 나가고 들어오는 것도 알아보았지만 결국 해보지는 못했다. 몇 년을 항해사로 일했던 나의 친구에게 세계는 조금 다르게 보일까. 나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공중에 붕 떠서 갑작스러운 단절을 겪고, 지난 날들이 꿈이었나 꿈이었다고 하기에는 많이 피곤한데 생각하며 한국은 참 섬 같구나 다시 한번 생각한다. 통일전망대에서 본 파리행 KTX 모형에 탑승하지는 않아도 좋으니 이 나라에도 국경이 생기면 좋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국경이 문제인가. 또 나라가 섬이면 어떤가. 그냥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정신적인 국경이 내게도 자주 나타나면 좋겠다. 스스로를 직접 볼 수 없는 우리에게, 무언갈 배우게 하고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다. 국가와 문화도 그렇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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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의 기억

우즈베키스탄을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잘가 나의 친구, 거기서도 잘 살아 이런 감동적인 말을 해주지는 않았다. 내가 떠난 것은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는데 나는 비행기 시간을 왜 이렇게 잡았을까 역시 어딜가든 돈이 문제구나, 딱히 돈이 많이 없어서 이렇게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은 큰 역할을 하는구나 하며 새벽 알람에 눈을 떴다. 이곳저곳 벽에 붙은 2층 침대에서 사람들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떠나기 직전에 보게 된 것은 친구들이 잠을 자는 모습. 이런 작별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서둘러 준비해 게스트하우스의 중정에서 느끼는 새벽 공기는 찼고 잠깐 우수에 젖으려고 했을 때 중정 어딘가에 앉아 있는 세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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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나를 배웅하려고 그가 깨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조용히 웃으며 나를 배웅했다. 그 시니컬하고도 다정했던 아프가니스탄계 캐나다인의 미소가 얼마나 부드러웠던지, 나는 그때 그의 얼굴을 아직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는 별 말은 하지 않았고 문까지 나를 따라나와 조용히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클럽에서 춤은 잘 못추던 세이, 그러나 착한 세이. 종종 페이스북으로 그의 안부를 확인하곤 했었는데 이제 페이스북 시대는 내게 지나버렸고,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하는 중에 연락이 끊긴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그때 그의 배웅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그 작별의 순간은 무척 소중했다고 세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여기에 쓴다. 그렇게 다시 정신없는 공항, 모든 공항과 비행기 특유의 무국적의 분위기, 그리고 불현듯 어둠 속에 나타나는 나의 한국.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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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한국으로 입국했을 때는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한국에서 20번째 확진자가 나왔고, 점차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을 참이라 나도 맞추어 다시 돌아왔다. 인도 사람들은 그들이 곧 직접 겪을 전염병의 미래를 모르고 한국 가면 큰일난다며 차라리 인도에 망명을 신청하고 더 있으라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하기도 했다. 됐어요, 됐어 말들을 넘기며 인도 첸나이의 길거리에서 나는 마스크를 사러 다녔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마스크를 인도의 구멍가게에서 묶음으로 샀다. 멀쩡해 보이는 애가 이걸 왜 이렇게 사가나 싶어 하는 인도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네고, 전염이 시작되었다는 나의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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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항 출국대에는 이미 마스크로 중무장을 한 공항 직원들이 가득했다. 내 차례가 되어 출국 도장을 받으러 앞으로 나가자, 마스크를 헐겁게 내리고 앉아 있던 한 공항 직원이 내 얼굴을 보고 황급하게 마스크를 고쳐 썼다. 저 중국인 아닌데요, 라고 말하자 그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으며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렴. 그렇게 다시 모든 공항과 비행기 특유의 무국적의 분위기, 그리고 불현듯 어둠 속에 나타나는 나의 한국.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고, 나는 어딘가를 한참 떠도는 꿈을 꾸다 갑자기 깬듯 추위에 어안이 벙벙하다. 여행자는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배낭에 넣어온 채로, 나는 똑같은 곳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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