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후쿠오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어란 원체 힘이 세서, 서로 다른 단어가 붙을 때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 이를 테면 가족과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여보자. 가족여행. 가족과 여행 이미 참으로 복잡미묘한 단어인데, 끝까지 힘들 수도 있고, 끝모르고 좋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두 단어가 합쳐진 ‘가족여행’은 그 상반된 마음이 두 배가 된다.

어렸을 때는 자주 다니지는 못했던 가족여행을 어느 순간 연례 행사처럼 가게 되었던 것은, 이제라도 다른 가족들처럼 해외여행도 함께 다니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꼭 해외로 가족여행을 다녀야 번듯한 가족인 것은 아니었을 텐데, 그 이유야 무엇이든 종종 다니게 된 가족여행이 나는 좋았다.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셋이 함께하는 며칠의 하루들은 오롯이 셋으로 서 있는 우리 가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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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혼자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있던 나와, 여행을 원체 좋아하지 않았던 어머니 사에이에서 아버지는 가족여행의 짐을 떠안고 분투했다. 한 쪽이 짐을 지면 결국 어디론가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몇 번의 여행에서 우리는 종종 다투었고 화해했고 이해했고 결국은 좋은 날들이었다고, 아무래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추억을 만든 것만 같다는 마음으로 여행지에서 사온 디저트들을 나누어 먹었다. 상점에서 사온 마그넷을 냉장고에 붙이면서 추억의 목록을 만들어갔다. 우리가 함께 먹는 것이 잔뜩 담긴 냉장고에 자석으로 매달린 몇 가지 추억이 이어졌다.

그 추억의 마그넷을 사오는 과정이 매번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의 가족여행을 통해 나는 우리 가족 셋이 가지는 분명한 패턴을 발견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느끼는 셋의 패턴은 이렇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눈치를 본다. 어머니는 나의 눈치를 본다.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본다. 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셋은 완벽한 눈치의 삼각형을 이루었다. 3은 안정적인 숫자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세운 눈치의 삼각형은 그만큼 안정적이고 공고했다. 그 지난한 눈치싸움 끝에 결국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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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후쿠오카 여행에서 우리는 어떤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며 여기 잘 온 것 같다고, 다음에 또 올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렇다면 이제 점심을 해결해야할 시간. 어머니는 유튜브에서 몇 번 보았던 모츠나베를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점심을 모츠나베로 계획하고 알아본 식당들을 나열한다. 어머니는 내게 모츠나베가 괜찮냐고 묻는다. 나는 아버지의 계획을 모르고 모츠나베도 좋지만 다른 음식도 좋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피며 그냥 다른 걸 먹자고 말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모츠나베 먹자고 한 거 아니냐고, 다른 거 뭐 먹고 싶냐고 묻는다. 나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그냥 모츠나베 먹자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뭘 먹어야 할까….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딘지 찝찝한 상태로 모츠나베 집에 들어가 일단 앉아서 먹는다. 모츠나베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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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먹은 라멘을 기억하기

이 눈치의 삼각형 속에서 우리는 각자 최선을 다했는데, 적어도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 원하는 것을 하도록 최대한 돕고자 했다. 어머니와는 낮 시간에 어머니가 하고 싶어하는 걸 최대한 같이 하고(물론 표정을 구긴 적도 많다), 아버지와는 어머니가 쉬러 들어간 밤에 함께 술을 마시고 야식을 먹는 것이다(물론 배가 불렀던 적도 많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각자의 노력을 했을 테니 나는 둘에 맞춰 시간을 채워 보내기로 생각했다. 수면시간과 기상시간이 다른 어머니와 아버지 각자의 시간에 최대한 맞추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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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지난 가족여행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가 쉬러 들어가고 아버지와 함깨 보낸 밤과 아침이다. 어머니와 내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맞춰 주려고 애써 계획을 짜다가 점점 지쳐갔던 아버지와 나누는 밤의 깊은 대화들, 원하는 것을 조금씩 할 때 즐거워하는 아버지의 얼굴, 어머니가 자고 있는 아침에 일찍 깨서 둘이 함께 걸어다녔던 타국의 이른 아침 풍경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아버지를 조금씩 더 이해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최대한 맞춰주고 있으니, 나는 아버지를 조금씩 더 맞춰줘야겟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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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끝나고 다녀온 후쿠오카는 충분히 좋았다. 별다른 관광지에 들리지 않았는데도 충분히 좋았다. 뭐가 없기 때문에 계속 올 수 있는 편안한 곳처럼 여겨졌다. 도쿄와 오사카와는 다른 지방 도시 특유의 예스러움과 편안함이 활발하게 감싸져 있었다. 짧은 여행에서 우리는 주로 먹으러 다녔다. 결국 누가 먹고 싶어했는지 알 수 없는 모츠나베부터 내가 먹고 싶었지만 찾아간 가게가 닫혀 있어 먹지 못한 스키야키까지, 먹고 싶은 음식들을 찾아 다녔다.

들어보니 아버지는 사실 라멘을 먹고 싶어 했다. 그런데 짧은 일정으로는 삼시세끼 먹는 것도 다 기회와 타이밍이라, 라멘 먹을 시간이 영 없었다. 다음에 또 와서 먹으면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물론 동의했지만, 아버지와 라멘을 먹고 싶었다. 아버지도 하고 싶은 걸 좀 해야한다는 생각하며 아버지와 단 둘이 보내는 밤과 아침에 라멘을 먹으러 다녔다. 지금 먹으러 가자고, 지금 먹으면 될 것 같다고 함께 라멘을 먹으러 다녔다. 낮이고 밤이고 줄을 서는 라멘집에, 아침에 여는 허름한 라멘집에, 24시간 여는 토마토 라멘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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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얼마나 맛있길래 사람이 이렇게 많냐며 밤 11시에 찾아간 라멘집에 줄 서 있다가, 첫 입을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던 순간을, 그리고 다음 날 같은 시간에 찾아가 같은 자리에서 먹으며 아버지와 감탄에 감탄을 했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가보고 싶어했던 작은 라멘 가게에 앉아 컵 소주에 라멘을 먹으며 느꼈던 얕은 취기와 웃음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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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먹은 거 많다고, 다음에 또 와서 먹자는 말에 끄덕거렸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가족의 공고한 눈치의 삼각형의 모서리마다 느꼈던 각각의 행복한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가족과 여행은 참 복잡미묘한 단어라, 함께 붙이면 그 힘이 배가 된다. 가족여행, 그 단어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가족여행은, 가족을 여행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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